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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상작

[일반부문] (수기) 어떻게 살까 - 이성주

 

멀리에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 가까이에는 벌거벗고 서 있는 아이, 땅은 가물었는지 갈라져있고 한쪽에서는 갈라진 땅이 파도가 되어 아이를 덮치려는 그림 한 장.

작년 봄 경기도의 한 대안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4주간의 교생실습을 함께 하게 되었다.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국어과 담당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수업을 마음대로 준비해서 해보라고 하셨고, 나는 수업 활동 중에 하나로 이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그간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에 조금의 기대를 품은 것도 사실이지만 중학교 1학년이기에 ‘사막화’나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의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대답은 나의 상상, 나의 감수성을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어떤 아이는 ‘파도를 괴물에 빗대어 SF적인 상상의 이야기’를 또 어떤 아이는 ‘자신을 앙상한 나무에 빗대어 헐겁게 서서 아파하는 친구(아프리카 아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비겁한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의 감성이 나를 울렸지만 그 중에서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담고 있는 대답이 있다.

“내가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버리는 모든 것들이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파도가 되어 덮치는 일이 된다.”

수업을 마치고 이 아이의 답변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아프기도 했다.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이상, 어떻게 살아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과 그동안 몰랐던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실습이 끝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일상이 낯설게 되는 순간을 마주했다. 가령 아이의 말은 지하철 전동차 한 쪽 벽면에 지하철을 타면 탄소가 얼마만큼 줄어들고, 또 나무 몇 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광고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아이의 말에 의하면 내가 일상적으로 타고 다니는 지하철도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는 아이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교통수단이고 평생을 걷는 것 이외의 이동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일이겠구나.’

그럼에도 한동안 나는 대안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인간’이라는 동물은 ‘인간’이외의 생명체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종(種)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아니, 도움은커녕 엄청난 피해만 주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면 존재 자체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까.

교생실습을 했던 작년 1학기를 끝내고,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나는 1년의 휴학을 결심했다. 지금 그 1년을 막 끝내고 난 뒤라, 그간 경험했던 낯설고 새로운 일상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휴학을 하고 가장 처음으로 했던 것은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일이었다. 시골의 어르신들에게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자는 곳을 제공 받기도 했다. 어떤 시골 마을의 이장님은 농사를 지으며 시골에 살고 싶다는 나의 말에 “너는 된다.”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단호하게 이야기하셨다. 그 이장님의 말이 용기가 되어 나를 밀어줬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내 소망은 현실이 되었다.

자전거 여행의 종착지는 충남 아산이 되었다. 바로 며칠 전에 내가 여행할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으니, 최근 까지 내가 머물던 정류장은 ‘그 곳’이었다.

우연히 머물렀으나,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또 많은 것을 배웠다. 낯선 청년에게 숙식과 용돈도 주셨던 농부 선생님을 비롯해 시골 마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곳에서 자연드림 매장으로 가는 벌꿀의 생산부터 포장과 물류센터로 배달하는 과정을 경험했고,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마을 회의에도 간간히 얼굴을 내밀었다. 전에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한살림이라는 이름도 자주 접하게 되었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어른들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곳은 전에 내가 살던 세계와 다른 세계였고, 또 내가 살던 세계보다 더 ‘살아 있는’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가 살던 세계 자체에 의심을 품고 있는 나에게 그곳에 살던 어른들은 확신이 있어 보였고 빛나 보이기도 했다. 분명 그랬지만, 나는 그곳의 세계와 내가 살던 세계가 ‘다른 세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곳에 머물고 배우면서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 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떠나기 마지막 한 달에 나는 그 실마리를 어렴풋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생협이나, 농사, 마을 만들기, 로컬 푸드와 같은 생소한 단어들에 매료되어 그것과 관련된 일만 하다 보니 무언가 놓치는 것이 있었다. 가령 시골 마을에 살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얼굴과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그런 것이다. 마지막 한 달,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나는 마을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만들기 위해 80이 넘은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그들의 삶을 듣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10개월보다 마지막 1개월에 마을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가 떠나는 날 누구보다 서운해 했던 것은 마을 어르신들이었고, 많이 섭섭해 했던 할머니 눈을 보다가 내 눈에도 무언가가 고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생면부지의 낯선 청년과 어르신들이 나눈 것은 지금의 세계에서 꼭 필요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소비는 ‘사는 것(買)’이 아니라 ‘사는 것(生)’ 그 자체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과도 같다. 그 대답의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협동조합이라는 단어나 사회적 기업이라는 단어는 물론 좋은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그런 좋은 시스템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아산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직접 생산한 꿀을 가지고 카드로 옷을 사도 할인을 해주는 이상한 옷가게를 들렸다. 이런 대화를 하는 단골 옷가게.
“카드로 사는 거니까 깎아주시지 마세요.”
“파는 사람 마음이에요.”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마음’이 나누어지는 소비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여전히 의심하고 방황하는 청년으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