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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상작

[일반부문] (수기) 공정무역의 ‘이상’을 보며, ‘현실’을 걷는다. - 백상미

2012년의 가을과 겨울 사이 즈음 일이다. 내 나이 29세,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으로 강남 의 대형 커피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난 후, 연극에 특출한 소질 없음 ‘반(50%)’, 생계 문제 ‘반’의 이유로 평범한 4년제 대학의 내 또래 친구들보다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터라, 커피업계에 몸 담은지도 어느덧 7년이 다 되어가던 해였다. 돌아보니, 스스로에게 “토닥토닥, 쓰담쓰담” 해주기에 마땅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오던 중, 급작스레 아버지 상을 치르게 되었고 방향 없이 쳇바퀴처럼 돌던 내 인생의 시계바늘을 잠시 멈추어, 미쳐 아직 쫓아오지 못한 내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고민 끝에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는 용기가 불쑥 생겼다. ‘내가 원하는 맛을 제공할 수 있는 카페를 차려야겠다.’ 라는 오랜 꿈을 저지를 용기 말이다. 우선 잘 다니던 회사를 당차게 그만 두었다. 그렇게 무작정 나의 홀로서기는 시작되었다. 

지난 7년간 숱한 매장을 오픈한 경험이 있었지만, 역시나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내 가게를 오픈하는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하늘도 무심하진 않으시지! 그 시기에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고, 참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이 사람을 통해, ‘공정무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참고로 이 사람의 직장은 생협이다.). 데이트 코스로 공정무역 페스티벌과, 신청사 공정무역카페 오픈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 당시 한창 특별한 메뉴를 고심하던 때라 더 솔깃했고, 생산자의 자립을 도움으로써 함께 상생할 수 있다는 점에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시혜’적 차원에서의 기부가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무역방식이 ‘나도 잘살고 남도 잘 살게 하자.’라는 내 운영철학과 잘 맞아든다는 생각에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메뉴준비에 포함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커피의 기본인 에스프레소까지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내 마음에 쏙 드는 에스프레소로 납품받기로 결정을 한 상태였고, 공정무역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모두 그 선한 의미만을 보고 가게를 오진 않기 때문이다. 아직 커피 맛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에스프레소까지 아직 맛을 모르는 공정무역 원두로 모두 바꾸는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대신 공정무역 제품으로는 핸드드립용이나 브루(기계로 내리는 커피)용과 티를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통 커피소비의 80~90%는 에스프레소 원두를 사용하고 나머지 10~20%는 드립커피나 티로 나간다.

공정무역 티(tea)의 경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Rishi-tea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품에 대한 설명들과 사업자를 위한 판매창이 개별로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맛과 품질 그리고 공정무역의 의미까지 모두 균형 있게 갖추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또한 거래과정에서 많은 안내책자와 포스터를 보내주어서 초반에 홍보하기도 수월했다.

