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청소년부문 수상작

윤리적 소비 자유분야 수기 부문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꽃을 일으키듯이!
(이민혜
)



 

 

위코노미 class! 이것은 나의 청소년기에 새로운 비전과 도전을 주는 만남이다!
위코노미 class? 과연 어떤 수업? 궁금함과 호기심으로 존경하는 담임선생님이 맡고 계셔서 지원하게 되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공정무역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마치 내가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시원한 얼음물을 가져다 준 기분이었다.
미래의 외교관 이민혜의 마음에 작은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야!”라는 소명이 들었다.

지구의 한쪽 끝에 고통당하는 이들이 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단지 우리들이 무관심했을 뿐이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다행히 이미 누군가가 그들의 아픔을 알고 공정무역을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모두가 함께 공정무역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와 그들이 모두 함께 사는 길이다.

다행히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 가정은 이미 공정무역을 실천하고 있었다. 엄마는 먹거리를 고를 때 제품 내용을 세심하게 살피시는데 이런 엄마의 마음과 공정무역가게인 생협의 마음이 일치했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마음 편하게 생협을 이용하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와 아빠는 생협만을 고집하시는 엄마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협의 먹거리들은 시중에서 파는 먹거리보다 다양하지 않았고 맛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와 내가 마트에 가는 날에는 그동안 우리가 먹고 싶었던 것을 양손에 가득 사갖고 집에 오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몸에 좋지도 않은 이런 걸 사오면 어떡해요”하시며 짜증을 내시지만 버릴 수도 없으니 할 수 없이 요리를 해주셨다. 그럼 아빠와 나는 “바로 이 맛이야!”하면서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오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그동안 아빠와 내가 즐겨먹었던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몸에 해가 되는 첨가물의 유혹에 넘어 갔었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슬슬 엄마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아빠였다. 다행히 아빠의 고집도 오래 가지 않았다. 아빠가 내 시험 기간 동안 TV도 못 보시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바로 그 책을 읽기 시작하신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쉽게 바꿔놓을지 그 누가 상상했으랴! 바로 그날 아빠의 명령이 떨어졌다. 앞으로 우리 집의 모든 먹거리들은 ‘생협’에서만 사라고 말이다. 엄마의 얼굴에서 승리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아빠와 나의 썰렁함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갖고 굳건히 생협을 이용하신 엄마에게 박수를 보낸다.

공정무역을 배우고 나니 공정무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공정무역은 윤리적인 소비의 실천이요,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 주는 행복한 소비이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가 생협을 이용하신 것은 그때만 해도 공정무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고 단지 일반 제과점에서 파는 빵과 과자를 드시면 소화가 잘 안되셨는데 ‘한살림’과 ‘생협’같은 친환경제품을 파는 곳에서 사신 빵과 과자를 드시면 전혀 그런 증세가 없으셨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 파는 물건은 역시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라는 생각으로 다른 먹거리도 안심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셔서 이용하게 되신 것이다. 그런 엄마의 생각이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고 나아가서 공정무역의 실천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동안 나의 무지함이 부끄럽게 생각이 되었으며 엄마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친환경제품이야말로 먹거리를 포함해서 모든 것이 안전하고 건강에도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우리가 공정무역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반면에 공정무역이 아닌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대략 기업이 가지고 가는 수입의 1/100정도란다. 한마디로 노동력 착취인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어찌 노동력을 착취해서 부자가 된 기업들의 물건을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 나와 엄마는 이런 면에서 마음이 통했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공정무역가게와 친환경 상품을 파는 매장을 이용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물건을 파는 매장은 돈 많은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엄마와 나를 유별나게 생각하셨다. 그래도 요즘은 매스컴을 통해서 공정무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이 모르고 계셨다. 일단 우리 학교에 속한 가정이라도 먼저 실천이 있기를 바란다. 엄마에게 여쭤보았다. 혹시 엄마들은 만나면 공정무역 커피점을 이용하시냐고 말이다. 엄마의 대답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셨다. 공정무역 가게가 어디인지도 잘 모르고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다. 또 어떤 분은 엄마가 생협 회원인걸 아시고 엄마의 회원카드를 빌려 쓰시기를 원하시는 분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알려 주셨다. 매달 내는 조합비가 부담이 되셨던 것이다. 조합비는 안 내고 조합원가로 물건을 사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생협에 가 보면 ‘다른 분의 조합원 카드를 빌려서 물건을 사지 맙시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공정무역은 윤리적인 소비를 바탕으로 정직한 거래를 하는 것이므로 엄마의 지혜로운 거절이 있기를 바란다. 어른들의 좋지 않은 모습이라 엄마가 많이 고민하시다가 내가 이런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하니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알려주신 이야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무역과 관련된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다.

