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금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공정무역 그리고 아.주.나 되기 ('아.주.나.' :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줄임말)
김민혜


한국 인천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 항공 5시간 30분.
네팔 카트만두에서 바드라푸르까지 항공 50분.
바드라푸르에서 피딤까지 버스 5시간 30분.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
절경들이 두 번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사람이 아름다운 그 곳.
네팔 동부 끝자락. 피딤에서 공정무역과 아.주.나 되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1. 홍차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얼마나 걸어야 해요?" "아직도 멀었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계속해서 확인한다. 땀은 비 오듯 흐리고, 숨을 헐떡거리지만 도착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2시간이 조금 넘으니 숨도 고르고 걸음도 익숙해진다. 이제야 경치들이 눈에 보이고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바람과 힘들어 하는 친구들을 챙기는 법을 알게 된다. 시원한 얼음물을 주면 고맙겠지만 뜨거운 홍차에 가득 설탕을 넣어 가는 곳마다 한 컵씩 주신다.

얼마나 걸었을까, 눈에 들어온 건 홍차밭이었다. 그것도 경사가 60도는 족히 되어 보이는 그런 산에 펼쳐진 밭이었다. 홍차밭에 왔다는 기쁨과 더불어 60도 경사를 어떻게 올라갈지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줄을 지어 올라갈 때 앞 사람은 뒷 사람을 잡아주고, 그 뒷 사람은 또 그 뒷 사람을 잡아주어 서둘러 홍차밭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건 힘들어하는 우리 멤버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 곳에서 홍차가 가득히 찬 큰 바구니를 이마에 두르고 찻잎을 따고 계시는 분들과 그 일손을 돕는 아이들이었다.

차밭에서 미끌어져 뒹굴고, 따는 찻잎마다 "노"를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따는 모습에 함께 웃어주시고 즐거워해주시는 모습으로 잠깐 동안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는 누구하나 힘들다는 소리, 얼마나 걸어야하냐는 소리, 아직도 멀었냐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 손을 잡고 가는 길을 즐길 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KTE(칸첸중가 홍차 조합)의 Dilli선생님께 이곳 홍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차 밭이 보성에 있는 것처럼 줄지어서 정렬된 모양이 아니라 정말 '야생스럽다' 싶을 정도로 산속에 차 나무들이 자유롭게 심겨져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차 나무 중간 중간에 서있는 키가 큰 나무와 키가 작고 잎이 넓은 나무 들이었다. 키가 큰 나무는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서 찻잎을 공격하는 벌레들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고, 잎이 넓은 나무는 천연 비료로서 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이 홍차 나무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자연스레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공정무역을 넘어선 자연에 대해서도 공정한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 공정한 농사요 공정한 무역이었다. 

#2. 한국 문화 알리기 (칼리카 학교)


해외자원봉사의 무한한 감동을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만나게 될 감동에 대해 기대하고 그 감동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기도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일을 진행시켜나갔다. 전혀 진척이 없을 것만 같았던 한국문화 프로그램은 이틀 사이에 아이들의 놀라운 변화로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전해준 경험들로 프로그램 활동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있었다. 

가방 가득히 프로그램 준비물을 챙겨 짊어지고 학교를 향해 나섰다. 트럭 뒤에 앉아 흙과 돌, 물을 그대로 엉덩이로 느끼며 아이들을 만난다는 기대와 프로그램 진행에 대한 설렘으로 힘들어도 서로 이끌고 밀며 가파른 길을 올랐다. 가파른 길을 올라 학교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두 줄로 길게 대열을 지어선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고사리 손 마다 직접 만든 꽃목걸이와 꽃송이를 들며 학교에 들어서는 우리들을 반기는 아이들을 보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땀과 함께 흘러 내렸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우리말로 만든 한글 이름표들이 칼리카 아이들의 가슴마다 걸리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는 지나가는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로 말을 건네며 환하게 웃어주기도 했다. 한국의 전통문양과 사군자를 그려놓고 색칠한 부채에는 아이들이 개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우리 아이들과 네팔 아이들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은 피딤에서 가장 높은 학교, 칼리카학교 교정에 울려 퍼졌다. 

