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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공모전 안내/과거 공모전 수상작

10' 수기부문 금상 / 나무종이 숲종이


2010년 금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나무종이 숲종이
한지희



 에코 캠퍼스 덕성여자대학교 화장실의 휴지곽에는 착한 스티커가 붙어있다. 오늘도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 일을 본 후에 길게 잡아당겨 휴지를 뜯다가 그 착한 스티커를
 보고 화장지를 다시 돌돌 감았다
. 그리고 꼭 필요한 만큼만 적당하게 휴지를 뜯으며 이 하얀 화장지에 담긴 30년의 나무와 빗물과 흙과 바람, 강과 숲을 생각했다. 그 스티커는 종이 위에 나무가 그려있고, 강이 흐르고 풀이 피어나고, 그 안에 햇빛이 있고, 흙이 있고, 비가 있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나무종이 숲종이. 종이 한 장에 담긴 30년의 햇빛과 빗물과 흙. 나무숲을 응원합니다. -IVF'

이 스티커는 지난 학기 내가 속한 덕성 IVF에서 이슈파이팅의 일환으로 제작한 스티커이다. IVF(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는 한국기독학생회로 복음주의와 사회참여의 건강한 양날개를 추구하는 기독동아리다. 위에서 먼저 언급했던 이슈파이팅이란 어떤 이슈를 선점하여 문화적 전선(the battle line)을 확인하고 변화를 위한 싸움을 싸워가는 것을 말한다. 지난 학기, 나는 덕성 IVF에서 사회부 담당자로 본 이슈파이팅을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이번 학기 이슈파이팅의 주제를 정하면서 다양한 주제들이 언급되었다
. 열띤 이야기 나눔 끝에 우리들이 주목한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종이였다. 노트, 신문, 전공 책, 각종 도서, 편지지, 화장지, 종이컵, 영수증, 봉투... 특히 새하얗고 네모난 A4용지의 소비는 대학생들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한 것이다.

흔하고 이로운 종이, 그래서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있지는 않나? 우리는 먼저 우리의 종이소비 습관부터 돌아보았다. 우리학교 인쇄실은 하루 종일 A4용지에 각종 수업용 ppt를 찍어낸다. 나는 잘못 인쇄하면 또 뽑는다. 내 친구는 매일 정수기에서 물을 마실 때 옆에 비치된 종이컵을 사용하고, 한번 먹고 축축해지면 새 종이컵을 또 뽑아 쓴다. 화장실에서는 화장지를 둘둘 말아 도톰하게 사용한다. 우리들의 개념 없는 종이 소비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개념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종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물론 나무에서 오지~ 나무로 만들잖아. 그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야.”
.. 그런데 말이야~ 넌 종이를 쓰면서 이 종이가 나무로 만들어진다는거 생각해본적 있어?”
... 그 생각은 못해봤다...”
오래오래 숲을 지킨 나무를 잘라서 종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 이렇게 종이 막 쓸 수 있을까? 매일 종이를 사용하면서 이 종이가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그것은 마치 헬렌켈러가 물이 물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상쾌한 깨달음과 같았다. 종이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내가 하는 종이 낭비가 열대우림의 무성한 나무숲과, 울창한 냉대림을 파괴하고 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종이 숲종이라는 제목으로 덕성캠퍼스에서 이슈파이팅을 하기로 했다.

이슈파이팅의 기획 초기에는 단순히 덕성의 학우들과 이면지 노트 만들기만 할 생각이었다. 축제 때 작은 부스를 만들어 여러 학생들에게 ‘A4용지를 아껴 쓰자는 메시지만을 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종이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캠퍼스 내에서 학우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마침 올해 우리학교가 에코캠퍼스로 지정되면서 학교 측과 협력을 통해 더 많은 학우들과 이러한 고민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에 있을 축제를 D-day로 정하고, 한 달 반전부터 기획에 들어갔다. 많은 학우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다양한 세부 프로그램들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학교 내의 에코캠퍼스 담당 교직원님과 주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과정 가운데 마침내 100만원 남짓의 예산지원을 약속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종이에 관해 조사하면서 재생종이 사용하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녹색연합을 알게 되었다. 녹색연합을 통해 재생종이에 관해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종이의 대부분이 나무를 잘라 만든 천연펄프를 사용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재생종이는 사용후 고지나 사용전 고지를 통해 다시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새하얀 종이는 나무 그대로의 색이 아니라 여러 가지 화학처리를 통해 우리에게 온 것으로 지구의 건강과 우리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 재생종이의 약간 누릿한 미색이 그래서 착한 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질은 천연펄프를 사용한 종이들에 비해 떨어지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푸른 나무숲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불편함은 마땅히 감수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덕성학우들에게 절약을 넘어 더 적극적인 action, 재생종이를 사용하자고 알리고 싶어졌다.

