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소비를 실천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실 윤리적 소비라는 것을 혼자서 찾아 실천하기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수상작에서 윤리적 소비를 위해 첫번째로 하는 일은 ‘생협 가입하기’ 였습니다. 생협에서는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제품을 소비하고 있고, 윤리적 소비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실제로 하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가입을 하는 것만으로도 윤리적 소비의 시작이 된답니다. (각 제목을 클릭하면 글 본문으로 이동합니다.)

 

10' 수기부문 은상 / 그건 정말 얼마인가요? - 박주아

윤리적 소비란 궁극적으로 남보다도 나를 위한 소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엄청나게 저렴하지 않더라도, 만들어져 내게 오는 과정을 알 수 있어 내가 믿고 살 적정한 가격의 물건, 내가 팔더라도 내 노동의 가치가 헛되지 않을 가격을 받는 물건. 그 물건은 정말 얼마인가요? 하고 물음을 던져봅니다. 

10' 수기부문 은상 / 손주야! 할머니도 윤리적 소비자란다! - 문복례

손주가 생기고 삼십년 넘게 지켜온 짠소금 문여사의 소비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물건의 값보다는 제품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환경 제품을 찾게 되었죠. 손주 녀석 이유식 장을 보기 위해 일 주일에 두어 번 자연드림에 가는것이 가족의 여행이 되었습니다. 

09' 수기부문 장려상 / 아내따라 생협간다 - 김동윤

'남편들이여, 아내 따라 생협 가자' 라고 외치는 생협 전도사 남편. 대부분 사람들이 생협에서 물품을 파는 것이 단지 유기농이라는 단순한 먹거리로 생각해 왔는데, 농민들과 교감하는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품 위원들이 생산자와 함께 고민하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 바로 저것이 사람사는 냄새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10' 수기부문 동상 / 인생수업 - 김민숙

아토피 아이, 당장에 바꿀 수 있는 건 그나마 식단인지라 유기농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생협에 가입했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도 알고는 있었지만 회비도 내야하고 직장 다니며 아이를 맡기는 엄마 입장에선 선뜻 이용할 필요도 많이 없고 해서 이용하지 않았었지요. 이것이 살아온 방식을 전환하는 작은 출발이 된 것입니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2010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인생수업
(김민숙
)


서울에서 태어나 30여년을 살다 대전에 내려온 지 벌써 만 5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래도 친정이 아직 서울인지라 일년에 몇 번씩은 서울에 가게 됩니다. 처음 몇 년은 그래도 고향이라고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느낌으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흐르고 이젠 서울에 한 번 갈라치면 그 느낌은 지방 사람 그것이 다 되었습니다. 서울 공화국으로 입성하는 느낌! 이랄까요. 모든 물자와 자원과 자본과 사람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점점 더 거대해지고 견고해지는 서울 공화국... 그 안에 살 때는 잘 몰랐습니다. 저의 삶의 모양새가 어디쯤 자리해 있었는지를요.


서울서 임신했던 둘째 아이를 대전에 오자마자 출산했습니다. 태열이 심했지만 큰아이도 그랬던지라 별 걱정 없이 백일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때쯤이면 뽀얗게 젖살이 올라 예뻐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요. 하지만 백일이 되어도 둘째의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TV에서 안타깝게 보았던 진물투성이 아토피 아기의 얼굴이 제 딸의 얼굴이 되어있었습니다. 병원에선 전신 아토피라며 평생 고생할꺼라 하더군요. 스테로이드 연고와 항히스타민제 처방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습니다. 평생 고생이라니, 방법이 있겠지..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읽었습니다. 기본은 유기농 식단과 좋은 공기, 물이었습니다.

