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비의 힘/윤리적 소비란?

어린이는 소비자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다

[싱크탱크 광장] 어린이는 소비자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다

 어린이 관련 산업이 전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이들을 상대로 한 기업의 마케팅과 광고에도 한층 높은 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유니세프 제공 LAOA2011-00062

관심 높아지는 아동친화경영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와 함께 ‘아동친화경영’을 국내기업들에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동친화경영은 기업 경영에서 어린이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어린이를 ‘설득하기 쉬운 소비자’로만 보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1 올해 초 <뉴욕 타임스>는 미국 총기업체와 총기소유 옹호단체들이 ‘총기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많은 예산을 들여 어린이용 총기를 개발하는가 하면, 이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지도하거나 사격대회를 열고 있다. 잇단 총기사고로 규제가 강화되는 데 위기감을 느낀 총기업체들이 ‘미래의 고객’인 어린이들이 총기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고 익숙해질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주니어슈터스>라는 어린이용 총기 잡지도 나왔는데, 반자동 소총을 든 15살 소녀를 표지모델로 쓰기도 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소총의 할인쿠폰을 제시하며 “부모에게 전달하면 (총을)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 유혹하기도 했다.

 #2 세계적인 생활용품 업체인 유니레버가 생산하는 품목 중에는 ‘라이프부이’라는 항균비누가 있다. 유니레버는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지에서 손씻기 캠페인을 하는데, “손을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도 설사병을 줄일 수 있다”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설사는 간단한 병 같지만 전세계 소아사망 원인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유니레버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는 손씻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건강도 증진하고 자사 제품의 매출도 늘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고 있다.

어린이는 기업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업기회다. 아이를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어서 아동 관련 산업은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다. 5월 초 농협경제연구원은 2003년 10조원이던 국내 어린이 산업 규모가 2011년 현재 30조원으로 8년 만에 3배나 커졌다고 밝혔다.

어린이 산업의 팽창은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1990년대에 이미 ‘식스 포켓’이란 유행어까지 나왔다. ‘식스 포켓’이란 1명의 어린이를 위해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까지 6명이 기꺼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것을 말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경제력을 가진 조부모들이 집안의 귀한 손주를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아서 생겨난 풍조다.

그래서 기업들은 어린이를 상대로 한 마케팅이나 광고에 심혈을 기울인다. 통신사들이 노인과 청소년을 어떻게 달리 대하는지만 봐도 안다. 그 마케팅 방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것은 물론,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선을 심심치 않게 넘나들기도 한다.

기업의 마케팅에 어린이들이 ‘포획’되는 현상은 미디어의 발달로 한층 심화되고 있다. 미국 카이저가족재단이 2010년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8~18살 아이들이 미디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7시간38분이다. 최근 조사에서 서울시 초중고생의 7%가 스마트폰이 손에서 벗어나면 금단현상을 겪는 고위험군으로 판명됐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전자 단말기에는 기업의 광고가 넘쳐날 뿐 아니라 어린이들이 푹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들이 판을 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법학자인 조엘 바칸이 쓴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RHK)을 보면 장난감, 의류, 게임 같은 전통적인 분야뿐 아니라 의료나 교육 쪽에서 기업들이 큰 ‘어린이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소아정신과가 급속히 커진 것이 한 예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어린이 정신장애 진단과 약물치료가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1980년 의회가 산학협력을 명분으로 의학연구에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하자 의학계와 제약업계가 한배를 탄 관계가 됐다. 다루기 힘든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내리고, 돌봄이 아니라 약물을 처방하는 대상이 됐다.

바칸의 고발이 극단적인 것 같지만, 미국화 되어 가는 우리 사회, 우리 기업의 미래일 수도 있다. 지금도 기업은 어린이와 관련된 공적 규제의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전 한국케이블텔레비전방송협회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규제 때문에 매출이 급감하고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며 방송위원회에 △어린이 의약품 광고규제 완화 △분유 등 방송광고 금지품목 축소 △주인공을 이용한 방송광고 허용 등을 요구했다.

