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새 옷 입는 날
(박은미)
“내는 나중에 어른되서 돈 많이 벌면 새 옷 많이 사서 입을끼다.
결혼해서 우리 아기들 한테도 절대 헌 옷은 안줄끼다.
오로지 새 옷, 새 옷만 입힐끼다. 깨끗이 빤다고 그게 다 새 옷이가?
시장에서 돈 주고 사온 아무도 안 입은 옷이 새 옷이제!!”
어린 시절. 나의 작은 꿈은 단 하나 실컷 새 옷을 입어 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입성. 먹성은 채워 줄 수 있을만한 집안 형편이었거늘 엄마는 유독 새 옷 사주는 것에는 인색하셨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철없던 막내딸은 그토록 좋아하던 의상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 누구보다 먼저 새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자는 5남매의 오랜 설득에도, 5남매 다 이곳에서 먹여 키워내고 아버지와 40여년을 함께 하셨기에 차마 그 곳을 떠날 수 없다는 어머니의 고집은 완강하셨다. 오늘 고향집에 온 이유도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가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설득하기를 한 시간여, 진땀을 빼며 설득하는 막내딸이 안 돼 보이셨던지 한 달만 서울 생활을 해보고 결정을 내리겠다는 어머니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달이 적은 기간도 아닐뿐더러 아예 집으로 모셔오기 위해 짐을 몽땅 가져올 요량으로 친구에게 빌린 작은 승합차까지 타고 도착한 그 곳엔 예상외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 마당에 쌓아놓은 옷상자가 족히 다섯 개는 넘어 보였고, 큰 가방이 세 개나 놓여 있었다. 이젠 정말 서울로 올라 가시려나보다 하는 생각에 승합차에 짐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풀어 헤쳐 본 어머니의 짐은 ‘어머니의 짐’이 아니었다. 딱 보기에도 어린 아이의 것처럼 보이는 옷가지들이 다섯 개의 상자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오래된 디자인의 옷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관하셨는지 신기할 정도로 쾌쾌한 냄새 하나 없이 깨끗했고, 헤어진 곳 하나 없이 말끔했다.
“엄마, 이건 또 뭐꼬? 엄마 짐 싸갖고 오라켔지, 왜 이런 걸 갖고 왔노?”
“이거? 이게 내 짐이다, 이게 네 눈에는 그냥 쓰레기 같제? 이게 다 보물이다, 보물.
니는 어째 옷 만든다는 아가 이런 것도 모르노?”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상자 한편에 고이 모셔져 있던 재봉틀을 보고난 후에는 그냥 옷을 고치시려고 하시나보다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작업실로 들어오셔서는 컴퓨터를 좀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서울에 오셔서 혼자 계시다 보니 무료하셔서 그런가보다 하고 컴퓨터를 켜는 법부터 인터넷 사용 방법을 알려 드리고 있는데, 문득 ‘아름다운 가게’라는 곳을 들어보았냐고 물어보셨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회사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오며가며 보았노라고 말씀 드리니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셨다. 사실, ‘아름다운 가게’는 자주 보기는 했지만,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라 얼핏 기억에 스쳤던 외관을 보고는 ‘유기농 식품매장’, 혹은 ‘오가닉 의류 판매점’ 정도로 생각했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아름다운 가게는, ‘…낡거나 오래 된 물건을 사람들이 기증하면 아름다운가게는 다시 이 물건들을 되살려 시장으로 보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을 기증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증된 물건을 다시 사간다. 다시 말해 자원의 순환 운동을 꾀하는 시민운동이자 윤리적 소비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었다.
아름다운가게는 공식적으로도 부의 편중과 빈부격차에 대해 서로가 이해하고 나눔으로서 자원의 더 긴 순환과 유통을 핵심으로 삼는다 라는 취지의 기관으로 재활용과 자원 순환을 적극 권장하는 비영리 단체였다. 문득 어머니께서 왜 이런 곳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고, 어떻게 이런 곳을 아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여기는 뭐할라꼬 물어보노? 여기서 일할라꼬?”
“아름다운 가게가 서울에도 있는갑네, 내 마산에서 매일 여기 갔다 아이가,
마산사는 할매들이 손주들 옷이며, 할매들 옷이며 갖고 오면 내가 다 그거 고쳐가꼬 여기 갖다줬다. 서울 와서 고쳐 논게 몇 벌 있는데 마산까지 가기는 그렇고 해서
혹시 서울에도 있나해서 물어봤다 아이가. 여가 참 유명한 곳인갑네.
옷 고쳐다 갖다 주면 깨끗하게 세탁해서 새 옷처럼 맹들어가꼬 판다 아이가.
그러면 그 돈으로 안 된 사람들도 도와주고, 무엇보다 아까운 옷 안 버리고
다시 재활용하면 얼마나 좋노.
깨끗하고 멀쩡한데 버리면 그게 다 죄다. 환경생각은 안하노?
늬들이 다 써버리면 자식들은 뭘 쓰고 사노?
왜 만날 새 것 만들 생각만 하노? 환경도 자원도 사람도 축나는 건 생각 안하고…….”
그 날 이후로, 어머니와 나는 새 옷을 디자인해서 만드는 대신, 고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다음 날이면 산더미 같이 쌓여 버려지는 깨끗하고도 말끔한 옷들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깊은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막내딸은 그 누구보다 열렬한 어머니의 지지자가 되었다. 결국 환경과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임에도, 환경 위에서 마치 제 것인 냥 마구 써댔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나보다 못한 사회적 약자를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음을 후회하며 작업실의 천 한 조각, 단추 하나도 버리지 않고 우리 집의 은밀한 작업실로 챙겨오곤 한다. 작업실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하찮던 천 조각은 밤새 어머니의 마술 같은 손을 거쳐 그 무엇보다 깨끗하고 어여쁜 새 옷으로 탄생하곤 한다.
어렸을 적, 우리 아기들에게 절대 헌 옷을 입히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막내딸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조카들의 옷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태어날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우리 아기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새 옷을 입히기 위해서이다. 작고 귀여운 손과 발을 떠올리며 배넷 저고리를 세탁하고, 헤어진 끈에는 새 단추를 달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낸다. 아장아장 걸을 때 쯤 신을 보행기용 양말에는 고무를 붙이고, 구슬 소리를 내는 장난감은 깨끗이 소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나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도 아껴나가야 할 환경과 사람이다. 한정된 자연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이기에 우리가 아끼고 보호하는 만큼, 나누고 돌보는 만큼 그들에게 더욱 큰 선물이 될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도 우리 어머니의 재봉틀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언니와 오빠들이 물려준 막내딸의 옷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자의 옷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과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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