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뚝.뚝. 벌써 가을을 알리는 비일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커피향이 짙게 깔린 카페에 가고 싶다. 그리고 그곳은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커다란 창이 있는 2층 정도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라면 이보다 더 매력적이고, 이보다 더 좋은 힐링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이제 두 돌 된 아이를 둔 엄마다. 늘 아이의 밥상을 신경쓰다보면 정작 나는 밥을 마시다시피 해야 하고, 유모차에서 발 구르는 아이를 향해 우쭈쭈. 우쭈주. 아이를 달래가며 아이 옷을 고르는 동안, 정작 난 심하게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래봬도 한 때 커피 꽤나 마셔 본 여자고, 멋 좀 부려봤던 여자였다. 이랬던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나도 정말 몰랐다. 내 안에 나의 심장, 그리고 또 다른 심장이 뛰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내 자신은 뒷전인 채 아이에게만큼은 최고의 것을 해주고 싶고, 뭘 해줘도 결코 아깝지 않은. 세상의 모든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을 거다.

이런 엄마들에게 ‘내 아이’의 먹거리, ‘내 아이’ 피부에 직접 닿는 기저귀, 옷, 크림, ‘내 아이’의 장난감, ‘내 아이’가 읽을 책 등등. ‘내 아이’에 관련한 것들은 소싯적, 매일 아침 얼굴에 발라야 했던 화장품 고를 때의 신중함 그 이상으로 꼼꼼하게 따져보고 선택한다는 사실. 고로 아이의 먹거리는 물론이고 육아 용품에 몹쓸 짓을 하는 이들은 ‘엄마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다.

얼마 전, 한 분유회사의 불미스러운 상품 유통 및 판매 과정을 통해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적이 있다. 갑과 을에 대한 기발한 정의에 재미있게 웃어넘길 수 있던 개그 프로와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갑’과 ‘을’의 관계의 실 모습은 참 씁쓸했다. 불매운동까지 했던 엄마들의 결심은 단지 유행따라 옷을 고르던 마음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 바탕은 모성으로 비롯된 보다 묵직한 마음에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모유 수유를 하던 나는 불매운동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대신 기업의 윤리, 소비자의 윤리적 소비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불매운동이 아닌 또 다른 방법으로 ‘착한 소비’를 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윤리적 소비란 나의 소비 행위가 다른 사람, 사회, 환경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려하여 소비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기업과 소비자와의 관계 외에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누군가가 존재하는데, 우리에겐 즐거운 소비가 그들에게는 고통의 굴레가 되는 소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고 소비하자는 것이다. 이는 경제시간에 배운 합리적 소비관에 젖어 그저 같은 물건을 싸게 샀을 때 느끼는 나만의 희열 대신 윤리적 소비로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을 맛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거창하고 어려운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의외로 쉽고도 간단했다. 가령 이렇다.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 ‘다른 아이’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무언가 소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아이’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부당하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누군가가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가난에 시달리는 어린 아이는 약자 중 약자가 된다-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발휘해서 지갑을 연다면 보다 쉽게 윤리적 소비에 동참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로써 난 지갑을 열었을 때 기업을 상대로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는 진정한 ‘갑’이 되는 것이다.

한때 뭇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아이에게 가볍고 편한 나이스한 운동화를 사줬다. 하지만 그 운동화가 만들어 지는 과정 가운데 누군가의 아이는 고된 노역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과연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발에 진짜 가볍고 편한 것을 신킨 건가 싶고. 혹 세상의 무거운 과제를 안긴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난 때문에 아이에게 일을 시킬 수밖에 없는 어느 엄마의 마음은 내가 느끼는 무거움 그 이상일터. 그러니 착한 소비는 그 무거운 마음을 함께 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겠다.

아이는 요즘 앞집 형이 준 ‘안돼, 데이빗’이란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교회 쌍동이 형들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고선 신나게 음식을 흘리고, 심지어 땅에 뒹굴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에게 혼나진 않는다. 새 옷이 아니어서 좋은 이유다. 사촌 형의 보물 1호였다는 ‘톰의 기차’는 여전히 ‘칙칙폭폭’ 잘도 간다. 물려받은 것들은 아이가 어떻게 해도 너그럽고 인색하지 않은 엄마가 되게 해주는 것 같다. 안된다고만 하는 책 속 데이빗 엄마와는 달리.

