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시작하는 대안적 삶

2011.06.09 21:34 사회적경제 사례 | posted by 사회적경제

교실에서 시작하는 대안적 삶 - 박혜진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일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개인적인 삶을 통해서 많은 경험들을 하고 그 속에서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과연 한정된 인생 가운데 ‘잘 살았다’라는 평가를 내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고등학교 교사로서 요즘 더더욱 이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나 스스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이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삶을 유산으로 남겨야 할 것인가. 가르치고 있는 과목이 가정 과목인데, 소비생활, 식생활, 의생활, 가족생활 등을 가르치면서 각각의 영역에 너무나도 다양한 갈등과 문제가 존재함을 보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내가 정말 옳은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대안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살아내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대안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많이 부족하지만 2009년에는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대안을 찾아내는 수업을 조금이라도 해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심 속에서 5월 중순부터 7월까지 소비생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다양한 구매 방식에 대해서 공부하고, 소비자 관련법에 대해서 수업하고, 소비자 주권에 대해서 수업하던 중 만나게 된 것이 바로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에 대한 내용이었다.

관련 자료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커피 한 잔 그리고 초콜릿 하나에도 비극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5000원이라는 돈을 주고 커피를 사 먹지만 수익의 55%는 국적 기업, 20%는 소비자, 10%는 수출업자에게 돌아가고 정작 땡볕 속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1%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한 기업에서 만든 축구공 등이 가난한 국가의 아동 착취의 결과물이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보고 나니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커피 속에는 최초 생산자들의 눈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무의식 중에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소비를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공정무역과 윤리적 소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최초 생산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가격과 유통 구조를 변화시킨 공정무역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좋은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과 함께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의 폐해를 알아보고,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소비 가운데 숨어 있는 아픔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고, 각각의 사이트에 들어가 공정무역 제품도 알아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소비생활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학생들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반발도 있다. 공정무역이나 윤리적 소비에 관한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많은 불평이 ‘너무 비싸잖아요!!!’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지구상의 어떤 사람들은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되는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부자일까.’라는 고민을 해 본다. 그들이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결국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지불한다는 차원을 넘어선 것일 것이다. 소비자 주권에서 이야기를 하듯이, 내가 그 회사 제품을 사는 것은 결국 그 회사의 경영 방침에 동의하고 생산방식과 처리방식, 유통 방식 등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공정무역제품을 생산해 내는 기업에 대해 지지를 보내고 돈과 함께 나의 가치를 실어 보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대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하지만 그 대안이라는 것이 아무런 대가 없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들보다 다소 비싼 돈을 지불해 그 제품을 사야 한다는 대가를 치름으로써 나는 윤리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고 더불어 다른 이들도 결국은 이런 삶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공정무역과 윤리적 소비에 대한 수업을 진행한 이후부터 내 컴퓨터의 즐겨찾기 목록에는 한 곳이 추가되었다. 바로 www.kfhi.co.kr이다. 기아대책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정무역 제품 판매 사이트이다. 이곳에서는 멕시코산 커피, 북한산 된장, 에티오피아 산 커피, 초콜릿 등이 판매되고 있다. 교사로서 항상 말로만 중요성을 설명해 온 모습이 너무 반성되었고, 내가 먼저 가치에 따른 윤리적 소비를 실천을 한다면 학생들과 좀 더 생생한 수업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았기 때문에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공정무역 수업 이후 맨 처음 구매한 제품은 북한산 된장과 독일산 수제 초콜릿이었다. 학교에서 존경하는 한 선생님의 생일이었는데, 그 선생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런 저런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비싸고 좋아 보이는 제품들을 생각하였지만, 그 생산 방식이라든가 경영 방식이 비윤리적인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선뜻 구매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비싼 제품이라도 그 제품의 생산 방식과 유통 방식 등이 윤리적이지 못하다면 선물 속에 담겨진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결국 결정한 것이 바로 기아대책에서 나온 된장과 수제 초콜릿이었다. 선생님께 생일 선물과 함께 이 제품이 공정무역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이고 왜 이 제품을 선물하게 되었는지 알려 드리자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박 선생님. 나 너무 감동 받았어. 너무 의미 있는 선물인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정말 잘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물을 받아 본 선생님께서도 자신도 꼭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해야겠다며 사이트 주소도 알아가는 등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다. 그 후부터는 부서 커피를 공동으로 구매할 때에도 공정무역 방식으로 생산된 커피로 주문하게 되었고, 주변의 많은 선생님들도 하나 둘 사이트 주소를 물어보고 구매해 보기도 하시고 기아대책이 아닌 다른 사이트를 알려주시는 분들도 많아졌다. 너무 감동적이었던 것은 몇몇 학생들이 찾아와서 ‘선생님! 한 달 후면 추석인데, 엄마 아빠가 추석 선물 사신다고 할 때 제가 공정무역 제품을 사시라고 말씀 드려 보려구요!’라는 말을 할 때였다. 올바른 일은 절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퍼져 나가다 보면 결국 대안으로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우리 학교는 1년에 2번씩 아름다운 가게와 ‘아름다운 나눔 학교’ 행사를 진행한다. 학교에서 맡은 업무가 봉사 관련 업무이다 보니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나눔 학교’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행사는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 제품을 모아서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면 판매 행사를 벌여 그 수익금을 이웃돕기에 사용하는 행사이다. 2년 동안 이 행사를 진행한 이유는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것을 기증에 수익금으로 이웃을 도울 수 있어 교육적으로 매우 좋은 행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정무역이나 윤리적 소비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나눔 학교 행사가 단순히 이웃을 돕는 차원의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공정 무역 방식을 통한 생산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재사용함으로써 물건의 수명을 연장시켜 재화의 낭비도 막고 환경도 보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윤리적 소비의 의미가 아닌가. 그렇다면 알게 모르게 윤리적 소비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큰 의미를 가진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학생들에게 올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홍보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제 두 달 후면 2009년 마지막 ‘아름다운 나눔 학교’ 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단순히 학생들에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소비의 차원에서도 학생들에게 교육해 우리 학생들이 정말 의미 있는 소비인으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안을 만들어 내는 삶.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삶을 위해 한 발자국씩만 내딛게 된다면, 대안은 우리에게 더 이상 ‘대안’이 아닌 모두가 당연히 걷게 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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