넬슨 만델라는 “사회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만큼 그 사회의 정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기업이 어린이를 단순히 소비자로 볼 것인가 우리 모두의 미래로 볼 것인가는 사회책임을 이행하려는 기업이라면 우선 물어야 할 질문이다. 유니베라처럼 착한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 경영을 어린이에게도 적용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어 보인다. 구글의 초심을 표현한 “사악해지지 말자”는 아동과 기업의 관계에도 꼭 들어맞는 표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산나 존슨 중국 ‘아동권리와 기업사회책임센터’(CCR CSR) 전무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연구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중국기업에 아동친화경영 안내역할 해요”

 인터뷰 / 산나 존슨 ‘CCR CSR’ 전무

 ‘아동권리와 기업사회책임센터’(CCR CSR)는 국제아동권리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이 2009년 중국 베이징에 세운 사회적기업이다. 엔지오(비정부기구)가 기업의 아동친화경영을 돕기 위해 사회적기업을 만든 것은 처음이다. ‘2013 아동친화경영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산나 존슨 전무는 지난달 3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경영활동에서 아동권리가 존중될 수 있도록 파트너로서 기업과 대화하고 협력하며 기업의 좋은 안내자 구실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실험이 성공하면 앞으로 아프리카 등 주요 생산지역으로 비슷한 형태의 센터를 만들어 가려 한다”고 말했다.
 
아동친화경영 지원 사회적기업을 만든 계기와 과정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가구업체 이케아, 의류업체 에이치앤엠 등 해외 진출 기업들이 아동노동 문제에 얽혀 도움을 청해 왔다. 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은 이들 기업 제품 불매운동을 하기에 앞서 스웨덴대사관과 함께 ‘지역사회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엔지오 등록이 어려워,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기업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법적인 지위를 얻었다.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효율적인 모델이다. 전례가 없는 실험적 모델로 성공하면 나중에 아프리카 등 주요 생산지역에도 만들었으면 한다.”

기존 엔지오나 일반 컨설팅 기업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엔지오는 대개 사회적 문제에 연루된 기업에 해결을 촉구할 따름이다. 우리는 전문성과 서비스로 기업경영을 지원해 기업활동에 효과적인 변화를 촉진한다. 일반 컨설팅 업체와 달리 수익이 나면 모두 세이브더칠드런에 기부한다.”

주요 사업내용은 무엇인가?

“아동권리와 경영원칙 실현을 위해 기업에 자문하고 조사, 연구, 진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글로벌기업의 공급망인 중국공장에서 근로자와 관리자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 공급업체에서 연소근로자의 보호, 아동노동 예방을 위한 피아이에스피(PISP) 프로젝트이다. 이케아, 에치앤엠, 디즈니 등 기업 7곳이 펀딩해 2011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올해 2월 휼렛패커드와 협업해 학생과 파견 근로자의 고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실행하는 프로젝트이다.”

아동권리 인식개선 사업에서 중국 정부와의 관계는?

“주중 스웨덴대사관 내 시에스아르 센터에서 현지 공무원들을 교육한다. 주로 재무부 공무원이 많다. 중국 정부와 주중 스웨덴대사관은 2007부터 3차례에 걸쳐 협약을 체결해, 기업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나누기로 했다. 중국 정부가 먼저 스웨덴 정부에 협약을 요청했다. 스웨덴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혼합시스템이 중국에 매력적으로 보인 것 같다.”

중국에 진출하거나 공급업체가 있는 한국기업들은 아동노동 이슈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엄격한 행동강령을 마련해야 한다. 일하는 연령, 야간근로, 근로감독, 안전, 건강 등을 한국기업들이 중국 파트너들에게 좀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또다른 포인트는 중국의 법적 의무를 지키며 인력 관리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것은 아동노동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 중간단계에서는 아이들을 위험한 작업환경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관리하고 지원해야 한다.”

기업들이 사회책임경영 활동을 하는데 아동 이슈를 또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사회책임경영활동을 좀더 정제하고 좀더 깊게 들어가는 것, 아동에게 조금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일 뿐이다.”

앞으로의 사업계획은?

“국제적으로 일했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러닝(e-learning)으로 기업의 아동친화경영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배우면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알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심어주고 교육을 한다. 우리의 사업은 기업과 대화하고 함께하는 활동들이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Posted by 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