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청소년부문 수상작

윤리적 소비 자유분야 동영상 부문

코피, 커피?
(고기정, 유소연, 이승훈
)

대한민국 직장인이 하루 평균 3잔의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는 우리의 생활과 뗄레야 뗄수없는 필수기호품이 되었고 커피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대부분은 저개발국의 어린이들에 의해서 생산되고 있으며, 이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전체 커피시장 이윤의 0.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공정무역커피는 이렇게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해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한국인들은 이런 공정무역커피에 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2011 윤리적소비 공모전 청소년 수상작 '코피,커피?'는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의 윤리적 소비는 채식으로부터

2011.09.05 14:05 사회적경제 사례 | posted by 사회적경제

나의 윤리적 소비는 채식으로부터 - 박진영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나는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채식주의자’라고 불렀지만,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문제의식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편식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닭고기를 엄청 좋아했고 오리고기도 가끔 먹었으며, 해물과 유제품도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채식주의자로 알고 있었던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채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모양이다. 나는 한번도 내 입으로 채식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채식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남들보다 채식을 실천하기 쉬웠음은 물론이다.) 다큐멘터리,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채식이 환경과 내 삶에 가져올 변화, 육식의 문제점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채식을 하지 못한 건 일상이 너무 불편해지기 때문이었다. 해물과 유제품을 포함하여 절대 육식하지 않는 완벽한 채식주의 체험에 일주일간 도전한 적이 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실패했다. 자판기에서 우유가 들어간 캔커피를 뽑아 마셨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쿠키에도 우유와 계란이 들어가 있었고, 된장찌개에는 멸치가, 김치에는 젓갈이 들어 있었다. 그런 음식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 걸 모른 건 아니지만, 이전에는 육식이 그렇게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다. 비록 실패한 도전이지만 값진 경험이었음엔 틀림없다. 애초에 체험에 의의를 둔 도전이었다.

학창시절 존경하는 철학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완전식품으로 알려져 있는 우유가 오히려 건강에 나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교수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형 축산에서는 동물들이 햇빛을 보지도 못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도 없는 잔인한 환경에서 자라며, 공장은 동물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동물 먹이에 항생제를 퍼붓는다고 한다. 우리는 우유와 치즈, 고기를 제공하는 소가 한가롭게 푸른 초원에 노니는 상상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공장형 축산에 관한 플래시 애니메이션 <미트릭스>를 추천한다.)

유엔 FAO의 보고서 <가축의 어두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최대 원인은 축산업이라고 한다. 목축장 폐기물에서 배출되는 오수는 전 인류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오수의 양보다 많으며,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절반 가량이 가축의 사료로 쓰이고 있다. 1년에 5,800만 톤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매년 동물들에게 7,700만 톤의 식량을 먹여야 하는데 이렇게 낭비되는 1,900만 톤의 식량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먹일 수 있고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도 구할 수 있다.

한편 네팔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축제 때 소를 잡는 모습을 보았는데, 자신들을 위해 먹이로 바쳐지는 소의 죽음에 굉장히 미안해하고 감사하는 네팔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사람의 먹이로 소비되는 죽음이지만, 어떤 소가 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을지는 굳이 비교해보지 않아도 답이 나온다. 어떤 먹이가 인간에게 더 이로운가를 따져봐도 마찬가지이다. 비싸도 유기농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런 것들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채식주의자 체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지 2년 만에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알면서도 모른 척해왔는데, 양심에 찔리는 건 둘째치고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 거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만큼 채식이 어렵지 않다. 도전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이유가 생겨서일 거다.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할까.

그리고 채식이 내게 준 또 하나의 큰 의미는 윤리적 소비의 첫걸음이 되었다는 거다. 채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에게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어, 최고급 가죽제품이 잔인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져 인조가죽이나 천연소재를 찾게 된다. 또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농가로 이어지고, 환경에 대한 관심은 우리집의 세제들을 몽땅 친환경으로 바꿔놓았다.