칼리카 학교는 공정무역을 통하여 변화하는 학교 중의 하나이다. 공정무역을 통해서 판매되는 홍차 덕분에 이 학교 학부모들은 이전보다 수입이 2배 이상 많아지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용품과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는 충분한 재정적인 여유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KTE 홍차 조합이나 한국의 무역 파트너인 '아름다운 커피'에서는 공정무역을 통하여 벌어들은 수익금을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칼리카에 전해준 학용품 선물도 '아름다운 커피'에서 여러 후원자들로부터 기증 받은 것이었고, 올 가을에는 다른 후원 기금을 통하여 열악한... 정말이지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칼리카 학교를 다시 건축하는 사업이 계획되어 있었다.

#3. 여행나눔

여행에서 돌아온지 보름이 지난 8월 30일. 아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부팀장 유정이는 공정무역을 알리기 위한 발표를 준비하고, 팀장 종덕이와 태진이는 여행일정을 만담으로 준비를 했다. 그 날의 감동을 되새기고 전하기 위해 혜천선생님과 해연이는 부지런히 소감문을 읽어보고 또 읽어보았다.

그 사이 다른 친구들은 홍차를 끓이고 있었다. 네팔에서 공정무역과 홍차를 체험하고 소중하게 받아온 홍차를 끓여 판매하고 수익금으로 다시 피딤지역에 자가발전후레쉬, 의약품, 환경수세미등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끓는 물에 향긋하게 퍼져나가는 홍차의 향기에 한 번, 우유를 넣고 풍기는 색에 한 번, 그리고 맛에 한 번 다시 한번 네팔의 향기에 취할 수 있었다.

네팔 사진전, 공정무역 상품판매, 밀크티 판매, 여행발표, 소감문 낭독 등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여행 발표회는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학부모님, 학교 선생님, 후원자님, 교회 식구들 등등 예상인원 50명을 넘은 많은 분들이 우리 여행을 함께 나누어 주었다.

'공정무역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 되기'라는 우리의 슬로건 하에 우리들의 여행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나누면서 다시금 여행이 우리에게 주었던 아낌없는 사랑을 생각했다. 공정무역 이라는 한 마디 말 속에 담겨진 수많은 의미, 그것은 대자연, 그리고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었다. 이것은 또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하늘, 땅, 나무, 사람이 하나되는 땅 네팔에서 '공정무역'을 얻다.

* 공정무역 그리고 아.주.나 되기의 여행은 8월 3일(월) ~ 13일(목) 10박 11일간의 일정으로 인솔교사 3명과 중고등학생 9명 총 12명으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이 여행의 준비과정은 9명 학생들의 스스로 준비하여 떠난 공정여행으로 '아름다운 재단'의 여행 공모에 응모하여 선정되었다.

* www.cyworld.com/01093388598 에서 더 자세한 여행이야기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2009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공정무역, 낯설었던 기억을 넘어 다시 만나다.
유광진

“아시아 제3세계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공정한 가격으로 들여온 수공예품입니다. 와서 구경하시고 예쁜 수공예품 구입하세요!”

몇 년 전이었다. 봄의 초입에 시작되는 제법 큰 여성단체 공동행사의 마당에는 ‘공정무역’이라는 낯선 플래카드가 걸쳐지고, 한 여성단체에서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펼쳐놓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내가 속한 단체의 부스가 한가해지자 다른 담당자를 붙여놓고 행사 시작 전부터 신경이 쓰였던 그곳, 공정무역 물품 판매부스를 기웃거렸다.


“어서 오세요. 정말 예쁘죠? 제3세계 여성들이 정성들여 만들고, 저희가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들여온 공정무역 물품이에요. 구경하세요.”반갑게 맞이하는 활동가에게 인사하고 찬찬히 물건들을 구경했다. 현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액세서리와 지갑, 스카프 등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마음에 드는 팔찌를 골라 가격을 물었다. “네, 만 원이에요.”나는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놀라서 골랐던 팔찌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자세히 보니 조그맣게 가격표들이 붙어 있는데 한결같이 비싸서, 소심해진 나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옆에서 열심히 설명해준 그녀에게는 미안했지만 이미 몇 차례의 동남아시아 여행 경험으로 비슷한 액세서리의 싼 가격에 맛을 들인 내게는 너무나 비싼 가격이었다. 당시 나는 한창 여행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었는데, 특히 아껴둔 휴가를 이용하여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동남아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왜 그냥 와요? 아까 많이 사고 싶어 했잖아.” 혼자서 부스를 지키고 있던 활동가가 물어본다.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물건이라 그런지 너무 비싸더라고. 저런 거 태국에서 2~3천 원이면 사는데. 흥정만 잘하면 천 원대에도 살 수 있어.”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나에게 그녀는 웃으며 조언했다.

