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벤트/2011 공모전 시민심사

[일반부문] (수기) 윤리적 소비 페스티벌 - 손범규



국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페스티벌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벌이 손에 꼽힌다. 그러나 에딘버러 페스티벌 덕에 더욱더 유명해진 페스티벌이 있다. 그것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프린지(Fringe) 페스티벌이다. 프린지의 사전적 의미는 변방 혹은 주변부를 뜻하지만, 프린지 페스티벌에서의 프린지란 미래지향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축제공동체를 뜻한다. 주류 공연예술축제의 대안적인 공연예술축제로서 프린지 페스티벌의 기원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영국 에딘버러와 프랑스 아비뇽에서는 대형 국제예술제를 처음 열게 된다. 이곳엔 세계적인 예술가와 작품들이 초청된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젊은 공연예술단체 8개가 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으나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 젊은 예술가들은 도심 중심부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국제예술제를 등지고 교외의 빈 창고, 지하실, 거리 등의 허름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공연을 선보이게 된다. 이런 그들의 당돌한 도전과 진한 진정성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 냈고, 그 성공적인 결과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이 후 세계 곳곳으로 전파된다. 이러한 현상은 “Fringe Movement"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 생명력을 유지해 가고 있다.

그리고 2010년 여름 서울의 변두리에서, 바로 이 프린지 페스티벌 이야기에 크게 감명 받아 수시로 작당모임을 하던 두 청년이 있었다. 그 것은 바로 나와 P모씨라는 형 이였다. 나와 P씨의 고민의 출발점은 ‘윤리적 소비라는 것을 단순히 교육이나 캠페인과 같이 계몽적이고 지루한 방법이 아닌, 프린지 페스티벌처럼 재미난 축제의 형식으로 공감해 볼 수는 없을까?’에 있었다. 늘 그렇듯, 아무리 옳고 좋은 얘기라도 엄숙한 표정으로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주위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던가! 우리의 이런 발칙한 상상력은 우연한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서 2009년부터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의 목적에서 해오던 ‘LOVE FESTIVAL’이라는 벼룩시장의 기획을 맡게 된 것 이였다. 비록 명목적으로 이 행사의 주최는 교회였지만, 본래 취지는 교회 내부의 행사가 아니라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동대문구 마을 전체의 행사였다. 즉 교회와 동대문구 지역 시민단체 등을 통해 물건을 기증받고, 이를 벼룩시장을 통해 판매한 후 그 수익금을 전액 다시 지역사회 불우이웃에게 환원하기 위하여 시작된 행사였던 것이다. 우리는 물 만난 고기처럼 기존의 단순한 벼룩시장을 반복 하는 것 에서 머물지 않고, 그 동안의 고민에서 싹튼 상상력을 더해 축제를 준비했다. 프린지 페스티벌을 준비하던 그 젊은 예술가들처럼 말이다. 제일 먼저 페스티벌에 뜻을 같이하는 팀원들을 모집해 준비 위원회를 꾸렸고, 축제 당일 날 부족한 일손을 채워 줄 자원봉사활동가들을 모집한 후 업무분장을 했다. 전체적인 기획은 작년과 다르게 ‘벼룩시장 + 사회적 기업 페스티벌 + 문화공연’이라는 3가지 테마로 틀을 잡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사회적 기업페스티벌 기획팀을 맡았다. 우리 팀은 수많은 논의 끝에 ‘환경’, ‘자활’, 그리고 ‘문화’라는 키워드로 페스티벌에 초대할 사회적 기업을 선정하기로 했다. 그 기준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친환경적인 사업을 주요업무로 하는 기업, 차상위 계층이나 빈곤층의 자활을 돕는 기업, 그리고 문화예술공연을 하는 사회적 기업 리스트를 뽑아 섭외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준비는 생각보다 순조롭지 않았다. 아무래도 교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이다 보니 교회 내 작은 행사일 것이라는 선입견들과, 젊은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여는 사회적 기업 페스티벌이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을지 에 대한 의심 어린 시선들 때문 이였음 이라 짐작 된다. 그리하여 팀원 모두가 한 달 내내 섭외하는 데에만 가장 애를 먹었다. 그런 수많은 논의와 접촉 끝에 최종적으로 사회적 기업 10곳의 섭외에 성공했다. 그 중 4곳은 다음과 같은 친환경 사회적 기업 이였다. i)폐현수막과 지하철 광고판을 재활용하여 가방, 각종 파우치, 필통, 열쇠고리 등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터치포굿’, ii)버려지는 것들을 활용하여 목도리, 양말, 파우치, 인형, 가방 등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그 밖에 지속적인 소재들을 개발하는 ‘에코 파티 메아리’, 이주 여성들의 자립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재활용 소재로 파우치, 엽서, 핸드폰 줄, 반지, 목걸이, 열쇠고리를 만드는 ‘에코팜므’, iii)폐가전제품을 수집하여 재활용하는 기업 ‘아이티 그린’이였다. 또한 자활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은 다음과 같이 3곳이 섭외됐다. i)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빅이슈 코리아’, ii)청각 장애우들이 만드는 떡집 ‘떡 프린스’, iii)러시아 연해주 고려인들이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콩과 청국장 홍시를 파는 ‘바리의 꿈’. 끝으로 페스티벌에서 빠질 수 없는 문화 공연과 다양한 체험행사를 위해 문화예술교육으로 마을 살리기 사업을 하는 ‘자바르떼’와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고 상담해주는 ‘희망나눔센터’ 그리고 교회 내에서 끼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는 콩바(콩한쪽과 쌍쌍바)라는 단체를 섭외했다.  

