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윤리적소비수기공모전'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7.29 인도의 사막, 잃어버린 별
  2. 2011.07.15 09' 수기부문 은상 / 길 위에서 나를 찾다
  3. 2011.07.12 09' 수기부문 동상 / 나무로 만들지 않은 종이

인도의 사막, 잃어버린 별

2011.07.29 09:09 과거 수상작 | posted by 사회적경제

잃어버린 별 - 전은진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2008년 2월 12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짐을 꾸려 놓고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 했다. 여느 때와 달리 이번 여행의 테마를 조금은 특별한 것으로 정했다. 특히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면서도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해 대부분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인에게 정당한 임금이 돌아 갈수 있도록 공정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기에 감히 나의 여행을 아름답다고 말하겠다. 여행에 앞서 몇 가지의 규칙을 정해야 했다.

1. 대중교통이용하기.(여행사버스이용 금지)
2. 현지에서 생산된 음식 및 공산품 만  구입
3. 대가 없는 적선 하지 않기.
4. 현지인을 배려하는 여행하기
5.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항상 텀블러 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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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파티와 커리

짜파티와 커리. 현지 주식으로 짜파티는 우리가 알고있는 난보다는 두껍고 거칠다. 야채 커리는 강한 향신료 맛이 인상적이다.


수도인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자이살메르로 향하는 기차표를 구입하고 그곳으로 떠났다. 기차 연착에 여러 가지 문제로 17시간이 넘는 이동으로 몸이 무거웠지만 황금의 도시답게 아름다웠다. 자이살메르 역에 도착하자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우리는 먼저 이곳의 사정을 알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였다. 시장에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각종 수공예품과 먹거리로 가득했다. 특히 시장은 인도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곳곳에서 피워대는 향냄새와 코끝을 자극하는 각종 향신료 냄새가 진하게 피워온다. 이것이 인도 여행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인도 냄새다.

요즘엔 인도에 대형 마트와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는 추세라고 하였다. 하지만 주민들이 직접 만든 작은 수공예품의 정교함은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시장은 자이살메르 성을 감싸고 있는데 낙타의 도시답게 낙타가죽을 이용한 상품들이 많았다. 모자와, 신발, 가방, 수첩, 열쇠고리,,, 바로 옆에서는 직접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나는 열쇠고리 몇 개와 수첩을 샀다. 책이나 그동안 들었던 얘기로는 무조건 깎아야 한다고는 했지만 바느질로 부르튼 손을 보고서는 도저히 깎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이 여행자를 위한 기념품을 팔고 있다. 낙타가죽 제품은 거친 감은 있지만, 본연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주민의 도움을 받아 1인당 10루피(한화 350원)정도로 흥정을 하고 릭샤라는 인도의 이동수단을 타고 사막입구까지 갔다. 특히 방문객 대부분이 여행자들이여서 현지인들은 흥정의 달인이고 협상의 달인이다.

낙타 사파리를 쉽게 할 수 있게 예약하는 곳이 있었지만 사막에 대한 설레임으로 잠시도 기다릴 수 없어 직접사막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사막입구에서는 현지주민들이 낙타사파리를 위해 하염없이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몰이꾼의 낙타를 골라 사파리를 하였다. 너무 엣되 보이는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몰이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낙타 사파리를 다녀오면 낙타 대여비를 지불하고 나며 300루피(한화 10000원)정도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소년은 집안사정으로 학교를 가지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매일 사막으로 나온다고 했다. 손님이 없어도 사막에 나와 여행자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나마 오늘은 우리를 손님으로 맞을 수 있어서 운이 좋은 날이라며 좋아했다. 노프라블럼~ 노플라블러~ 괜찮아? 몰이꾼은 서툰 한국말을 섞어가며 노프라블럼을 연신 내뱉었다. 한낮의 내리쬐는 태양에 입술은 바짝 타들어가고 피부는 갈라지는 듯했다. 우리는 몰이꾼이 직접 만들어주는 현지정통의 식사를 맛 볼 수 있었다. 이리저리 한참을 둘러 보더니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낙타 등에 있던 안장을 들추고 그 안에 있던 식기와 식재료를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뚝딱 한 끼 식사를 만들어 냈다.