사실 우리 엄마도 공정무역에 대해서 잘 모르셨을 때는 고민을 많이 하셨단다. “가족들이 별로 생협 제품을 좋아하지도 않고 생협 가게가 조금 멀기도 한데 그냥 가까이 있는 동네마트를 이용할까?”라고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 그 즈음에 아빠와 내가 책과 학습을 통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정무역 상품과 친환경 상품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하신다.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지식과 홍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힘없고 가난하다고 해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지 않은가! 지금도 노동력을 착취해서 부를 누리고 있는 대기업과 중간 유통 관계자 분들께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여러분들이 노동력 착취로 얻은 돈을 세고 있을 때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세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불러 있는 배를 또 채우고 있을 때 그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하십시오. 그들이 있기에 여러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내가 커서 외교관이 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소외당하고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이웃들이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땀 흘려 제공한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임에 오해 없기 바란다.

이번에 배운 공정무역은 이런 나의 비전에 소명을 심어주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하는 착한 소비, 행복한 소비가 많이 늘어나서 노동자의 얼굴에 웃음이 살아나길 기대한다. 우리 가정은 이런 다짐이 계속되도록 인터넷의 자료들을 검색해서 공정무역의 필요성과 공정무역 가게 등을 조사해서 페이퍼로 만들어 냉장고에 부착해 놓았다.

모두가 함께 하는 그날까지 먼저 공정무역을 배운 우리가 작은 실천 등을 통해서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꽃을 일으키듯이 작은 실천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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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의 협동조합 전도사"
 
은행에서 부자들 돈을 관리해주는 자산관리 전문가들 중엔 사회공헌, 기부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 죽고 싶진 않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문의하는 자산가들이 있다더군요. 
 
'모태신앙'인 사회적 경제 전도사, 김기섭 선생이 그런 분들을 본다면 '그건 인간이라는 생명체 안에 수백만년 동안 각인된 DNA탓'이라고 풀이해줄 겁니다. 사람은 공부 잘하고 돈 버는 재능을 공동체에 쓸 수 있어야,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있어야 행복한 법이라는 말씀이죠.
 
증거요?
제가 보기엔 김 선생의 삶이 증거인 것 같습니다.
 
그는 자칭 '모태신앙'의 사회적 경제인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 등 생명사상가들과 협동조합 활동가들이 활동하면서 국내 사회적 경제의 씨앗을 뿌린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대학과 유학 시기를 거쳐 두레생협 등 사회적 경제 진영에서 줄곧 일했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50여년의 세월을 다 바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하게 한, 사회적 경제란 뭘까요? 김 선생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근간인 경제'라고 설명합니다. 그건 '다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돌아가는길'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그의 꿈과 삶 이야기를 이로운닷넷이 전해드립니다.

김기섭. 민중교역회사 에이피넷 대표.
* 특징 : 1963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의 사회적 경제 전도사. 일본과 한국을 아우르는 협동조합 현장 체험. 어지간한 기자보다 맛깔나게 글 쓰는 실력.
*주요업적 : 국내외에 협동조합, 공정무역 등 사회적 경제 이슈를 널리 알림. 상지대 강사. <깨어나라!협동조합> 저자.

요즘 집중하고 있는 일을 말씀해주세요.

‘일’이란 것이 밥벌이를 가리킨다면, 에이피넷에서 제3세계와 우리나라와의 대안적인 교역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을 통해 감사히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일’이 밥벌이만이 아니라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하고 있는 요즘의 것을 가리킨다면, 한편에서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제 나름의 새로운 모색과 대안을 찾아가면서 이를 바탕으로 제가 놓여 있는 삶의 공간, 즉 에이피넷에서 하고 있는 민중교역과 같은 일 속에서 이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나아갈지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 무엇일까요?

