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을 춤추게 하는 협동조합

[99%의 경제]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는 ‘건강한 밥상’이라는 이름의 영농조합법인이 있다. 조합원 100명이 1200만원의 자본금을 마련해 2010년 10월부터 도시 소비자에게 10여개 제철 농산물을 배달하는 ‘건강밥상 꾸러미’란 사업을 운영한다. 꾸러미에 들어가는 품목은 조합원(지역의 고령농과 소농)이 생산하는 유기농산물이다. 이 영농조합법인의 건강밥상 꾸러미는 매주 3500가구에 8000개씩 배달되고 있다. 연 30억원 매출을 올리는데, 최소한의 유통비용을 제외한 수입이 법인에 참여한 농민에게 돌아간다.

고령농과 소농의 안정적인 소득 창출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완주군의 로컬푸드 활성화와 마을기업 육성사업이 성공 궤도에 오르면서 농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있다. 올해 2월 주민 40명이 5000만원을 출자해 설립한 용진면 도계마을의 영농조합법인 또한 싱싱하고 저렴한 농민매장이란 평가를 받는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등에 납품해 1인당 월 15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건강힐링마을로 사랑받고 있는 구이면 안덕파워빌리지도 마찬가지다. 땀 흘려 가꾼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며, 동시에 작지만 서로가 힘을 합치는 공동체 모델을 정립해가는 성공사례들이다. 정부가 외쳐대는 기업농이 아니라 소규모 가족농이 예전에는 결코 꿈꿀 수 없었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파급효과는 농촌에 그치지 않는다. 5명의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운영하는 ‘마더쿠키’는 사랑과 영양이 듬뿍 묻어나는 빵을, 중증 장애인들이 주축인 ‘완주 떡메마을’은 고실고실한 전통 떡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지역 내 태양광 발전시설을 운영할 공동체 회사의 탄생도 목전에 두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의 그늘이 깊고 시장 개방 이후 농업이 황폐화될 것이란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경제안정과 사회통합의 요구가 커지고, 그를 담당할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상위 1%가 아닌, 99%가 잘사는 경제를 구현하는 협동조합 활성화는 그리 어렵지 않다. 농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층이 당장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가장 잘하는 일을 하도록 토대를 만들어주고 약간의 도움을 주면 된다. 그러면 모두가 웃고 행복해지는 사회와 국가를 만들 수 있다.

로컬푸드, 마을회사, 커뮤니티비즈니스, 두레농장, 귀농귀촌, 재래시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형 주민 공동체사업 모델을 발굴하고 이를 협동조합으로 확대해 나가는 도전에 완주군이 나서고 있다. 주민 모두를 웃게 하는 일이다.

임정엽 전라북도 완주군수

Posted by 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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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과 협동조합 '천생연분'

[99%의 경제] HERI의 시선

2012년 런던올림픽은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도 끌어올렸다. 대회 기간에 소비되는 커피, 홍차, 설탕, 바나나 등 주요 음식물에 윤리적 기준을 적용해,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제품만 사용하는 것은 영국의 전통과 문화적 가치를 보여주려 한 개막식과 맥이 닿는 것 같다.

이런 공정무역은 협동조합 운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실제 2010년 3월 런던에서 공정무역과 협동조합을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는 둘 사이의 관계를 ‘천생연분’(a match made in heaven)이라 표현했다. 우선 협동조합과 공정무역은 비슷한 정신을 공유한다. 협동조합은 농·축·수산업 생산자에게는 안정적인 가격과 판로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질 좋고 저렴한 상품을 공급해 생산자-소비자의 상생을 도모한다. 이런 정신을 국경 밖으로 연장하면 공정무역이 보인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의 생산물에 ‘약탈적’이 아닌 ‘지속가능한’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이들의 자활을 돕는 공정무역은 거대 독점자본에 맞서 경제적 약자가 단결하고 상부상조하는 협동조합의 정신과 같다. 그래서 공정무역의 출발과 도착점, 즉 생산과 소비에는 협동조합이 함께한다. 우선 선진국의 생활협동조합은 소비에서 가격뿐 아니라 윤리적 기준도 적용한다. 수입된 농·수·축산물의 생산과 공급과정에서 아동노동 같은 인권 침해가 없었는지를 알아보고, 전반적으로 저개발국 생산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쪽으로 구매 결정을 내린다. 덕분에 저개발국 생산자는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게 된다.

반대편에는 생산자 협동조합이 있다. 사실 공정무역은 개별 생산자보다는 생산자 협동조합과 주로 거래를 한다. 현재 저개발국에서 수출되는 공정무역 제품의 75%가 이런 협동조합이 출하한 제품이다. 영국 공정무역 단체 도움을 받아 탄생한 가나의 쿠아파 코쿠 협동조합은 전세계 카카오 판매의 8%를 차지할 만큼 컸고, 2006년에는 영국의 ‘디바인’ 초콜릿 회사의 지분 45%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기도 했다. 공정무역을 통해 만들어진 생산자 협동조합은 또 저개발국 주민들의 자치와 참여의 디딤돌이 된다. 공정무역 프리미엄(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된 가격에서 나온 추가 소득)을 교육, 의료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어떻게 쓸지를 결정하는 데 협동조합의 1인1표 민주주의가 적용된다. 또 전통적으로 소외되었던 저개발국 여성들이 조합회의 등을 통해 사회적 발언권을 키워가는 것도 값진 결실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Posted by 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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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착하면 따뜻하다. 얼굴이 착하면 예쁘다. 그럼 문제, 소비가 착하면? 정답을 알고 싶다면 당당히 외쳐보자. 우리의 소비는 당신의 생산보다 ‘생산적’이다! 라고.