이 밖에도 홍보동영상, 팜플렛, 플래카드, 벽보 등을 자체 제작하여, 교회 내 홍보는 물론 지역사회에 홍보를 진행하였다. 특히 버려지는 휴대폰에서 쓸 수 있는 부품들을 분리해 내는 ‘아이티 그린’을 위해 집에서 놀고 있는 폐휴대폰을 축제 당일 날 가져다 주실 것을 예배는 물론 지역사회 곳곳에 알렸다. 그렇게 청년들의 자발적인 축제는 우여곡절 끝에 준비가 완료되었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의 축제는 시작되었다. 교회 앞의 주차장 전체를 이틀 동안 빌려 절반은 사회적 기업 페스티벌, 나머지 절반은 품목별 벼룩시장과 먹거리 시장, 가운데 스테이지에선 자바르떼 소속의 여러 공연팀들의 음악공연, 그리고 교회 내 강당에선 콩바의 새터민들의 삶을 주제로 한 뮤지컬이 진행됐다. 벼룩시장에는 노트북과 기타와 같은 고가에서부터 저가의 다양한 기증품들이 거래되었고, 먹거리 시장은 페스티벌을 즐기는 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충분할만큼 맛갈졌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 페스티벌에서는 친환경 제품들로 만들어진 각종 제품들, 떡프린스의 떡, 그리고 빅이슈가 날개 돗친듯 팔렸고, 사회적 기업 자체에 대한 관심들도 엄청났다. 특히 에코팜므’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재활용품에 그림을 그려 목걸이를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 좋았고, 아이티 그린에도 많은 폐휴대폰이 기증되었으며, 중앙 스테이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바르떼의 다채로운 음악공연을 즐겼다. 아이에서부터 어른들까지의 다양한 연령층, 교인에서부터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 및 근처 경영대학에서 사회적기업을 연구하시는 대학교수님들까지 매우 다양한 지역 주민들이 축제에 와 주셨다. 최종 집계결과 대략 1039명의 방문객이 있었고, 총 약10,500,000원의 수익을 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체 순수익은 전액 동대문구 지역 다문화가정을 위해 기부했다. 이는 총 207명의 스텝 및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흘린 땀과 200여명의 물품 기증자들의 마음의 결실 이였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믿기 힘든 결과였다. 윤리적 소비라는 주제로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수익을 내서 이를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페스티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돌이켜 생각건대, 아마도 그 힘의 원천은 페스티벌이 갖는 즐거움 즉 문화의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적인 수치는 뒤로하더라도 본 축제가 남긴 가장 큰 자산은 축제에 참여한 한 사람 한 사람 맘속에 아로 새겨진 추억, 즉 ‘환경’, ‘자활’, ‘문화’가 페스티벌 안에서 유쾌하게 어우러진 '재미'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빅이슈 코리아’의 편집장님과 동대문구 지역 노숙인 관련 단체 대표님과의 만남을 주선했으나 노숙인 관련 단체 대표님들이 아직 ‘빅이슈’라는 것을 모르셔서 약속 당일 날 와 주시지 않았던 점, ‘위캔쿠키’를 교회 내 카페에 납품할 수 있도록 목사님을 설득하여 계약서까지 마련해 놓았는데, 위캔쿠키 쪽에서 당일 아침 참가취소를 한 점 등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처음 기대보다 훨씬 더 성공적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렇게,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문전박대 받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변두리에서 더 아름답게 빛났던 젊은 예술가들의 꿈과 도전이 60여 년이 지난 2010년 한국의 두 청년의 맘으로 옮겨와 성공적인 윤리적 소비 페스티벌의 개최로 이어졌다.

끝으로, 본 페스티벌에서의 가장 큰 교훈은 ‘윤리적 소비’, ‘종교’, 그리고 ‘문화’간의 조화는 씨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였다. 윤리적 소비는 제품의 가격너머에 있는 윤리적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대중성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어느 종교도 각자의 교리 안에 인륜적으로 보편타당한 윤리적 가치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가치를 현실사회에서 적용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래서 곧잘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한편 문화는 자본과 이성적인 사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공감하게끔 하는 데에 있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장 논리 하에서 문화 자체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자립이 쉽지 않다. 이렇듯 윤리적 소비-종교-문화는 각각 치명적인 단점들을 가지고 있기에, 신자유시대에서 독자노선을 고수하다가는 사회적 소수가 되기 쉽다. 약자가 공생하기 위해서는 함께 손을 잡고 연대해야 한다. 숲에는 한 종류의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독버섯도 있다. 그러나 결국 숲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각자의 입장에서 차이를 보기에 앞서 윤리라는 가치의 공통분모를 먼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즉, 윤리적 소비를 상업적 광고가 아닌 문화의 힘을 빌어 홍보하면서 서로 공생하고, 종교 또한 그 적극적인 실행주체로서 참여하여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착하기 만한 윤리적 소비여, 착하고 싶은 ‘종교’와 좀 놀 줄 아는 ‘문화’에게 친구요청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