“응, 맞아요. 우리가 싸게 수입하는 물건들이 대부분 아동들의 저렴한 노동력으로 만들어지는 거래요. 축구공도 그렇고, 우리가 흔히 먹는 꼬치에 끼우는 나무 있죠? 그것도 아이들의 작은 손으로 깎은 거래요. 아마도 저 단체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정당한 노동력으로 만들고 공정한 대가를 지불했겠지요. 그래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거구요.”

“그래, 나도 들어본 것 같아. 그렇지만 너무 비싼 걸. 나같이 가난한 활동가가 지갑을 열기에는……. 공정무역도 좋지만, 어차피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살 수 있겠지 뭐.” 틀린 데 하나 없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양심이 조금 찔렸으나 결국에는 손익계산을 따져가며 ‘나중에 현지 가서 싼 값에 사와야지'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날의 에피소드는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단체에서 알게 된 분을 통해 인도를 몇 달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남인도 뱅갈로르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목사님이셨는데, 봉사하러 오는 학생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셨다. 딱히 선교에 뜻이 없는 나는 기도회와 예배 등 종교행사는 몽땅 빠져가면서 그저 낯선 인도 생활에 적응하느라고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네팔로 넘어가기 전 북인도 여행을 하기 위해 가이드북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게스트하우스 건너편에는 목사님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적게는 5살, 많게는 12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십여 명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가끔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와서 귀여움을 떨며 영화를 보여달라고 졸라댔는데, 나는 노트북으로 영화를 틀어주고 함께 과자를 먹으면서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목사님에게서 전해들은 아이들의 배경은 부모가 있어도 가난해서 자식을 키우지 못해 맡긴 아이, 쓰나미로 전 재산과 가족을 잃은 아이 등 꽤 다양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장난스러운 검은 눈동자의 귀여운 아이들이 그러한 과거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가만히 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축복받은 겁니다. 여기에서 생활하고 학교도 다닐 수 있고요. 만일 이곳에 오지 못했다면 벌써부터 노동시장에 뛰어들었을 나이에요. 아니면 수많은 거지 중 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르고요. 인도에서는 어린이들이 농장 일과 수공업 등에 많이 투입되고 있거든요.

인도의 계급사회에서 가난한 하층 어린이들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원숭이와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요. 새나 개에게는 남은 음식을 던져주면서, 그것을 먹으려는 거지 아이들은 막대기로 쫓아내는 일이 이곳 인도에서는 흔하답니다. 그러니 하루에 1달러도 받지 못하는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지요.”

목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어렴풋하게 그 봄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렴한 제3세계 물건들, 어린이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순간, 나 스스로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마음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얼마만큼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을까. 무심코 사들였던 저렴한 물건들. 그 저렴한 가격에 누가 희생됐을까? 나대신 누가 내주었을까? 가난한 아이일까? 여성일까?

북인도를 여행하고, 네팔을 거쳐 태국, 라오스 등지를 돌아보는 내내 그 생각은 종종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저분하고 작은 꼬마가 내미는 조잡한 물건들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사면서도 마음은 썩 좋지 못했다. 내가 준 1달러로 당장은 가난한 가족이 생계를 꾸릴 수 있으나 근본적인 빈곤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몇몇 시민사회단체들이 벌이는 공정무역 커피 선전을 반갑게 읽게 되는 것은 그때의 경험으로 배운 결과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되는 사회, 정당한 노동과 생산이 이루어지고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여 제3세계 생산자들이 지속가능한 생산과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공정무역. 오늘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공정무역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이 한 잔의 커피 소비가 제3세계 농민, 그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회적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