누군가의 것을 물려받고, 자신의 것을 물려주는 ‘내 아이’가 지금 당장은 모를 테지만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눔이 무엇인지, 함께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차츰 차츰 알아 갈 것이다. 그러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마음도 함께 자라리라.

나의 ‘윤리적 소비’ 실천은 이렇게 소소하다. 이 소소함이 하루 이틀 작은 습관이 되고,  또 누군가와 함께 하다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따듯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여전히 비가  온다. 비록 비오는 거리를 내다 볼 수 있는 카페는 아니지만 공정하게 거래된 착한 커피를 즐기고 있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누리게 되는 커피 맛이란.

혹시 이 시간  카페에서 멋진 풍경과 함께 향기로운 커피를 즐길 우아한, 언젠가 엄마가 될 예비 엄마의 그녀들이 있다면, 그녀들에게 착한 커피를 소개해주고 싶다. 착한 커피를 알게 된 뒤에는 지금 들고 있는 커피의 맛이 아이의 고된 노역만큼 쓰고, 창밖의 분위기 있는 비가 그들의 눈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니. 오늘은 말고, 다음에.....히히.

커피 참 따듯하다. 낮잠을 자고 있는 아들 녀석이 쌔근쌔근 조금 더 자주기를 바라며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즐긴다. 좋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여행 와서 여행 하지 않는 사람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헝가리, 체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까지. 유럽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여행했던 나라들이다. 27개 도시의 거리를 누비며 느꼈던 것이 있다면 바로 '한국사람들 참 여행 많이 한다’ 는 것이다. 런던, 파리 등의 필수 여행지가 아닌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도 레스토랑 웨이터가 ‘아저씨, 여기 와 봐’ 라고 호객행위를 할 정도 였으니. 거리 상으로 멀리 떨어진 유럽이 이 정도니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 중국에는 얼마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있을지 짐작할 만하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2가지 타입으로 분류된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구입해 여행을 즐기는 어르신들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이 첫 번째라면, 스스로 비행기표부터 숙소까지 예약하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 혹은 소수의 신혼여행객들이 두 번째 유형이다. 나 역시도 이들처럼 ‘독립적으로’ 유럽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30유로(약 5만원) 짜리 저가항공을 타고 8유로(1만 2천원)에 하룻밤을 묵으면서 아낀 돈으로 우리는 나름의 유럽을 즐긴다. 유명한 박물관에 가고, 블로그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가 대표메뉴를 먹고, 유명한 벼룩시장에 찾아가 쇼핑을 하고, 랜드마크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이다. 아울렛에서 구매한 상품에 대해서 택스리펀을 받는 것도 단기 여행객에게는 필수코스이다. 그렇다면 한 번 돌아보자. 우리의 여행은 한국에서의 일상생활과 무엇이 다른가. 유럽의 거리라는 배경을 빼고는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다. 새로운 것을 체감하기 위해 간 여행인데도 말이다.

3주 간의 마지막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즈음, 문득 지난 1년 중 4달 가까운 여행 기간 내에 찍었던 사진들을 천천히 넘겨봤다. 폴더와 날짜만 바꿔놓으면 차이점을 구분하지도 못할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미리 계획을 세워서 방문했고, 신경 써서 찍은 사진인데도 말이다. 마지막 여행은 새로운 방식으로, 조금 더 의미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를 가능케 할 조건들을 꼽아보았다. 첫째, 다른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을 만나야 한다. 둘째, 나의 여행 경비가 의미 있게 소비돼야 한다. 셋째, 나의 여행을 마음으로 기뻐하고 환영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정답은 바로 해외 자원봉사!