당장에 바꿀 수 있는 건 그나마 식단인지라 유기농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생협에 가입했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도 알고는 있었지만 회비도 내야하고 직장 다니며 아이를 맡기는 엄마 입장에선 선뜻 이용할 필요도 많이 없고 해서 이용하지 않았었지요. 이젠 아쉬운 마음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유기농 먹거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협과 인연을 맺었고 이것이 저의 살아온 방식을 전환하는 작은 출발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저는 아이의 아토피와 싸우느라 밖으로 시선을 돌릴 여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너무도 힘든 나날이었지요. 피투성이 된 아이를 붙잡고 거의 실성해서 울부짖는 날들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고통의 터널에도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얼굴은 어느덧 새살이 올라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갔고 긁지 않고 잠드는 믿기지 않는 밤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저의 인생에서 최대 위기의 시간을 넘기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대형 마트가 편하고 좋았습니다. 깔끔하고 온갖 물건이 다 모여 있어 쇼핑하는 재미가 있었지요. 구질구질하게 흥정하고 물건 볼 줄 모르는 새내기 주부 티 내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쿨한척 세련된 척 적당히 소비하며 지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누가 키웠는지 무엇이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식품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품으로 아이를 키웠었구요. 어떤 땅에서 어떤 이의 땀과 노고가 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는 온갖 머나먼 나라의 생산품들로 뒤범벅된 그런 물건을 소비하며 살아왔던 저의 모습을 값비싼 고생을 치르고 난 이제야 보게 된 것이지요.

 단지 내 아이의 건강 때문에 이용하기 시작한 생협이고 유기농 먹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 가족을 위해 시작한 나의 소비의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 땅의 사람들과 곡식, 식물, 가축들이 서로를 키워가며 자라게 하는,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생산자분이 키워냈는지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 그분의 수고와 어려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좀 못생기고 때깔이 곱지 못한 사과나 귤이더라도 그 안에 그만한 사연이 있음을 알고 먹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정감이 갔습니다. 날씨가 안 좋아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깝고 애타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사서 쓰고 먹고 입는지 예전엔 그저 나 한사람을 위한 선택이고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러한 나의 소비가 이 땅 어딘가에서 애쓰고 있는 한 농부의 꿈을 일으켜 세우고 죽어가는 우리 땅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본에 휩쓸려 죽어가는 이 지구촌 곳곳의 땅과 농부들 또한 세워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다시 나를 살리고 내 자식들을 살리는 길임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마음을 가진 나와 같은 동네 식구들을 알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네요. 아이를 키우는 다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어떤 물품이 새롭게 나왔는지 정보도 나누고 생산지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것이 생산됐으면 좋겠다 의견을 내보기도 하지요. 지난 봄에는 아나바다 장터를 열어 안 쓰는 물건들을 서로 내다 팔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답니다.  

 사람 귀한 줄 모르게 무섭게 굴러가고 있는 이 거대한 도시 집중의 삶 속에서, 끝없이 생산하고 소비해 대는 이 거대한 자본 집중의 삶 속에서 나는 어디쯤 서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자리는 과연 올바른 걸까요. 모두들 잠시 자기가 머물러 있던 곳에서 한 발짝 씩 떨어져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저에겐 아이의 아토피가 그러한 시간을 주었다면 다들 나름의 이유들로 돌이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의 소비가 땅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힘이 있음을 다시금 믿으며 저처럼 굳이 힘겨운 인생수업을 치르지 않고라도 현명한 선택을 하는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늘어났으면 하는 것이 지방에서 애 둘 키우며 사는 이 아줌마의 작은 바람입니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2010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그건 정말 얼마인가요?
(
박주아)

 
“아야, 아야야, 아…….”


 몇 년 전, 객지생활 1년 만에 나는 방 한 구석을 뒹굴고 있었다.
 누구에게 도움청할 데도 없이 간신히 근처 병원을 들른 결과 알게 된 병명은 장염.
 꼬박 일 주일을 고생했고, 그 뒤로 두어 달 사이에 두 번을 더 앓았다. 직접 밥을 해 먹을 형편이 못 되어 근처 식당을 전전하며 끼니를 때울 때마다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하더니 결국은 장이 탈이 나버린 모양이었다.

 근처의 식당들은 주로 학생 대상의 뷔페식 월식당이었고, 식당들끼리 경쟁도 치열한 까닭에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어, 주변에 사는 학생 대부분이 이용하곤 하였다. 나도 그 중의 한명이었고, 집보다 훨씬 다양했던 반찬들에 맛도 괜찮은 편이어서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렀었다. 하지만 분명 몸에 좋은 잡곡밥, 자취생들은 무조건 먹어둬야 한다는 고기, 각종 채소 반찬까지 과식하지 않으면서 골고루 잘 먹어줬는데 참 이상도 했다. 식사를 마치기만 하면 속이 개운하질 않아서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나의 운동 부족을 탓하며 괜히 동네 주변을 빙빙 돌아다녔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정말로 내 몸이 안 좋아졌었던 이유가 식당 음식 때문이었을까? 그 답은 지금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후로 식당을 자주 찾지 않게 되었고, 더불어 하나의 의심이 생겼다. 
 
