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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2011 공모전 시민심사

[일반부문] (수기) 소비도 다 같은 소비가 아니다 - 우경정



‘윤리적 소비’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유기농, 공정무역, 사회적기업, 웰빙’ 등 친숙하게 다가오는 단어들이 윤리적 소비와 같은 맥락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이미 윤리적 소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윤리적 소비는 참으로 다양한 범주에서 사용가능한 말이다. 특히 인간에게 이로운 생산과정, 재배과정 등을 따지는 현대 사회에서 윤리적 소비란 소비자의 특권이자 의무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일찌감치 특권을 누려온 축에 든다. 우리 집 앞에는 공방이 있다. 이 공방에서는 화학제품을 일체 첨가하지 않은 천연비누나 세제의 제조를 가르친다. 공방에서 단 두 번만 실습해도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비누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돈 주고 화학제품에 얼굴을 문지르던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우리 몸이 얼마나 쾌재를 부르겠는가.

일반 화학비누

예쁜 천연비누

윤리적 소비는 교묘하게 모순된 부분이 있다. 소비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사실 소비를 줄일수록 윤리적 소비자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과잉 소비에 중독되어 있다. 마치 많이 소비하는 것이 미덕인 양 너도나도 “더, 더, 더”를 외친다. 인류가 과도하게 생산해 낸 결과물의 상당수가 폐기되고 있고, 자원은 그만큼 낭비되고 있다는 현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여태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별일 있겠어’ 식의 불감증이 작용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가슴 아프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한 TV 공익광고를 보며 가슴 뜨끔한 경우가 있었다. 연간 차량 100만대에 달하는 20조 원 어치의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매년 한 가정 당 평균 114만 원 정도의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한다고 하니 지구 반대편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남아돌아가는 식량을 허기진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면 제품 가격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여 그대로 바다에 사장시켜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또한 시장논리에 완전히 지배되어 인간의 윤리성도 말라버린 현대 사회의 무정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론 적당량의 옳은 소비마저 줄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친환경 제품의 소비야말로 윤리적 생산을 해내는 ‘착한 생산자’를 돕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 그것이 낭비로 이어진다면 환경을 지키긴 커녕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필요한 물건 목록을 작성해서 과도한 소비를 자제하는 것이 윤리적 소비자의 기본자세이다. 부끄럽지만 잘난 듯 말하고 있는 나도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장보기 전에 필요한 것을 정리해가는 가벼운 수고는 계속 하고 있다. 체감효과는 엄청나다. 또 서울특별시에서는 ‘에코마일리지’라고 해서 가스나 수도 등 에너지 절약 가정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는 게 유감이다. 마일리지에 눈 먼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효율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CO2 배출량도 줄이고 포인트가 쌓이면 현금으로 전환도 해주니 일석이조다. 부디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얼마 전, 아빠가 동창회에 다녀오셨다. 아빠의 손에는 커피믹스 봉지 몇 개가 들려있었다. 사회적기업 활동을 하는 동창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나눠준 것이라고 하셨다. 명함 하나도 같이 있었다. 사회적기업에 대해서 도통 관심이 없던 나는 사회적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은 어딘가 하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정성스럽게 포장된 봉지며, 아빠의 권유로 마신 커피 맛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아빠 친구의 편지를 읽었다. ‘장애인이 만든 커피입니다. 이들은 남들보다 조금 느릴 뿐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합니다. 이 친구들은 커피를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일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들에게 용기를 주십시오’라고 써진 문구를 읽은 순간, ‘아차’했다. 난 왜 먹어보지도 않고 이 커피가 문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나와 같은 사람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은 설 곳이 없겠구나’ 깨달았다. 그 후로 우리 집은 아빠 친구가 일하는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커피를 신청해서 먹고 있다. 가격은 대기업에서 쏟아 붓는 커피에 비하면 살짝 비싸다. 하지만 단순히 커피만을 사는 게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가격 차이는 감수 할 수 있다. 상품의 질도 뛰어나다. 왜 지금껏 몰랐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에 대한 홍보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일정 사서 국민에게 무상으로 배포하는 방법도 고려되었으면 한다. 아직까지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직접 제품을 체험해 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내가 마시는 커피에는 장애인들의 정성과 노고가 담겨 있어서인지 커피가 정말 달다. 이 맛있는 커피를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어서 마셔보길 권한다. 커피 한 잔이지만 그 안에는 나눔과 사랑이란 조미료가 들어있다.

윤리적 소비는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실천이 쉽다. 실천 방향도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윤리적 소비로 인한 혜택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올바른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한 교육이야말로 사람을 구하고, 환경을 구하고, 지구를 살리는 최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