짜파티

짜파티

당연히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특히 콜라 등의 탄산음료가 너무나 마시고 싶어지는 맛이었지만 몰이꾼이 만들어주는 짜이(인도의 차)를 마시며 함께 바닥에 둘러 앉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짜이는 여행 중에 가장 즐겨 마시던 음료이다. 생강차에 우유를 섞은 맛있데 낮이나 밤이나 덥거나 춥거나 항상 따뜻하게 해서 마신다. 기차 안이나, 시장, 음식점 어디를 가도 짜이를 맛볼 수 있다. 특히 갠지스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에서는 갠지스강물로 짜이를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기차에서 짜이를 사먹으면 종이처럼 얇은 플라스틱 컵에 주지만 각자 구비한 텀블러에 받아 마셨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 설거지는 모래를 사용한다. 뜨겁게 달궈진 모래로 그릇을 오히려 살균효과까지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를 다녀 온 사람이라면 인도의 물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양치질을 하더라도 생수로 헹구어 내야 탈이 나지 않는다. 우리도 생수를 꼭 사서 먹어야 했는데 잘 알려진 에비앙이나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생수는 우리의 목적과 다르기 때문에 네팔이나 현지회사에서 생산되는 물을 사마셨다. 물 보다 고운 모래로 설거지한 스테인레스 그릇은 오히려 광이 반짝 반짝 난다. 우리가 먹은 그릇은 각자 닦았다. 먹은 그릇을 닦아주는 손님은 우리가 처음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연신 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 뿐이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받고 나니 그동안 내가 당연히 해야 마땅한 또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은 것을 꾸짖는 것 같았다.

이윽고 밤이 되었고 사막의 일몰은 온 세상이 황금으로 뒤덮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담요하나로 잠을 들어야 했다. 당연히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달도 져버린 어두운 새벽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이 별들이 빚 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유성에 소원을 빌었다. 유성은 몇 분내로 계속 떨어져 수십 가지의 소원은 족히 빈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 별을 보고 또 보았다. 애초에 사막에 오고자 했던 이유도 별을 보고 싶어서였다. 온갖 네온사인으로 별을 볼 수 없는 서울에서 하늘을 올려다 본적이 없다. 다이아몬드보다 투명하고 빛나던 별. 지금도 내 눈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던 별들을 가슴에 담아 간직하고 있다.

물론 나의 짧은 공정여행이 현지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나의 여행이 그 사람들에게 정당한 댓가로 돌아가길 바랐으며 나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어떤 소년이 학교에서 공부를 다시 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윤리적 소비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늘에 별이 없는 것이 아니다. 경쟁하는 네온사인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공정무역이니 윤리적 소비이니 하는 것이 이와 같다. 잃어버렸던 별빛을 나누워 주는 것이다. 이제 잃어 버렸던 별을 찾을 때다. 강한 빛에 보이지 않았던 별을 찾는 것이다.“진정한 변화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며 한때의 유행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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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길 위에서 길을 찾다
서울국제고등학교 2학년 오세현


커피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거의 매일 스타벅스 커피를 드시곤 한다. 초록색 로고의 커피 잔은 어머니에게 맛과 향과 분위기에 자존심까지 담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커피 잔이 어머니에게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어머니는 스타벅스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면서 당신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제3세계 원산지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매우 흡족해 하셨다. 요즘 한참 TV에서 이야기하던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어머니의 자존심보다 더 강한 매력으로 느껴지셨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공정무역 거래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그날 이후 나는 커피 판매이익이 원산지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돌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작은 액수가 그들에게 지급되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 스타벅스와 같은 다국적 기업이 내세우는 공정무역도 마찬가지였다. 다국적기업이 공정무역이라는 마크를 붙임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보다 매력적으로 어필하고 비싼 가격을 합리화 시켜 공정무역을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윤리적 소비란 개인의 소비가 사회의 이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나 개인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회 전체의 이익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정한 원칙과 거래를 중요시하는 공정무역 거래의 취지를 알게 되자 이를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활동의 중심을 공정무역으로 잡아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학교 동아리를 결성했다. '주체적 청소년 사회 운동 모임' 을 지향하는 Raindrops란 동아리가 그것이다.

큰 활동들에 앞서,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국제고등학교 300명의 학생과 길거리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공정무역에 대해 아예 모른다는 답변이 53%로 절반을 넘었고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해보지 않은 절대적인 이유가 공정무역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던 것이다.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농산물과 제품을 구입한다면 가난한 제3세계 농민들은 자립의 기회를 부여받게 되어 아이들을 일터에 보내지 않아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된다. 개개인의 소비가 그들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듯 개인적 측면에서 볼 때, 공정무역의 바람직한 시행에 있어 사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수행하는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공정무역에 대한 개인의 인식이 변화한다면 공정무역이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인권 보호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 확산이 절실함을 깨닫고 Raindrops는 첫 캠페인을 실시했다.