 

HERI Review에서 ‘착한 경제’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을때 였습니다. 신문이 나오고 몇 일 후 이 단어에 대한 독자 투고가 들어왔습니다. 글을 보내주신 독자분은 어느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글의 요지는, 경제란 단어는 가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착하다 착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착한 경제라는 단어가 국어학적으로 말도 안되는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고백하자면, ‘소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가 착하거나 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소비’ 자체가 착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국어학’적으로 말이죠. (이런 이야기 함부로 하다가 혼날까 무섭긴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구요? 느낌 때문이죠! ‘착한 소비’ 하면, 느낌이 팍! 오지 않으세요?


사실 착한 소비의 공식 이름은 지속가능한 소비, 또는 윤리적인 소비입니다. 지속가능한 소비와 윤리적 소비는, 쉽게 표현하자면 배다른 형제 같은 관계 입니다. 누가 품었는가, 즉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 조금 다른 성격을 보이는 셈이죠.


지속가능한 소비의 어머니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환경을 보호하는 것, 그것을 지속가능한 소비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UNEP(UN산하 환경전문기구)에서는 지속가능한 소비란 ‘과소비를 줄이고 환경의 파괴를 피하면서’ 이루어져야 하며, ‘제품의 사용뿐 아니라 폐기와도 관련이 깊다’고 말하고 있죠. 환경을 생각한다면 소비하는 것보다 소비 후 나온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느냐가 더 중요할테니까요.


그렇다면 윤리적인 소비의 어머니는? 아마도 ‘인권’ 혹은 ‘사람’일 것 같네요. 일반적으로 윤리적인 소비를 설명할 때에는 최종 아웃풋으로 나온 제품 자체의 품질 뿐 아니라 그 제품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서도 가치를 부여하여 소비하는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생산 과정에서 누군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는 않았는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몇몇 선구적인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생산 과정을 지켜보기 어렵고 그래서 피해가 가기 쉬운 제 3세계에서의 생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리고 윤리적인 소비를 가능하도록 하는 생산에 대해 사회는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가능한 소비와 윤리적인 소비는 비슷하게 성장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유사한 정의로 설명되곤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착한 소비 형제, 즉 지속가능한 소비와 윤리적 소비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은 중요한 일일 것 같군요.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무엇)인가 하는 것은 결국 ‘착한 소비’를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테니까요.


아시다시피,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착한 소비 형제의 호적을 이 단어 밑에 넣어두고 싶군요. 바로 ‘책임감’ 말입니다.


지속가능한 소비건 윤리적인 소비건, 즉 환경에 대해서건 생산자에 대해서건, 소비자로서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은 같습니다. 제품이 생산 과정을 통해 가치가 더해지는 사슬을 가지고 있다면, 소비자는 이 가치 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극대화된 가치를 사용함으로써 제품이 갖는 가치의 대부분을 없애는 역할을 합니다.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던 효용을 얻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비용을 줄이자고 가치가 쌓이는 과정에 대해 눈을 감아서는 안되겠죠. 소비자는 사슬 최고의 권력자로서, 제품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며 버려지는 일련의 가치 사슬이 건전하고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장(?)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생산 과정 – 소비 과정 – 폐기 과정에 이르기까지 불가침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지요.


바로 이 ‘책임’이 착한 소비의 핵심입니다. 이 책임은 ‘나의 행복을 위해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의, 그 무엇의 어쩔 수 없는 피해도 좌시 하지 않겠다!’ 정도의 다짐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때문에 착한 소비는 지구는 물론,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과 소비자 본인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소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UNEP에서는 학생들에게 개념을 소개할때, 지속가능한 소비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 충족/삶의 질 높이기/자원의 고른 분배/다음 세대를 위한 여러 행동/
소비할 때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관점 유지하기/자원을 최소화하여 쓰레기와 공해 줄이기


결국 모든 주체, 모든 과정, 모든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겠지요.

다소 복잡하고 난해한 개념인 것 같지만,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착한 소비란, 그 누구도 피해 보지 않는 소비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제품을 선택할때마다 되짚어 보는겁니다.
관련된 모두가 일한만큼 대가를 받았을까? 보호 받아야 하는 어린이가, 혹은 원치 않는 누군가가 강제로 일을 하진 않았을까? 환경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재료를 사용했을까? 혹은 괜한 동물이 희생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내가 이걸 구입해서 힘든 처지에 놓인 누군가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될까? 마지막으로, 이걸 버릴때 지구가 아파하진 않을까?

 

착한 소비라는 키워드를 가진 플리커(Flickr)의 사진들

사진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Flickr)에서 착한 소비로 검색해서 찾은 사진들. 마치 개념의 복잡성을 보여주듯 다양한 사진들이 검색되었다.



어떤가요? 내가 소비하면 할 수록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지는 상황, 제품의 가치가 소비되면서 남은 것이 쓰레기가 아니라 또 다른 가치가 생겨나는 상황, 소비가 생산보다 더 ‘생산적’인 상황. 마치 마법 같지 않나요? 마법 같지만 현실적인 이야기가 바로 ‘착한 소비’의 이야기 입니다.



출처: 한겨레경제연구소 착한경제블로그 http://goodeconomy.hani.co.kr/archives/926
작성일: 2010.4.12

Posted by 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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