 
재생종이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 이런 친환경 제품들에 계속 관심이 생겼다
. 그래서 세부프로그램 중에 친환경 종이 제품들을 소개하고 전시하는 코너<우리가 몰랐던 종이나라>를 마련하였다. 그 결과 퍼니페이퍼에서 나무를 대신한 마일리 종이 책걸상 세트, 코주부에서 만든 종이팩을 재활용한 화장지, 두성종이에서 다양한 재생종이들, 굿필코리아의 종이연필, 곰두리몰에서 장애인들이 생산한 재생A4용지, 교보문고에서 재생종이로 만든 책 등을 구입하여 전시하였다. 학우들에게 나누어 주기위해 제작한 나무 엽서와 스티커는 리프아트라는 곳을 통해 100% 재생종이와 친환경 콩기름으로 인쇄하여 제작하였다.

전시 부스를 준비하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환경과 이웃을 생각한 착한 종이제품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것들의 질이 결코 떨어지지 않음에 더욱 놀랐다. 이러한 놀라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축제 당일 부스를 찾았던 덕성인들 거의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놀라움을 표현하였다. 직접 재생 종이 제품을 만져보고, 앉아보고, 사용해보면서 덕성학우들의 편견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 같아 뿌듯하였다.


축제기간 중 이틀에 걸쳐 진행된 참여활동 부스는 <미션! 재생종이를 찾아라!>, <우리가 몰랐던 종이나라>, <숲을 살리는 이면지 노트>, <약속, 꼬옥 지켜줄게-지문을 통해 덕성 나무숲 만들기, 지문책갈피 만들기> 이렇게 네 가지였다. 이를 통해 약 200명의 덕성학우들이 이면지노트 제작에 참여하였고, 450개의 책갈피를 만들었으며, “나무숲이 웃는 날513그루의 나무 중 493그루가 초록빛을 입었다. 전시했던 재생종이 제품들은 추첨을 통해 학우들에게 나누어줌으로 학우들이 생활 속에서 재생 종이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도록 하였.
이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나무숲이 웃는 날이라는 다짐 지문 찍기다. 우리학교를 5000덕성이라고 하는데 493명이면 학생의 1/10이 종이절약과 재생종이 사용을 다짐한 것으로 간주하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결과는 본 이슈파이팅을 통하여 우리 학교 문구점에서 장애인 공동체에서 생산한 재생A4용지를 이윤 없이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덕성 학우들이 생활 속에서 더 쉽게 윤리적인 소비, 개념 있는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지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윤리적인 소비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내가 쓰는 물건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먼저 생각하는 소비라 정의하고 싶다. 잠깐 Stop! 우리는 소비의 속도를 늦추고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쓰는 이 물건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나무인지 숲인지 자본주의의 착취 아래인지.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나의 소비가 단순히 하나의 소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쓴 돈이 숲을 파괴하기 위해 울창한 열대우림 한 가운데 버티고 서있는 불도저의 기름이 될 수 있다. 3세계 배고픈 아이 손에 들린 바늘이 될 수도 있다. 정신이 번쩍 난다! 당장 나에게 좋아 보이는 것만 소비하는 것이 결코 현명한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슈파이팅이 끝난 후로부터 나는 재생A4용지를 사용한다. 화장지도 천연펄프는 안 쓴다. 종이컵 대신 물병을 들고 다닌다. 이제 나는 사기 전에 먼저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