2주 가까운 장고의 기간 속에 선택한 것은 자원봉사였다.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자원봉사 시간만 겨우 채워왔던 내 마지막 여행에 자원봉사가 위치하게 된 데에는 세부계획에 앞서 세운 조건들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먼저 자원봉사는 지역 사회 혹은 각종 어려움을 겪는 현지인들에 대한 노동력을 제공하기에 직접적인 이해 관계자가 현지인이 된다. 이에 더해 참가비 등의 기타부대 비용은 기간 내 현지에서의 실질 생활비 및 전체 자원봉사의 기반을 다지는 데에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얼마만큼의 돈을 쓰느냐로 판단되는 일반적인 관광객이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로 방문하기에 나의 방문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을 때, 어느 새 내 손은 자원봉사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다음 난관은 자원봉사를 할 지역을 정하는 것이었다. 기왕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으니 관광의 목적만으로는 가기 힘든 곳, 지금까지 갔던 곳과는 다른 곳을 가고자 했고, 최종 행선지로 정해진 곳은 바로 바이킹과 엘프의 나라, 아이슬란드였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내에서도 수도 레이캬비크 인근이 아니라, 남쪽 해안가에 자리한 자그마한 마을 페트르시로 향했다. 라트비아,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영국, 일본에서 보인 7명의 동료들과 함께 말이다.

착한 마을, 페트르시에서의 건강한 2주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3시간 가량 떨어진 페트르시는 열 개 가량의 농가가 모여서 이뤄진 작디 작은 마을이다. 부모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페트르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각 농가는 마소 등의 목축업, 장기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등의 다양한 수입원을 갖고 있는데, 내가 일하게 된 베르굴 아저씨와 론 아주머니의 농장은 당근 재배과 유제품 생산을 주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농장에서 나오는 모든 상품들은 윤리적 소비가 지향하는 그것에 정확하게 부합했다.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당근과 감자는 지역 협동조합의 품질 인증을 받아 아이슬란드 내수용으로 판매되고 있었고, 유전자변형 옥수수가 아니라 광할한 들판의 풀을 먹고 자라는 50여 마리의 젖소에서 나오는 우유로 만들어진 치즈와 요거트 에서는 자연의 향이 물씬 느껴졌다. 그 곳에서 우리는 베르굴 아저씨와 론 아주머니, 그리고 2명의 장기 봉사자를 도와 하루 7시간의 일과를 2주간 지속해나갔다.

인터넷도 되지 않고, 작은 마트도 자동차로 30분을 넘게 가야 하는 곳에서 나는 일과 후의 하루하루를 착하게 채우는 법을 배웠다. 석양이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서는 아무 장애물도 없는 들판을 가로질러 뜀박질을 했고, 유달리 초록이 아름다운 날이면 물 한 통 들고 뒷산을 올랐다. 팀 리더였던 크리스틴이 등산 중 발견한 들꽃들을 주머니 한 가득 넣어온 날이면, 숙소 가득히 들꽃 향기가 가득했다. 직접 몰아서 풀을 먹인 소들이 선물해준 우유에는 매일이 다른 맛이 숨어있었고, 이 우유로 만든 치즈는 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돼 마트에서 팔리는 치즈와는 격이 달랐다. 이렇게 건강한 우유와 치즈, 그리고 직접 캔 당근으로 만든 당근잼과 당근케이크가 곁들어진 식사는 몸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건강하게 만들어줬다.

생각의 폭을 넓히면, 여행의 레벨이 달라진다

사실 모든 아이슬란드가 페트르시 마을 같은 것은 아니다. 대륙보다 오히려 북극에 가까운 위치, 섬 곳곳에 솟아있는 화산들과 그를 덮고 있는 빙하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마법은 유럽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경관들을 만들어냈고, 이 조화를 보러 한 해 140만명(2011년 기준)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이 투어버스를 타고 관광지로 조성한 온천과 바다, 폭포와 빙하를 오가는 일반적인 여행객이고, 히치하이킹을 한다거나 도보로 남북을 가로지르는 등의 특별한 여행은 도전의식 강한 소수 청년들에 의해서만 이뤄지고 있었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것은 유럽인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가항공이 발달한 유럽 내 에서도 직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변덕스런 날씨와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차를 렌트하거나 버스투어를 하지 않으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물가로 인해 여행에 기초적으로 투자되는 비용 자체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나 역시도 2주 간의 자원봉사를 위해 항공권과 참가비 등 총 70만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다.