 ‘식당에서의 한 끼 가격으로 내가 건강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그 당시 한 끼의 가격은 2000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식자재의 원산지나 상태, 음식의 조리 과정이나 첨가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 따윈 물론 없었다. 
 정말 질 좋고 싱싱한 재료로 충분히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이천 원에 팔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천 원이란 가격과 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재료의 질이든 뭐든 포기해야 될 것 같았고, 실제 구매에서 조리까지의 과정을 모르는 한 나는 더 이상 그 식당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시장의 논리는 냉혹하다.

 우리는 이천 원짜리 밥을 싸게 잘 먹었다고 생각하며 먹지만, 실제 그 밥의 가치는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치든 이천 원어치의 가치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격이 매겨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열 배인 이만 원짜리 밥은 믿을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싼 물건의 가치도, 비싼 물건의 가치도 제대로 믿을 수 없는 사회라니, 이건 일반적인 생산과 소비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심은 뒤에 식품첨가물과 유기농 제품에 대해 알아보면서도 계속 됐다.

 ‘과연 이 식품이 내가 원하는 안전한 식품이 맞을까?’
 ‘유기농 인증이라지만 그걸 일일이 어떻게 검사해? 괜히 돈만 비싸게 받는 거 아냐?’
 내가 고르는 물건의 가치에 대한 의심은 계속 되었다. 대형 마트의 친환경 제품을 사거나 유기농 전문 매장을 들러도 식품의 성분 표시는 읽었지만 생략된 성분도 있었고, 표기된 성분은 과연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농산물 같은 확인할 수 없는 상품은 어떻게 믿어야 할지…….

 그러다 일반 유기농 매장과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생협의 조합원이 되면서 윤리적 소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뜻을 제대로 알아듣기도 전에 왠지 내 고민과 맞닿아 있는 말인 것 같았다. 윤리적 소비로 인한 다른 영향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투명한 유통과정, 그러면서 책정된 물건의 가격, 조합비로 운영되는 물품의 안전성 심사 때문에 나는 내가 지불하는 물품의 가치에 대한 의심을 줄일 수 있었다. 단지 소비의 과정이 바뀌었을 뿐인데도 소비자와 생산자, 더 나아가 먼 국가의 사람들까지 서로 정당한 혜택을 보며 신뢰관계가 구축된다니 간단하면서도 꿈같은 이야기였다.

 윤리적 소비를 옛날에 들었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괜찮은 생각이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겐 배부르게 보이는 뜬구름 잡는 생각.
유기농 제품은 돈 많은 사람들이나 찾는 것이고, 제 3세계 노동자들은 불쌍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주기 위해 파는 공정무역 제품은 마트에 쌓여 있는 저렴한 제품보다 비싸서 괜히 손해를 보는듯한 기분도 들었다. 의도야 어쨌든 당장 내가 살 물건은 대형마트의 1+1 상품보다 비싸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고, 물건을 살 땐 좋은 물건을 믿고 사고 싶은 마음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 믿지 못할 상품을 내 어린 자식에게 먹이거나 쓸 수 있을까? 내 자식도 못 먹이는 음식을 나는 괜찮으리라 불신의 마음을 누르고 먹는 현실은 왠지 서글픈 느낌까지 든다. 
그런 의미에서 윤리적 소비란 궁극적으로 남보다도 나를 위한 소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엄청나게 저렴하지 않더라도, 만들어져 내게 오는 과정을 알 수 있어 내가 믿고 살 적정한 가격의 물건, 내가 팔더라도 내 노동의 가치가 헛되지 않을 가격을 받는 물건.  

 앞의 말처럼 안심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날이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올바른 유통과정이 확립되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우리는 윤리적 소비를 알리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를 위해 살고 싶은 소비자의 한 명으로서 마지막으로 늘 하고 싶던 질문을 던져 본다.



그 물건은 내가 지불할 정당한 과정과 가치를 지닌 물건인가요?

그것은 정말로 얼마인가요?

 


 

Posted by 사회적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