요즘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인해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요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인해 나는 죽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두레생협이라는 사회적 경제 진영에서 십여년 넘게 일했을 때, 생협이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사랑은 내게 구체적이지 않았고 또 내 문제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조직의 문제였고, 운영의 문제였습니다. 조직과 그 조직의 운영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이 아닌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우선할 때, 조직은 더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요즘 길 잃은 어린 양을 찾아나서는 예수의 이야기를 자주 떠올립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내버려 둔 채, 길 잃은 한 마리 어린 양을 찾아나서는 예수의 행위는 조직과 그 운영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아흔 아홉 마리 양의 무리보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더 사랑했고, 마침내 가시밭길을 헤집고 그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남겨진 아흔 아홉 양의 무리가 왜 걱정되지 않았겠습니까? 가시밭길을 헤집고 찾아나서는 줄도 모르고 제 갈 길만 태연히 가는 어린 양이 왜 야속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사랑으로 인해 죽을 맛일 텐데도 예수는 길 잃은 어린 양을 찾아 나섭니다. 예수의 사랑은 매우 구체적이고 바로 내 문제입니다. 사회적 경제 진영에서 한발 떼어내서야 비로소, 사회적 경제가 닮아야 할 가장 핵심적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회적경제 진영에서 일 하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일’의 의미가 계속 걸리네요. 일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가 일인지에 따라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변이 달라질 것입니다. 만약 일이 밥벌이 즉 시쳇말로 직장을 의미한다면, 1993년에 발 디딘 생활협동조합중앙회가 제 첫 밥벌이 직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밥벌이는 못하고 그저 밥이나 축내고 살았으니까요. 그 때부터가 아마 사회적 경제 진영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딛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밥벌이만이 아닌 삶 자체를 의미한다면, 사회적 경제 진영에 발을 디뎌놓은 것이 언제부터냐는 질문보다는 사회적 경제 진영에서 발을 뺀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것이 맞을 듯싶습니다. 어려서부터 강원도 원주라는,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독특하게 사회적 경제가 창궐했던 곳에서 태어나 그 품안에서 살았고, 그 이후에 대학과 유학 시기를 거쳐 줄곧 사회적 경제 진영에서 일해 왔으니까요. 사회적 경제는 제게 일종의 모태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모태 신앙인’들이 한두번 겪는 것처럼, 저도 자신의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대학가는 그야말로 살의가 판치는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런 속에서 사랑이니 협동이니 생명이니 하는 것은 정말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한낱 사치처럼 느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사회적 경제에 대한 더 깊은 사랑을 낳았습니다.

사실 이런 경험은 단지 저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경제의 품 안에서 태어나고 또 자랍니다. 사랑이 우리를 낳고 또 기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하면서 차츰 사회적 경제 품에서 벗어나 시장이나 계획(국가) 경제의 노예가 되어갑니다. 시장이나 계획 경제 진영에서 얼마나 잘 나가느냐가 인생 성공의 가늠자처럼 보입니다.

금의환향이란 말이 있습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자라나 열심히 노력한 끝에 무슨 고시에 합격하거나 큰돈을 벌어 비단옷을 두르고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렇게 돌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고향과 사회적 경제를 계도와 탈피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미 고향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죠. 그런 사람은 고향을 위해서도 또 자신을 위해서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고시에 합격하고 큰돈을 버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공부 잘하고 돈 버는 재능을 고향을 위해 쓸 수 있어야 행복한 법입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체 안에 수백만년 동안 각인된 DNA입니다.

사회적경제 진영의 업무 경험으로,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글쎄요. 별로 떠오르는 게 없네요. 아마도 사회적 경제가 일종의 모태 신앙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분명한 것은 사회적 경제의 길로 잘못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 이제는 차츰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새로이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 그런 확신과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 진영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 꿈은, 자본의 지배로부터 스스로를 이탈시킨, 혹은 자본으로부터 강압적으로 배제당한 사람들 간의 평등한 연대, 그리고 그런 연대를 통해 각자가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본이 온 세상을 구석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는 속에서, 세상과는 다른 삶을 꾸려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더구나 세상에는 자본이 의도적이고 강압적으로 배제해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자존감마저도 잃어버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이 각자 자기 삶의 공간인 지역에서 연대하고, 또 그런 연대가 지구적으로 평등하게 서로 도와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지역에서의 작은 연대가 굳건히 서고, 나아가 이를 통해 그곳에 모인 각각의 사람들이 나름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일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적 경제를 통해 제가 이루고자 하는 꿈입니다.