또 채식을 통해 지구 곳곳을 돌아보면서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아프리카 아동을 후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버마의 독재정권을 살찌우고 자연을 해치고 강제노동이 만연한 천연가스 개발사업에 한국이 앞장서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버마의 독립운동가를 후원하게 되었다. 최근 친환경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적 마인드를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는 기업 윤리와 마케팅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비싸더라도 기꺼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은 친환경 마케팅을 통해 기업 이미지도 살리고 이윤도 챙기지만, 진정한 윤리의식 없이 마케팅에 친환경을 이용하는 기업들 역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 세계적 의류 브랜드인 리바이스에서는 100퍼센트 유기농 면으로 제작된 에코진을 출시하면서, 수익금의 일부로 ‘어린이 환경교실’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시사전문지 <선데이 타임스>에 따르면, 아프리카 빈민국가 레소토의 수도인 마세루는 외곽지역에 리바이스와 갭 공장이 들어선 이후, 극심한 오염으로 인해 저주받은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청바지 염색에 쓰이는 화학약품으로 인해 강물이 청바지 빛으로 변한 지 오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을 하는 화장품 회사들조차 친환경이란 단어를 앞세우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는 많은 제품과 마케팅 속에서 진짜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개인적 신념에 반하는 소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불편해도 더욱 까다로워질 일이다. 채식을 하는 것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전 인구의 70퍼센트가 채식을 해야 된다. 그러나 불편을 감수하는 나 하나의 실천으로는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고 모른척하면 그만일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채식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소비에 관한 신념을 가졌으면 한다. 꼭 채식이 아니더라도.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친환경이라는 트렌드가 유행으로 스쳐갈 것이 아니라, 의식에 변화를 불러오는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채식이 나의 소비에 많은 변화를 불러온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왜 당연한 것을 위해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가야 될까? 건강한 먹을거리만 존재하고, 굳이 따져보고 찾아나서지 않아도 친환경적인 제품만 존재하는,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하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나도 모르게 자연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고서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소비가 당연하고, 비윤리적인 기업들은 왕따가 되는 세상을 꿈꿔본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eenp.tistory.com/ 윤창렬 2011.09.06 0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제 블로그로 퍼가도 될까요? 채식에 관해 널리 알리기 위함입니다.

    • Favicon of https://secontest.net 사회적경제 2011.09.06 2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채식에 대해 널리 알려주신다니 기쁘네요. 원저작권자와 출처(윤리적 소비 공모전, 블로그 주소 등)를 밝혀주시고 퍼가시면 된답니다. ^^ 채식에 대한 또다른 지혜 있으시면 주저 말고 9월 10일까지 공모전 사무국에 보내주세요. 수상기회로 더 널리 퍼뜨려드릴 수 있답니다.

  2. 김봉현 2012.08.22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이네요 !

    제가 현재 공모전을 준비중인데, 위 기사를 공모전에 활용자료로 사용 할 수 있을까요??
    기사를 캡쳐해서 파워포인트에 포함 시킬려고 합니다.
    허락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겟습니다 !

2010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새 옷 입는 날
(박은미
)


“내는 나중에 어른되서 돈 많이 벌면 새 옷 많이 사서 입을끼다.
결혼해서 우리 아기들 한테도 절대 헌 옷은 안줄끼다.
오로지 새 옷, 새 옷만 입힐끼다. 깨끗이 빤다고 그게 다 새 옷이가?
시장에서 돈 주고 사온 아무도 안 입은 옷이 새 옷이제!!”



 

어린 시절. 나의 작은 꿈은 단 하나 실컷 새 옷을 입어 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입성. 먹성은 채워 줄 수 있을만한 집안 형편이었거늘 엄마는 유독  새 옷 사주는 것에는 인색하셨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철없던 막내딸은 그토록 좋아하던 의상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 누구보다 먼저 새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자는 5남매의 오랜 설득에도, 5남매 다 이곳에서 먹여 키워내고 아버지와 40여년을 함께 하셨기에 차마 그 곳을 떠날 수 없다는 어머니의 고집은 완강하셨다. 오늘 고향집에 온 이유도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가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설득하기를 한 시간여, 진땀을 빼며 설득하는 막내딸이 안 돼 보이셨던지 한 달만 서울 생활을 해보고 결정을 내리겠다는 어머니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달이  적은 기간도 아닐뿐더러 아예 집으로 모셔오기 위해 짐을 몽땅 가져올 요량으로 친구에게 빌린 작은 승합차까지 타고 도착한 그 곳엔 예상외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 마당에 쌓아놓은 옷상자가 족히 다섯 개는 넘어 보였고, 큰 가방이 세 개나 놓여 있었다. 이젠 정말 서울로 올라 가시려나보다 하는 생각에 승합차에 짐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풀어 헤쳐 본 어머니의 짐은 ‘어머니의 짐’이 아니었다. 딱 보기에도 어린 아이의 것처럼 보이는 옷가지들이 다섯 개의 상자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오래된 디자인의 옷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관하셨는지 신기할 정도로 쾌쾌한 냄새 하나 없이 깨끗했고, 헤어진 곳 하나 없이 말끔했다.