여기서 혹자는 나에게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 하러 70만원 낼 바엔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을 하지 그랬냐’는 질문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선택의 이성적, 감성적 확신을 갖고 있다. 일단 70만원으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기존에 해왔던 것과 같은 식의 여행을 한다면 4일도 못 버티고 돌아가야 한다. 샌드위치 하나가 8~9000원에 이르는 물가 탓이다. 사실 2주간의 자원봉사 기간에서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만큼의 돈을 투자했느냐’가 아니라 ‘여행 기간 동안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닐까? 우리 8명은 다국적 렌터카 업체의 렌터카를 빌리지 않고도, 베르굴 아저씨의 차로 남쪽 해안가를 다 돌아봤다. 2시간 코스에 1인당 10만원이 넘는 빙하 탐험을 론 아주머니의 친분을 이용해 우리가 직접 캔 당근 한 상자로 해결했다. 단체관광객들이 가장 큰 폭포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갈 때, 우리는 직접 만든 먹을거리를 싸 들고가 폭포 앞에서 점심을 먹고, 그 힘으로 발길을 재촉해 남들이 지쳐서 가지 못하는 제일 뒤쪽의 폭포까지 모두 탐험했다. 게다가 2주 간의 자원봉사 기간 동안 관광지로서의 아이슬란드가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서 아이슬란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점점 줄어드는 청년 노동층, 지리적 위치로 인한 높은 물가와 불안한 내수경제, 천혜의 자연환경 뒤에 숨겨진 주민과 정부의 갈등 등 버스 창문 안에서는 절대 알지 못하는 사실들을 오며 가며 만나는 이들과의 대화로 알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사진과 추억들을 얻었다. 런던과 로마에서도 얻지 못한 스토리가 나의 2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공정여행과 자원봉사는 결국 한 형제다

일반적으로 윤리적 소비와 관계된 여행이라고 하면 공정여행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공정여행은 소수의 사회적 기업 또는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고, 공정여행을 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결국 이들이 제공하는 선택지 중에 고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윤리적 소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상품 자체가 부족한 지금의 상황은 더 많은 소비자를 유인하기는커녕, 선택을 강요하다가 잠재소비자를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착한’ 여행을 하고 싶지만, ‘착하다는 것만으로는’ 여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워크캠프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지 생산품 구매, 일회용품을 사용 자제 등의 개별적 행동은 윤리적 여행의 기반을 구성하고, 이를 토대로 한 윤리적 여행의 정신이 모여 모여 공정 여행을 조직화한다면, 현지에서 환경보호, 문화 및 사회적 인프라 구축, 아동 교육 등의 활동을 하는 워크캠프는 이 두 극의 중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후원하고, 공정무역을 실시하는 인도 오지의 농가를 방문하는 것만이 공정여행이 아니다. 오히려 공정여행을 그러한 틀에 가두는 것 자체가 윤리적 여행의 확산을 막고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소비자가 특정한 윤리적 소비를 하도록 통제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각각의 여행에서 윤리적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결국 공정한 여행이란 각 여행자의 인식과 행동에서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서울에서도 페트르시 마을을 느껴보자

2주 간의 워크캠프가 끝나고, 1년 간의 유럽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찾은 런던. 일반 관광객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였다.

하루에도 런던 중심가와 교외 공항을 십 수번씩 왕복하는 공항 버스, 그리고 이를 운전하는 폴란드 출신의 버스 기사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과속으로 질주했고 그렇게 아낀 2분은 담배와 한숨으로 가득했다. 파키스탄 이민자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호스텔 입구에는 미약한 와이파이라도 얻어보려는 젊은이들이 매일 밤 장사진을 치고 있었고, 하룻밤 18파운드짜리 27인실 방은 숙박비를 아껴 관광을 더하려는 젊은이들로 이틀 내내 불 꺼질 새가 없었다.

서울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더욱 심할 수도 있다. 서울에서는 나도 관광객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니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슬란드에서 윤리적으로 소비하고, 착하게 여행했던 2주간의 기억이 남아있는 한, 아주 가끔은 서울에서도 페트르시 마을의 흙과 바람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이 지겨워진 절은 그대여, 자원봉사를 하자. 새로워지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 비로소 피우는 건강한 생기의 꽃이 그대의 마음에 필 것이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2012년의 가을과 겨울 사이 즈음 일이다. 내 나이 29세,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으로 강남 의 대형 커피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난 후, 연극에 특출한 소질 없음 ‘반(50%)’, 생계 문제 ‘반’의 이유로 평범한 4년제 대학의 내 또래 친구들보다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터라, 커피업계에 몸 담은지도 어느덧 7년이 다 되어가던 해였다. 돌아보니, 스스로에게 “토닥토닥, 쓰담쓰담” 해주기에 마땅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오던 중, 급작스레 아버지 상을 치르게 되었고 방향 없이 쳇바퀴처럼 돌던 내 인생의 시계바늘을 잠시 멈추어, 미쳐 아직 쫓아오지 못한 내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고민 끝에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는 용기가 불쑥 생겼다. ‘내가 원하는 맛을 제공할 수 있는 카페를 차려야겠다.’ 라는 오랜 꿈을 저지를 용기 말이다. 우선 잘 다니던 회사를 당차게 그만 두었다. 그렇게 무작정 나의 홀로서기는 시작되었다. 

