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청소년부문 수상작
윤리적 소비 자유분야 수기 부문
세상을 바꾸는 신발, TOMS Shoes
(김형석)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다닌 중학교, 매일 아침 집에서 학교까지 대략 400m을 걸었다.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집에서 통학버스가 서는 정류장까지의 거리이지만 어쨌든 하루에 등하교 도합 1km의 거리를 걷게 되는 것이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 이 길,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나가고 비라도 내리면 질척거리는 진흙 밭도 몇 번 거쳐야 하는 여정이지만 내가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튼튼한 한 켤레의 나이키 워킹슈즈 덕분이었다. 역시 유명 메이커는 뭔가 다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신발 밑창의 두툼한 에어백이 마치 구름 위를 노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니까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가 아무생각 없이 편하게 걷는 이 1km 가 세상의 반대편에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국제난민기구 (UNHCR) 에 따르면 1971년 1차 수단 내전의 참상에서 도망친 피난민들이 교전지역을 뚫고 도보로 이동해야했던 거리가 하루에 약 1.2km 라고 한다. 곳곳에 뾰족한 탄피와 포탄 파편이 널려있는 처참한 전장과 울창한 밀림을 순전히 맨발로 횡단한 것이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상의 한 구석에서는 누군가가 뜨겁게 내리쬐는 폭염아래 마실 물 한 동이를 긷기 위해, 또는 독재와 폭력을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변변한 신발도 없이 선혈을 흩뿌리며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교내 TOMS Shoes 클럽에 가입하게 된 진정한 계기는 바로 이러한 과거, 친구가 유명메이커 신발을 사면 부러웠고 새 신발을 사달라고 떼쓰다가 일부러 신발을 잃어버리고 오던 그런 철없는 유년기에 대한 속죄의 의미라고 믿는다.
오늘날 20여개의 나라에서 매년 10만 켤레가 넘는 신발을 기부하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 중 하나로서 TOMS Shoes의 경영철학은 의외로 간단하다. 겉보기에는 멋이 없더라도 가장 튼튼하고 질긴 신발을 만들 것. 불필요한 장식이나 부가기능을 줄임으로서 생산단가를 최대한 절감할 것. 따라서 아디다스나 나이키 등 유명 슈메이커들이 10만원을 신발 한 켤레 값으로 책정할 때 TOMS는 불과 5만원의 판매가격에 두 켤레의 신발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선진국의 고객들이 이 중 한 켤레를 실질적으로 두 켤레 값-5만원-에 구매할 때 TOMS는 남는 한 켤레를 개발도상국의 국민 한 명에게 무상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른바 ‘명품’과 유행을 쫒는 소비자의식이 아직 강한 이곳 한국에서, 그리고 그것도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TOMS Shoes를 홍보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내 친구들은 물론이고 많은 분들께서 일반적으로 왜 이름도 생소하고 생긴 것도 볼품없는 메이커의 신발을 굳이 원가의 두 배나 내고 사서 신어야 하냐고 하셨다. 어떤 분들은 TOMS라는 기업 자체에 대한 존재 가치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셨다. 과연 TOMS 가 가능한 최상의 제품을 공급하고 소비자를 만족시켜야하는 ‘기업’의 의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는가. 소비자로서 TOMS 대신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명품 슈메이커를 애용하는 것은 사치라기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유의지의 예가 아닌가?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 우리의 TOMS Shoes 클럽도 어느덧 수십 켤레의 매출을 올려가는 지금,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경제활동에서의 자유의지는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의 기반이고, 개개인의 선택을 단순히 ‘비윤리적’ 소비라고 매도하는 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자유의지를 나 혼자만의 만족과 물질적인 행복을 위하여 사치라는 형태로 발휘하는 것과, 이를 먼 땅의 어느 누군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나와 인류라는 거대한 가족에 함께 속하는 그를 조금이나마 돕기 위하여 발휘하는 것 사이에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 톨의 씨앗이 거목으로 자라나고 한 방울의 물이 대양이 넘쳐흐르게 할 수 있듯이, TOMS가 진정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한 명의 노력, 한 명의 선택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만 해도 벌써 인구가 5000만 명에 근접하고 있다. 만일 이 많은 사람들이 각각 한 켤레의 TOMS 신발만 구매한다고 해도 지구 어디에선가는 웬만한 나라 하나의 인구가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인도에서 한 학생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그 학생은 아직도 전운이 감돌고 파키스탄과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 카슈미르 근처에서 산다. 가장 가까운 학교조차도 맨발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비포장도로를 지나야하는 곳이다. 그러나 TOMS 신발은 신고 이 학생은 몇 년 만의 첫 등교를 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배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이 세상은-그것이 TOMS 이던지 아니면 다른 어떤 자선단체이든지-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기에 진정 행복하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내 TOMS 신발을 신고, 혹은 들고, 집을 나선다.
내게 있어서 이는 진정한 윤리적 소비의 의미, 나아가 인간다움의 본질을 대변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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