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새로운 습관
(강혜인
)


 지난 2009년 여름, 하늘과 가까운 땅 러시아 연해주에 다녀왔다. 연해주에는 아직 채 온전히 치유 받지 못한 역사의 시련이 서려있다. 강제이주와 학살, 차별, 따돌림, 고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생활조차 위협 받았던 고통의 역사. 그 곳에서, 연해주로 다시 돌아온 고려인들의 재이주와 정착을 돕는 NGO단체 동북아평화연대가 있다. 학교의 이름으로 꾸려진 우리 봉사단이 찾아간 곳은, NGO단체가 머무르고 있는 순얏센의 로지나라는 고려인마을이었다.

 로지나는 고향, 조국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 평생의 시간이 걸려, 또는 그보다 더 걸려 아들과 손자가 아버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다시 찾은 그들의 고향. 우수리스크 시내에서 차로 한참을 더 달려야 겨우 닿는 로지나는, 밤이면 불빛 하나 없고 건물도 몇 채 없는 외딴 시골마을이었다. 아니, 마을이 되어가고 있는 터전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순얏센은 아직 미완성의 상태였고, 사실 아직도 그럴 것이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봉사 기간에 학생 봉사단이 마을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낯빛만 고려 사람이지 속은 소련 사람이오.'하는 분도 계시고, '우리 한 핏줄들이 와서 집도 사 주고 도와주니 감사하오. 정말 감사하오.'하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그 분들께 우리의 마음이 닿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짧았고, 우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상처와 역경으로 깊게 패인 마음의 주름들은 낯선 수십 명의 젊은이들에게 쉽게 정을 내보일 만큼 여유롭고 평안하지 못했다.
뚝딱뚝딱 따뜻한 집과 학교를 지어주고, 농장이며 축사의 힘든 일거리를 척척 다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말들과, 서툰 솜씨로 어설프게 해낸 일들, 그 모두를 보고도 웃음 짓고 뿌듯해하며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던 그 분들을 보았다. 우리는 마을의 공동 주택의 벽을 칠하고, 아이들을 위한 벽화를 그리고, 어린이집과 놀이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동주택이나 어린이집 모두 버려진 군용건물을 급한 대로 고쳐 쓰는 것이었는데, 바닥의 흙을 퍼내고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전부였다. 결국 다시 한국으로 떠나오는 날까지 거의 모든 마을이 여전히 미완성의 상태였다.

 희망 하나만을 손에 쥔 채, 중앙아시아에서 살아오던 생활터전인 집과 재산, 직장을 모두 버리고 연해주로 돌아온 그들에게 ‘연해주드림’은 쉽지 않았다. 러시아 여권조차 발급받기가 어려워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따라서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었으며, 난방도 되지 않는 구소련 시절 버려진 군용건물에서 영하 40도의 겨울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각오와 다짐으로 나선 귀향길이기에, 그들이 원한 건 ‘무상원조’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방법’이었다. 드넓은 평야와 훼손되지 않은 자연. 연해주는 식량창고라고 불릴 만큼 농업과 목축업이 빛날 천혜의 땅이다. 이런 조건을 이용해 동북아평화연대는 고려인마을로 이주해온 가족들에게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집단 농장을 꾸려 가축을 빌려주고, 농업기술을 가르쳐주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농업활동이 어려운 길고 모진 겨울 또한 연해주의 특색. 그래서 사회적 기업 ‘바리의 꿈’이 탄생하게 된다. 바리의 꿈은 연해주에서 ‘고려인이 기른 유기농 콩으로 고려인이 만든 청국장’을 파는 기업이다. 고려인 마마(아주머니)들에게 드디어 안정된 일거리가 주어지는 셈이다.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양 손을 꼭 붙잡으시며 "이제 가우? 내일 가우?"하시던 아르까지 아저씨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 했다. 내가 그 분 앞에서 울어서는 안 되었다.

마을 주민 수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찾아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왁자지껄 시끄럽게 채우다가, 다시 한 번에 우르르 떠나가 버린다.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오래 오래 기억할게요, 다 같이 손 붙잡고 인사를 하고는, 떠나 버린다. 이런 우리의 방문이 과연 득일까 실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가 삽을 뜨고 바닥을 깐 어린이집에 다음 봉사단이 와서 도배를 할 것이고, 그 다음 봉사단이 와서 한국어와 놀이를 가르쳐주겠지. 그렇게 점점 진짜 마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이 뜨거웠던 여름을 어떻게든 더 이어가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다시 멀리 떨어진 도시의 학생들이 된 우리가 순얏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다녀온 그 예쁘고 소박한 마을을 알리고, 그 마을 사람들의 실상을 알리고, 그들을 돕는 착한 소비를 하는 방법을 알리자. 우리의 친구들과 학생들부터 착한 소비가 친숙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바자회를 겸한 사진전을 열기로 했다.

고려인 2세인 이순생 할머니와 고려인 남편을 따라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주해 온 어린신부 레나, 개구쟁이 막심 등 마을 사람들의 사진, 봉사단의 땀이 녹아든 유치원 작업 현장, 다민족 다문화 평화축제의 현장이 패널에 담겼다. 모금 조성을 위한 바자회 코너에는 '바리의 꿈'에서 유통하는 청국장 쿠키를 들였다. 청국장으로 만든 쿠키라는 조금은 낯선 간식 하나가 저 멀리 고려인을 돕는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바자회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낸 것은 아니지만, 수익금과 모금을 통해 모아진 돈들은 전부 로지나 마을의 지원을 위해 전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수익은 고려인 마을과 '바리의 꿈'을 가까이의 친구들에게나마 알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값지다는 말이 있다. 좋은 습관을 새롭게 들이는 것은 안 좋은 습관을 고치는 것만큼이나 어렵지만, 한 명 한 명의 좋은 소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은 생각해보면 정말 가슴 벅찬 일이다. 게다가 그것이 무상원조가 아니라 희망의 씨앗을 주는 일이고, 내가 손닿을 수 없는 곳까지도 퍼져나갈 수 있는 일이라니 말이다.
이번 해 아버지 생신 선물은 로지나의 로자 마마가 만든 몸에 좋은 청국장으로 해야겠다.
그리고 고향에도 ‘바리의 꿈’을 소개해야지.

Posted by 사회적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