지난 7년간 숱한 매장을 오픈한 경험이 있었지만, 역시나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내 가게를 오픈하는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하늘도 무심하진 않으시지! 그 시기에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고, 참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이 사람을 통해, ‘공정무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참고로 이 사람의 직장은 생협이다.). 데이트 코스로 공정무역 페스티벌과, 신청사 공정무역카페 오픈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 당시 한창 특별한 메뉴를 고심하던 때라 더 솔깃했고, 생산자의 자립을 도움으로써 함께 상생할 수 있다는 점에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시혜’적 차원에서의 기부가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무역방식이 ‘나도 잘살고 남도 잘 살게 하자.’라는 내 운영철학과 잘 맞아든다는 생각에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메뉴준비에 포함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커피의 기본인 에스프레소까지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내 마음에 쏙 드는 에스프레소로 납품받기로 결정을 한 상태였고, 공정무역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모두 그 선한 의미만을 보고 가게를 오진 않기 때문이다. 아직 커피 맛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에스프레소까지 아직 맛을 모르는 공정무역 원두로 모두 바꾸는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대신 공정무역 제품으로는 핸드드립용이나 브루(기계로 내리는 커피)용과 티를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통 커피소비의 80~90%는 에스프레소 원두를 사용하고 나머지 10~20%는 드립커피나 티로 나간다.

공정무역 티(tea)의 경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Rishi-tea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품에 대한 설명들과 사업자를 위한 판매창이 개별로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맛과 품질 그리고 공정무역의 의미까지 모두 균형 있게 갖추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또한 거래과정에서 많은 안내책자와 포스터를 보내주어서 초반에 홍보하기도 수월했다.