Raindrops의 1차 캠페인은 가장 대표적인 공정무역 제품인 커피 시음회를 여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숙학교인 까닭에 커피를 구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팀원 중에는 어차피 사람들이 알지도 못 할 테니 그냥 일반 커피로 대체하자고 한 친구도 있었다. 서운했다. 팀원들을 구성하고 캠페인을 기획한 나로서는 서운함을 넘어서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짐나 그것보다 더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희망소비 1차 캠페인'은 학교와 가까운 대학로 혜화역에서 이루어졌다. 피켓을 들고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커피 드셔보세요!’라고 외치며 직접 구입한 동티모르 커피를 무료로 시식하는 코너를 만들었는데 공정무역 제품이 맛과 품질 면에서 저급할 것이라는 통상적 오해를 떨치려는 의도에서였다. 커피시음, 브로셔 및 동티모르 커피 티백 배포, 설문조사 등이 캠페인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무료로 커피와 티백을 나눠주는데도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 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티켓을 들고 공허한 구호만을 외치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공정무역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동티모르 커피가 공정무역 제품이라는 홍보만 한 셈이었다. 나는 공정무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IR(Individaul Research)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의 제목은 '다국적기업이 제시한 노동자 인권문제의 해결 방안, 공정무역' 으로 공정무역의 의의와 실태 및 한계점, 또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연구를 하다 보니 공정무역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단지 공정무역 제품을 홍보하는 차원의 캠페인이 아닌 구호에서 벗어나 왜 이러한 소비를 해야 하는지 또 현재 어떤 구조 안에서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6개월 동안 연구를 계속하기로 하고 인사동에서의 제 2차 희망소비 캠페인을 준비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전하고 설득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공정무역 초콜릿과 브로셔를 나누어주었다. 열심히 설명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와의 연합으로 보다 성의 있어진 캠페인 도구들도 한 몫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한 것은 그날의 날씨였다.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며 활동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격려와 칭찬을 해줬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또 외국인들의 경우 우리보다 더 공정무역에 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있어서 우리와 토론을 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여러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캠페인에서 보람을 느낀 후에는 팀원들이 더욱 적극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아리 신문을 제작해서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나누어 드렸다. 밤을 새우며 오타를 고치고 사진을 선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작은 움직임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다.

최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현재의 세계화는 승자독식의 사회이며 이러한 전제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를 유인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리더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책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하지만 그 책보다 더 내게 감명과 깨달음을 준 것은 '희망소비 캠페인'이다. 나는 직접 부딪치고 실패하고 땀 흘리고 소통하며 터득했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승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동안 세계화 시대에서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만을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균형 잡힌 세계를 만드는 리더가 되고 싶다. 그것이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리더의 요건이라 생각한다. 내가 '희망소비 캠페인'을 통해 가난한 나라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가장 큰 꿈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이제 첫 걸음을 시작하려 한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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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나무로 만들지 않은 종이로 세상과 소통하다.
노경아


종이 없는 삶,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당장이라도 손을 뻗으면 어디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 종이는 현대인의 삶에서 없어선 안 될 필수품 중의 필수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부분의 종이는 나무로 만든다. 성인 한 사람이 연간 사용하는 종이의 양은 약 153킬로그램, 30년생 원목 3그루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심지어 우리나라 국민이 하루에 A4용지 한 장씩만 아껴 써도 하루에 4,500그루를 보존할 수 있을 정도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삼림을 보존하기 위해 종이를 아껴 씁시다!’라는 메시지를 들어왔지만 이 간단한 메시지의 절실함조차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환경을 생각하기 시작한 어린 디자이너들

대전의 한 작은 학교에서 제품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지난 가을학기에 들은 전공과목에서 16주 동안 ‘Sustainable Design Project’(지속가능한 디자인 기획)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모두에게 낯선 개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정의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는 있지만 기획, 제작, 생산, 사용, 재활용하는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 투입과 유해물질 발생을 최소화하는 디자인이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한 학기 내내 학생들이 손쉽게 이용가능하면서도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수백 가지의 아이디어와 제품을 고안해냈다. 학생들이 평소 교내에서 생활할 때 자원이 낭비되는 부분과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사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제품과 관련 시스템들을 생각한 것이다. 예를 들면 대기전력 발생을 경고해주는 콘센트,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식판, 기숙사 전기 사용량에 반비례하여 조성되는 기부제도 등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우리 조의 경우, 컴퓨터 사용량이 많은 학교의 특성을 반영하여 누적 사용량을 비교 분석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소프트웨어와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컴퓨터 부품을 디자인하였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의 정의를 내리는 데 3주, 교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낭비 및 환경오염을 리서치하는 데 4주, 개선안을 내고 구체화시키는 데도 7주 가까운 기간이 걸렸다. 밀도 높은 리서치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조원들은 수시로 모여서 연구 경과를 보고하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등 하루 평균 7시간에 달하는 미팅을 계속 하였다.