“엄마, 이건 또 뭐꼬? 엄마 짐 싸갖고 오라켔지, 왜 이런 걸 갖고 왔노?”
“이거? 이게 내 짐이다, 이게 네 눈에는 그냥 쓰레기 같제? 이게 다 보물이다, 보물.
니는 어째 옷 만든다는 아가 이런 것도 모르노?”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상자 한편에 고이 모셔져 있던 재봉틀을 보고난 후에는 그냥 옷을 고치시려고 하시나보다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작업실로 들어오셔서는 컴퓨터를 좀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서울에 오셔서 혼자 계시다 보니 무료하셔서 그런가보다 하고 컴퓨터를 켜는 법부터 인터넷 사용 방법을 알려 드리고 있는데, 문득 ‘아름다운 가게’라는 곳을 들어보았냐고 물어보셨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회사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오며가며 보았노라고 말씀 드리니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셨다. 사실, ‘아름다운 가게’는 자주 보기는 했지만,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라 얼핏 기억에 스쳤던 외관을 보고는 ‘유기농 식품매장’, 혹은 ‘오가닉 의류 판매점’ 정도로 생각했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아름다운 가게는, ‘…낡거나 오래 된 물건을 사람들이 기증하면 아름다운가게는 다시 이 물건들을 되살려 시장으로 보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을 기증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증된 물건을 다시 사간다. 다시 말해 자원의 순환 운동을 꾀하는 시민운동이자 윤리적 소비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었다.
아름다운가게는 공식적으로도 부의 편중과 빈부격차에 대해 서로가 이해하고 나눔으로서 자원의 더 긴 순환과 유통을 핵심으로 삼는다 라는 취지의 기관으로 재활용과 자원 순환을 적극 권장하는 비영리 단체였다. 문득 어머니께서 왜 이런 곳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고, 어떻게 이런 곳을 아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여기는 뭐할라꼬 물어보노? 여기서 일할라꼬?”
“아름다운 가게가 서울에도 있는갑네, 내 마산에서 매일 여기 갔다 아이가,
 마산사는 할매들이 손주들 옷이며, 할매들 옷이며 갖고 오면 내가 다 그거 고쳐가꼬 여기 갖다줬다. 서울 와서 고쳐 논게 몇 벌 있는데 마산까지 가기는 그렇고 해서
혹시 서울에도 있나해서 물어봤다 아이가. 여가 참 유명한 곳인갑네.
옷 고쳐다 갖다 주면 깨끗하게 세탁해서 새 옷처럼 맹들어가꼬 판다 아이가.
그러면 그 돈으로 안 된 사람들도 도와주고, 무엇보다 아까운 옷 안 버리고
다시 재활용하면 얼마나 좋노.
깨끗하고 멀쩡한데 버리면 그게 다 죄다. 환경생각은 안하노?
 늬들이 다 써버리면 자식들은 뭘 쓰고 사노?
왜 만날 새 것 만들 생각만 하노? 환경도 자원도 사람도 축나는 건 생각 안하고…….”


 

그 날 이후로, 어머니와 나는 새 옷을 디자인해서 만드는 대신, 고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다음 날이면 산더미 같이 쌓여 버려지는 깨끗하고도 말끔한 옷들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깊은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막내딸은 그 누구보다 열렬한 어머니의 지지자가 되었다. 결국 환경과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임에도, 환경 위에서 마치 제 것인 냥 마구 써댔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나보다 못한 사회적 약자를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음을 후회하며 작업실의 천 한 조각, 단추 하나도 버리지 않고 우리 집의 은밀한 작업실로 챙겨오곤 한다. 작업실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하찮던 천 조각은 밤새 어머니의 마술 같은 손을 거쳐 그 무엇보다 깨끗하고 어여쁜 새 옷으로 탄생하곤 한다.

어렸을 적, 우리 아기들에게 절대 헌 옷을 입히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막내딸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조카들의 옷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태어날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우리 아기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새 옷을 입히기 위해서이다. 작고 귀여운 손과 발을 떠올리며 배넷 저고리를 세탁하고, 헤어진 끈에는 새 단추를 달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낸다. 아장아장 걸을 때 쯤 신을 보행기용 양말에는 고무를 붙이고, 구슬 소리를 내는 장난감은 깨끗이 소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나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도 아껴나가야 할 환경과 사람이다. 한정된 자연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이기에 우리가 아끼고 보호하는 만큼, 나누고 돌보는 만큼 그들에게 더욱 큰 선물이 될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도 우리 어머니의 재봉틀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언니와 오빠들이 물려준 막내딸의 옷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자의 옷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과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