이와 달리, 공정무역 커피는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처음으로 알아본 곳은 공정무역으로 유명한 K기관의 OOOO 원두였다. 우선 맛을 보고 싶어서 홈페이지를 뒤졌지만 원두에 대한 설명이나 구매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공정무역과 관련한 기사들과 후원 내용 외에 원두에 대한 정보들이 너무 없어서 본사에 전화를 하였다. 하지만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하여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런 상태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결국, 남자친구의 지인들께 수소문해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메뉴 중 하나를 공정무역 카테고리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치아파스 원두를 샘플로 받아보고 싶어요.”라는 내 질문에 난감해 하는 듯했다. 내 느낌엔 소매업자에게 이런 질문들을 받아보신 적이 많이 없는 듯 했다. 볶은 원두와 생두를 조금씩 샘플로 달라 하였더니 그제서야 조금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보내준다고는 하였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샘플이 오지 않았다. 다시 연락을 드렸다. 이런..! 아직 안 보내셨단다. ‘거래는 신용이 기본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나에겐 불쾌한 감이 있었지만, 정중하게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한 끝에 3일후 원두가 도착했다. 그래도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상기되어있었다. 다행히 예상했던 것보다 원두의 맛은 좋았다. 로스팅만 조금 조절한다면(생두로 납품을 받을 수 있다면 조정이 가능하기에) 맛도 의미적인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물론 공정무역으로 들여왔기에 시중에 있는 일반 원두보다 어느 정도 비쌀 것이란 예상은 하였지만, 그 예상보다도 훨씬 높은 금액이었다. 공정무역도 좋지만 카페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또 다른 공정무역 원두를 취급하는 A기관을 조사했다. 공정무역 커피로 가장 유명한 곳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 기관에서는 원두 샘플조차 받아 볼 수 없고, 인근 매장에서 구매하여 맛보라는 답변이 와서 황당했다. 그 황당한 마음을 가다듬고, 시키는 대로 직접 해당 기관의 매장에 가서 원두종류를 모두 구매해 보았고 시음해 보았다. 그 결과 이 원두로 한다면 내가 생각한 맛을 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담당자에 전화를 걸어 사업자로 거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 기관에서는 에스프레소 원두까지 모두 사용을 해야 도매가로 납품이 가능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일반매장에서 다른 소비자들과 똑같이 구매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물론 아주 소량의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면서 다른 것들도 모두 공정무역인 것처럼 거짓광고를 하는 것을 예방하고자 목적이 있을 수 있겠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은 솔직히 화가 났다. 소량이라도 취급을 가능케 하고, 표시를 정확히 구분하여 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좋은 의미로 메뉴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업체가 아니면 공정무역을 할 수 없는 걸까? 맛-가격-공정무역의 의미를 균형 있게 갖춘 공정무역 커피는 찾을 수 없는 걸까? 솔직히 현재의 가격수준으로는 개인 점주가 100% 공정무역 원두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작 일부‘만’ 공정무역 커피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일부‘라도’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감에 차있던 남자친구의 추천은 모두 실패하였고, 유명한 공정무역 기관들이 아닌 다른 개인 업체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교회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지인이 공정무역 원두를 비교적 저렴하게 제공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연락처를 받아 연락 해 보았다. 앞선 기관들과 달리, 샘플을 보내달라는 말에 흔쾌히 보내주신다고 한다. 약속한 기일에 papua new guinea 단종원두를 받아 볼 수 있었다. 파퓨아 지역에서 나오는 중간정도의 바디감과 밝은 꽃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품질 좋은 커피였다. 가격 역시 앞서 알아보았던 기관의 원두들보다 30%는 저렴했다. 품질도 신뢰할 수 있었다. 이 업체는 생두를 공정무역으로 수입하여 주문즉시 직접 로스팅하여 배송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굳이 에스프레소 원두가 아니더라도 단종(한 가지 원두)원두만도 판매 가능하다 했다. 하지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지라 기본 주문수량이 너무 많았다. 내 가게에서 한 달에 소진할 수 있는 양은 기본수량의 절반정도인데 난감했다. 그런데 내가 계속 난감해 하고 있으니 담당자는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가게운영을 처음 하는데 공정무역 카테고리 안에 단종원두 한 가지를 넣고 싶지만 그럴 경우 기본 주문량이 너무 많다.” 라고 솔직히 이야기 했더니 흔쾌히 절반만 공급하겠다고 제안 해주었다. 금액 역시 기본주문수량과 같은 금액대로 준다고 하였다(보통은 발주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할인율이 줄어든다.) 그래서 바로 주문을 넣었고, 그렇게 삼고초려 끝에 공정무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메뉴판에 작게 공정무역이라 써놓았더니 한동안은 아예 나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메뉴판을 전면 수정하여 제일 중앙에 판매되는 공정무역커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작성해 두었다. 그러자 손님들이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물론 에스프레소와 공정무역커피는 다른 유통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설명도 고객께 한다). 또한 공정무역 커피로 더치를 추출하니 그 맛 또한 깔끔하니 맛이 좋았다. 하루에 1~2잔 판매되던 공정무역 커피가 지금은 아이스커피로, 더치커피로 메뉴가 확장되고 판매율도 점점 상승중이다. 특히 선물용 더치커피가 많이 판매된다.

돌이켜 보건대, 처음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공정무역에 대한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손님들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제품에 관한 기본지식의 습득은 필수다)도 버거웠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공정무역 원두 공급업체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취급 하는 곳도 많지 않은데다, 나처럼 평범한 개인 카페 점주가 알아보기엔 정보들이 닫혀있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원두판매 업체와 같은 시스템과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요컨대, 공정무역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공정무역 가치의 스토리텔링은 기본으로 하되, 기본적인 사업 시스템과 서비스 정비가 함께 마련되어야한다. 나아가 100% 공정무역 제품을 취급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방법과는 달리, 나처럼 일부의 공정무역 제품만이라도 취급하여 가게를 망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운영해 나가면서, 조금씩 공정무역 제품에 적합한 메뉴를 개발하고 비중을 늘려나가는 방법도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기에 확산 가능한 성공적인 공정무역 카페 비즈니스 모델이지 않을까?

Posted by 사회적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