그러는 도중 우리는 점점 성공적인 프로젝트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환경 그 자체를 생각하는 디자이너들로 바뀌어 있었다. 4달 동안 수면과 여가 시간을 포기하고 매달렸던 이 프로젝트의 최종보고 또한 지속가능해야만 하는 것이 의무사항이었다. 최종보고에는 제품을 소개하는 패널과 브로슈어가 포함되었다.

우리 조는 그간의 노력에 박차를 가해 다른 조와 차별화할 수 있는 요인을 찾기 시작하였다. 소비자의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으면서도 그 자체로 지속가능한 브로슈어를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두기로 하였다. 특히 인쇄 용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샘플로 소량만 제작하지만, 실제로 제품이 상용화된다면 브로슈어 또한 대량으로 생산될 것이기에 친환경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삼림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거나, 재활용시 에너지나 화학약품의 투입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종이를 찾기 시작했다.


과일로 만든 종이? 에콜로지 페이퍼!

인류는 기록하기 위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석판에 기록을 하기 시작하여,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 등으로 도구를 발달시켜왔다. 하지만 이는 제작이 어려워 보편화되지 못하다가 약 1,700년이란 긴 시간을 보낸 후에야 대중화되었다. 이로써 인류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2초마다 축구장 면적의 원시림을 소비하기 시작했고, 결국 현재의 원시림은 큰 위기를 직면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 점에 집중하여 친환경 종이를 찾아나섰고, 에콜로지페이퍼를 만날 수 있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에게 친숙한 재생용지도 에콜로지페이퍼의 한 종류이다. 그러나 재생용지의 경우 수거가 어렵고, 생산 공정시 이물질 제거를 위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화학약품 처리가 필수적이며 많은 에너지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값도 비싸지고 나무를 덜 소비하는 대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단점도 있다. 이는 우리가 정의했던 ‘지속가능’에 입각하지 않는다는 치명적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조사하여 알게 된 것이 목재펄프를 이용하지 않는 비목재지였다. 곡물, 식품 가공시에 발생하는 껍질이나 섬유질을 혼합하여 종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용되는 원료는 게나프, 바가스와 같이 낯선 것들에서부터 대나무, 해초, 볏짚을 비롯하여 콩, 보리, 밀, 커피, 옥수수, 땅콩 등 실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식품과 곡물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비목재지의 경우 나무를 소비하지 않는 동시에 식품 가공 후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것이라 일석이조의 환경 보존 역할을 한다. 또한 감촉과 질감이 독특해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심지어 과일로 만든 종이는 염료의 도움 없이도 과일 천연의 색을 나타내 더욱 매력적이었다. 레몬으로 만든 종이는 연노란색, 블루베리로 만든 종이는 연보라색을 띤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관계로 대량주문만 가능하다는 점. 우리는 소량만 필요했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사탕수수종이를 선택했다.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짜낸 후 남은 섬유이자 농산물 잔재인 바가스를 이용하여 만든 종이였는데, 종이를 받아본 우리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차선책이라 생각했던 사탕수수종이는 너무나 고급스러웠고, 동시에 감촉이나 질감이 ‘친환경의 대표주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사탕수수종이 사례를 소개하자 동급생들과 교수님은 호기심을 보였고, 덕분에 수업에서 가장 우수한 사례로 꼽히기도 하였다.

나무로 만들지 않은 종이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인쇄할 일이 매우 많다. 작업하는 도중에 중간점검을 위해 수시로 인쇄를 하고, 최종발표를 위해서는 질 좋은 종이에 완성도 높은 인쇄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비록 에콜로지페이퍼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서 전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실정이지만 디자이너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보인다면 유통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가을 이후, 우리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화학약품 처리와 에너지 투입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반 백상지보다는 곡물, 과일 등 식품을 가공한 뒤 남은 부산물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그렇기 때문에 다소 비싸지만 환경을 아낄 수 있는 에콜로지페이퍼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그리고 또 우리가 사회에 나가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지금과 같이 친환경용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면, 지구는 조금씩 건강해지지 않을까?

Posted by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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