이와 달리, 공정무역 커피는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처음으로 알아본 곳은 공정무역으로 유명한 K기관의 OOOO 원두였다. 우선 맛을 보고 싶어서 홈페이지를 뒤졌지만 원두에 대한 설명이나 구매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공정무역과 관련한 기사들과 후원 내용 외에 원두에 대한 정보들이 너무 없어서 본사에 전화를 하였다. 하지만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하여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런 상태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결국, 남자친구의 지인들께 수소문해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메뉴 중 하나를 공정무역 카테고리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치아파스 원두를 샘플로 받아보고 싶어요.”라는 내 질문에 난감해 하는 듯했다. 내 느낌엔 소매업자에게 이런 질문들을 받아보신 적이 많이 없는 듯 했다. 볶은 원두와 생두를 조금씩 샘플로 달라 하였더니 그제서야 조금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보내준다고는 하였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샘플이 오지 않았다. 다시 연락을 드렸다. 이런..! 아직 안 보내셨단다. ‘거래는 신용이 기본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나에겐 불쾌한 감이 있었지만, 정중하게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한 끝에 3일후 원두가 도착했다. 그래도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상기되어있었다. 다행히 예상했던 것보다 원두의 맛은 좋았다. 로스팅만 조금 조절한다면(생두로 납품을 받을 수 있다면 조정이 가능하기에) 맛도 의미적인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물론 공정무역으로 들여왔기에 시중에 있는 일반 원두보다 어느 정도 비쌀 것이란 예상은 하였지만, 그 예상보다도 훨씬 높은 금액이었다. 공정무역도 좋지만 카페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또 다른 공정무역 원두를 취급하는 A기관을 조사했다. 공정무역 커피로 가장 유명한 곳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 기관에서는 원두 샘플조차 받아 볼 수 없고, 인근 매장에서 구매하여 맛보라는 답변이 와서 황당했다. 그 황당한 마음을 가다듬고, 시키는 대로 직접 해당 기관의 매장에 가서 원두종류를 모두 구매해 보았고 시음해 보았다. 그 결과 이 원두로 한다면 내가 생각한 맛을 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담당자에 전화를 걸어 사업자로 거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 기관에서는 에스프레소 원두까지 모두 사용을 해야 도매가로 납품이 가능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일반매장에서 다른 소비자들과 똑같이 구매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물론 아주 소량의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면서 다른 것들도 모두 공정무역인 것처럼 거짓광고를 하는 것을 예방하고자 목적이 있을 수 있겠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은 솔직히 화가 났다. 소량이라도 취급을 가능케 하고, 표시를 정확히 구분하여 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좋은 의미로 메뉴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업체가 아니면 공정무역을 할 수 없는 걸까? 맛-가격-공정무역의 의미를 균형 있게 갖춘 공정무역 커피는 찾을 수 없는 걸까? 솔직히 현재의 가격수준으로는 개인 점주가 100% 공정무역 원두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작 일부‘만’ 공정무역 커피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일부‘라도’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감에 차있던 남자친구의 추천은 모두 실패하였고, 유명한 공정무역 기관들이 아닌 다른 개인 업체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교회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지인이 공정무역 원두를 비교적 저렴하게 제공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연락처를 받아 연락 해 보았다. 앞선 기관들과 달리, 샘플을 보내달라는 말에 흔쾌히 보내주신다고 한다. 약속한 기일에 papua new guinea 단종원두를 받아 볼 수 있었다. 파퓨아 지역에서 나오는 중간정도의 바디감과 밝은 꽃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품질 좋은 커피였다. 가격 역시 앞서 알아보았던 기관의 원두들보다 30%는 저렴했다. 품질도 신뢰할 수 있었다. 이 업체는 생두를 공정무역으로 수입하여 주문즉시 직접 로스팅하여 배송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굳이 에스프레소 원두가 아니더라도 단종(한 가지 원두)원두만도 판매 가능하다 했다. 하지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지라 기본 주문수량이 너무 많았다. 내 가게에서 한 달에 소진할 수 있는 양은 기본수량의 절반정도인데 난감했다. 그런데 내가 계속 난감해 하고 있으니 담당자는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가게운영을 처음 하는데 공정무역 카테고리 안에 단종원두 한 가지를 넣고 싶지만 그럴 경우 기본 주문량이 너무 많다.” 라고 솔직히 이야기 했더니 흔쾌히 절반만 공급하겠다고 제안 해주었다. 금액 역시 기본주문수량과 같은 금액대로 준다고 하였다(보통은 발주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할인율이 줄어든다.) 그래서 바로 주문을 넣었고, 그렇게 삼고초려 끝에 공정무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메뉴판에 작게 공정무역이라 써놓았더니 한동안은 아예 나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메뉴판을 전면 수정하여 제일 중앙에 판매되는 공정무역커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작성해 두었다. 그러자 손님들이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물론 에스프레소와 공정무역커피는 다른 유통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설명도 고객께 한다). 또한 공정무역 커피로 더치를 추출하니 그 맛 또한 깔끔하니 맛이 좋았다. 하루에 1~2잔 판매되던 공정무역 커피가 지금은 아이스커피로, 더치커피로 메뉴가 확장되고 판매율도 점점 상승중이다. 특히 선물용 더치커피가 많이 판매된다.

돌이켜 보건대, 처음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공정무역에 대한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손님들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제품에 관한 기본지식의 습득은 필수다)도 버거웠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공정무역 원두 공급업체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취급 하는 곳도 많지 않은데다, 나처럼 평범한 개인 카페 점주가 알아보기엔 정보들이 닫혀있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원두판매 업체와 같은 시스템과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요컨대, 공정무역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공정무역 가치의 스토리텔링은 기본으로 하되, 기본적인 사업 시스템과 서비스 정비가 함께 마련되어야한다. 나아가 100% 공정무역 제품을 취급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방법과는 달리, 나처럼 일부의 공정무역 제품만이라도 취급하여 가게를 망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운영해 나가면서, 조금씩 공정무역 제품에 적합한 메뉴를 개발하고 비중을 늘려나가는 방법도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기에 확산 가능한 성공적인 공정무역 카페 비즈니스 모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