지금의 일을 하는 데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회적 경제가 일종의 모태 신앙인 저에게는 이 일을 하게 한 계기나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사람을 예로 들어 말씀드린다면, 강원도 원주에서는 장일순, 김영주, 김지하 선생님, 일본에서는 야스다 시게루, 유키오카 요시하루, 홋타 마사히코 선생님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생명운동가이자 한살림 창립멤버)은 삶의 지표와 같은 분이고, 김영주 선생님(민주화운동가)은 그런 삶을 현 사회에서 조직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경영자와 같은 분입니다. 김지하 선생님(시인 겸 생명운동가)은 그런 조직과 운동의 논리를 세워주신 분입니다. 일본의 야스다 시게루 선생님(고베대학 명예교수)은 유기적 삶과 실천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고, 유키오카 요시하루 선생님(그린코프연합 고문)은 이를 생협이라는 조직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방안을 일러준 분입니다. 일본대안무역(ATJ)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홋타 마사히코 선생님은 이런 조직의 방식을 지역과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줬습니다.

사회적경제 진영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사회적 경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경제를 형성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자본이나 권력 등과 같은 무기적 성격의 것이 지배하는 경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람이 유기적인데 그런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또 얼마나 더 유기적이겠습니까? 비닐하우스에서 공장에서 찍어내듯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과, 시시각각 일변하는 기상과 기후 조건 하에서 다양한 작물이 모두 잘 되게 재배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유기적이라 함은 그렇게 작물의 다양성, 작물 간의 관계성, 외부로 열려진 개방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경제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 간의 다양한 '관계'들이 있으며, 이런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항상 밖을 향해 열려져 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살아 있다는 것이죠. 살아 있음으로 해서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있는 법입니다. 물론 가끔은 살아 있는 것이 지겨울 때가 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쁨을 가져다 줬던 것이 노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한없는 슬픔으로 왔다가도 어느새 즐길 수 있는 상황으로 돌변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에 한 방송에서 라다크의 의승(醫僧)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는 라다크 오지들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을 합니다. 산골 오두막에 한 노인이 병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혈압 때문인데, 실은 가족을 잃거나 타지로 떠나보낸 쓸쓸함이 병을 키운 원인이었습니다. 일단 몸의 병을 치료해주고, 마음의 치유를 위해 며칠 머물며 말벗이 되어줍니다.

그 의승의 말이 놀랍습니다. “병은 살아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랍니다. 죽으면 병에 걸릴 일도 없다는 거죠. 살아 있음에 감사하듯이, 병은 감사해야 할 대상이라는 겁니다.

노여움과 슬픔은 살아 있기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과 함께 오는 것입니다. 노여움과 슬픔을 없애려고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재배하거나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의탁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희로애락이 왜 없겠습니까만, 희로애락은 사회적 경제가 사회적인 경제임을 반증하는 소중한 것입니다.

엊그제 법정 스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나왔습니다. 그분 말씀 중에 세상에서 제일로 멋진 죽음이 무엇인지 아느냐 하시면서 ‘천화(遷化)’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중이 길을 가다 지쳐 쓰러집니다. 약초꾼들도 다니지 않는 험준산령을 넘어가다, 끝내는 더 이상 갈 기력을 잃고 쓰러집니다. 그 때 그나마 기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마른 나뭇잎 긁어모아 그 위에 몸을 뉘어 이승과 작별하는 것. 그것이 가장 멋진 죽음이라 하십니다. 잘 되면 좋지만 잘 안 되도 할 수 없는, 그렇게 살다가 갈 생각만 있다면 무슨 희로애락이 따로 있겠습니까? 개인사를 묻는 질문에 엉뚱한 답변만 늘어놔서 죄송^^

마지막으로, 사회적 경제의 '숨은 히어로'를 추천해 주세요

사람은, 아니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다 사회적 경제의 히어로입니다.

사회적 경제란?

