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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공모전 안내/과거 공모전 수상작

09' 수기부문 은상 / 서민 부부의 착한 결혼식

2009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서민 부부의 착한 결혼식 -결혼식 피로연, 국산 유기농 뷔페로 대접하다.
고영준



우리 집은 강북구 인수동의 한 단독주택 1층 좌측에 있고, 4500만 원짜리 전세다. 이마저 주인이 월세로 돌린다고 해서 쫓겨날 판이다(다행히 며칠 전 같은 값의 오래된 빌라에 전세 계약했다). 어째든 부자는 아니다. 그래도 유기농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결혼식 비용의 약 80%는 식비다. 사실상 결혼식은 음식장사다. 일반 서민들이 아무리 싸게 음식을 준비하려해도, 2만 원선이고, 좀 무리하면 3 ~ 5만 원, 심지어는 8 ~ 10만 원에 달하는 호텔음식도 선보이고 있다.

각 가정의 경제형편에 따라 가격 선이 결정될 것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피로연에 올라오는 ‘음식’에 있다. 그 음식들이 미국산인지, 중국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저는 2007년 7월에 결혼했고, 광우병 촛불 전이기 때문에 더욱 원산지 표시는 없었죠). 추측컨대, 대부분의 음식은 수입 육류와 곡물일 것다. 호주산 소고기가 갈비탕으로, 중국 쌀이 떡으로, ‘잔치상’은 차려진다는 말이다. 가격을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소비자의 욕구와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기려는 업체의 욕구가 만난다면, 100% 남의 나라 식재료로 ‘잔치상’을 차려진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물론 국산이라고 좋은 것은 아닐꺼다. 얼마나 정직하게 기르고, 유통해서 조리까지 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산 유기농으로 정성껏 조리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축하하러 와주신 귀빈들에게도 예(禮)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걸음 더 나가 ‘한국에서 열리는 결혼식 음식만이라도 국산 유기농으로 대체한다면, 한국 농업의 미래가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 번째 문제는 가격, 두 번째 문제는 장소, 세 번째 문제는 부모님이었다. 다행히 ‘청미래’라는 유기농 뷔페를 운영하는 민형기선생님을 지인을 통해 만나 적정한 가격에 음식을 재공받기로 했다. 2만 5천원 선이었다. 당초 갈비탕 2만원으로 하려 했던 것에서 오천원이 오른 가격이다. 그러나 정직한 식재료로 정성껏 만든 음식이기에 그 만큼의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했다.

장소문제는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의 일반 예식장은 유기농 음식을 제공하지 않고, 장소만 대여하는 곳도 없다. 자체 식당의 음식을 소비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교회 역시 성도가 운영하는 뷔페를 이용하게 되어있다. 심지어는 관에서 운영하는 구민회관도, 외식업체와 연결되어 있다. 결혼을 하려면, 꼼짝없이 남의 나라 밥상 혹은 농약과 성장촉진제, 항생제로 오염된 정직하지 못한 밥상을 대접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10군데를 넘게 돌아다녀 봤지만, 허탕이었다. 교회에 실망하고, 구청에 실망했다.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작아서, 큰 공간이 없다. 힘겹게 얻은 곳이 바로, 대안학교 강당이었다. 마당같이 생긴 강당 덕에 양복과 드레스 입고하는 결혼식이 아닌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부모님이 가장 넘기 힘든 벽이었다. 교통 편하고, 음식도 맛나고(조미료 맛이니 맛이 난다고 할 수 있을까?) 남들과 비슷한 혼례를 치루면 안 되겠냐는 것이었다. 갖은 회유와 협박과 땡깡을 부려 결국 설득해 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한다는 말이 딱 맞다.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24049.html)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자본의 힘은 우리의 밥상을 장악해 버렸다. 한미FTA 반대집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 결혼식에 가서 미국산 쌀과 고기(유전자 조작된 곡물과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고기)를 먹으며 희희낙락한다면 모순이 아닐까?

국산 유기농으로 음식을 대접하는 것 내 몸도 살고, 세상도 살리는 일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소비하니 나도 좋고, 정직하게 곡식을 기르는 농부도 응원하게 된다. 또 이런 결혼식을 보고 돌아간 사람들이 도전을 받아 국산 유기농으로 뷔페를 하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서, 기존의 소비패턴을 의심해 보고, 착한 소비를 희망하게 된다면, 한미FTA에 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