사회적 경제란, 사랑, 우애 그리고 연대의 경제입니다. 우리는 시민사회의 발흥을 프랑스혁명에서 찾습니다. 프랑스혁명의 3대 정신은 자유, 평등, 우애입니다. 이 3가지 정신은 그저 듣기 좋은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자유란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교환을 말합니다. 평등이란 국가라는 제도화된 권력 앞에서의 평등입니다. 한마디로 자유는 시민이 시장과 관계하는 방식이고, 평등이란 시민이 국가와 관계하는 방식입니다. 이에 대해 우애란, 시민과 시민이 관계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자유든 평등이든 우애든 모두 봉건적 질곡으로부터 깨어난 시민이 있음으로 해서 마련된다는 점입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는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 간의 우애와, 그런 우애를 바탕으로 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교환과 권력 앞에서의 평등이 마련되는 법입니다. 주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평등한 사람들 간의 우애와 사랑을 통한 관계, 그것이 바로 협동조합이고 사회적 경제입니다. 협동조합이든 정치운동이든 모든 운동은 항상 주체화, 자기조직화, 사업화(정치화), 탈사업화(탈정치화)라는 네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나아가 그것이 조직/기구/사업을 통해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드러난 조직/기구/사업 등이 스스로를 탈조직화 탈사업화시키면서 다시 주체를 강화시키는 방향입니다. 다시 말해 다시 사람 개개인에게로 돌아가느냐 마느냐에 협동조합이든 사회적 경제의 생명줄이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깨어나라 협동조합>이란 책에서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야기는, “사회적 경제란 사회적인 경제,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이 곧 경제 행위의 근간인 경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조직이나 기구로서 마련된 사회적 경제는 다시 사람, 다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에이피넷(APNet)은 민중교역을 통해 생명과 평화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올리브유, 필리핀 네그로스의 설탕 등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핍박 받는 지역의 생산품을 공정한 가격에 수입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내 소비자한테 공급하고 있다.

by 이로운넷 (사회적기업들과 함께 만드는 대안경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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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출자로 기숙사 짓고 임대 운영해 비용 절감




[헤리리뷰] 협동조합 지상컨설팅

협동조합으로 대학생 주거비 절약 가능한가요

Q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서울에서 생활하기 위해 매월 50만원이 넘는 주거비를 써야 합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는 경쟁률이 치열하고, 재단에서는 기숙사를 더 짓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생활비 부담이 심합니다. 대학생들이 모여 주거비를 아낄 수 있는 기숙사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까요?

A 반값등록금이 지난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생활비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와 생활하는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주거비는 등록금에 버금간다. 2011년 서울의 경우 월 하숙비는 45만원가량이다. 전월세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하숙집 주인들은 선납을 요구해 대학생들이 하숙비 담합을 규탄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땅값 비싼 서울선 대학 구내에 지어야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이 저렴한 주거비를 위한 기숙사를 충분히 짓고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상업화가 진전되면서 하숙집 비용과 별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만들어진 기숙사가 늘어나고 있다. 민자 기숙사를 주도한 K대학교의 2011년 기숙사비는 방학까지 사용한다고 할 때 1인실은 학기당 310만원, 2인실은 200만원으로 하숙비와 별 차이가 없다.

당사자들이 공동으로 주거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택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대학생들의 기숙사주택협동조합은 임대형 방식이 바람직하다. 즉 4년 동안만 거주하면 되는 조건이니 기숙사에 입주하는 학생들이 출자한 돈으로 기숙사를 짓고, 협동조합이 소유한 뒤 조합원인 대학생들에게 임대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미국 사립대에서도 대학생들의 주거비를 절약할 수 있는 대학생주택협동조합이 일반화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서울은 인구밀도와 주택밀도가 높고 땅값이 비싸 개인공동주택을 사서 기숙사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은 주거비 절약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제일 좋은 것은 대학 구내에 있는 땅을 활용하여 기숙사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이다.

대학 쪽에 기숙사를 증설하라고 요구할 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 첫째 기숙사 증설 재원이 부족하다, 둘째 기숙사를 증설할 여유 땅이 없다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재원의 문제는 주택협동조합으로 해결하기 쉽다. 학교가 부지를 제공하면 기숙사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모여 기숙사주택협동조합을 결성하고 건축비를 모아 만들면 된다. 대학생협이 있는 학교에서는 대학생협이 임시 사무국 기능을 대행해 준다면 훨씬 용이할 것이다.

공동시설 활용하고 식당은 없는 게 좋아

기숙사협동조합의 장점을 살리려면 취지에 맞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공동생활공간을 잘 활용하고, 운영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공동화장실이나 공동세면실 등을 사용하도록 설계하면 건축비용이 줄어들 것이다.

관리운영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반 대학기숙사와 달리 식당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 또한 입주한 학생들끼리 당번을 맡으면 관리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 전기료와 수도세 등을 절약하기 위해 공동시설을 이용하는 구성원들로 소모임을 만들고 비용을 공동으로 부과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대학 구내에 기숙사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면 반값주거비가 달성될 수 있다.

대학 내 기숙사협동조합 설립 부지가 부족할 때에는 따져야 할 것이 더 많아진다. 하지만 부지를 구입하고 직접 건축한다고 할 때 여전히 하숙집보다는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Posted by 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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