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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소비의 동반자/협동조합

인도의 디자인 세와 - 노점상 여성들이 만든 노동조합

인도의 디자인 세와(Design SEWA) 방문을 통해 본 윤리적 소비 - 이우춘희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좀 더 싸게!!” 

 전 세계가 마법처럼 외운 주문이 바로 “좀 더 싸게!!”가 아닐까 합니다. 좀 더 싸게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내서 조금이라도 더 싸게 물건을 파는 주문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싸게”사기 위해서는 어느 지역의 자원과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해서 “불공정”하게 거래를 하고, 이를 통해 우리 손에 “좀 더 싼” 물건이 쥐어지는 것이겠지요. 즉, “싸게” 구입한다는 말에는 “착취”와 “불공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진 않을까요?
 

세와의 옷을 파는 ‘토픽’과 세와의 펀자비를 입은 필자

세와의 옷을 파는 ‘토픽’과 세와의 펀자비를 입은 필자


 Made in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 멕시코, 칠레, 볼리비아, 케냐 등 여러 제3국가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정말 싼 가격에 여러 나라로 수출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할 싼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곳의 산림을 모두 불태운 후, 우리가 입을 옷의 원단인 목화를 심고, 이를 재배하기 위해 과도한 농약이나 화학약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은 계속 대물림되며, 사람들의 건강 또한 악화되겠지요. 더글러스 러미스의 책『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 나온 주장처럼, 가난해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했더니 가난해지는 제3세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빈곤은 고스란히 힘없는 약자인 아이들과 여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지요. 이처럼 빈곤의 여성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인도 세와(SEWA)라는 여성단체를 방문했습니다. 세와(SEWA)는 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의 약자로, ‘자기 스스로 고용한 여성들의 연합’이란 의미에요. 아무도 배우지 못하고 힘없는 여성들을 고용하지 못한다면 그 여성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그 여성이 스스로를 고용하면 됩니다. 그래서 탄생한 단체가 세와입니다. 일자리를 통해서 자신들의 빈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이지 않나요? 
 
저희가 그곳에 가게 된 사연인즉슨 이러합니다. ‘아시아여성연구’라는 수업시간에 장필화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문득 이렇게 물으셨어요. “빈곤이 무엇일까요? 젊은이들은 그런 재미없는 주제를 좋아하지 않죠?” 아시아에서 ‘빈곤’ 그리고 ‘여성’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석유가격은 상승하고, 곡물가격이 치솟는 이 시기에,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으면서 빈곤층이 더 이상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이런 대안을 우리가 늘 미국이나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로 눈을 돌려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선택한 곳이 바로 인도의 세와(SEWA)입니다. 

 인도의 세와(SEWA)는 여러 가지 사업들과 조직들로 구성되어있는데요. 차근차근 소개해 드릴게요. 우선 세와(SEWA)는 구자라뜨주(州)의 아메다바드시(市)에서 1972년 설립되었고, 설립자는 엘라 바트(Ela Bhatt)라는 여성입니다. 세와(SEWA)에는 2006년 90만 명의 사람들이 인도 전역에 가입되어 있고, 그 중 40만 명이 Gujarat 주(州)에 삽니다. 엄청난 규모 아닌가요?

 그 여러 세와 조직 중에 ‘디자인 세와(Design SEWA)’이란 곳이 있습니다. ‘디자인 세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그 곳의 개개인의 여성들이 옷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들이 디자인 한 제품은 시장에서 많이 팔리지도 않았고, 유통판로도 갖추어지지 않아서 여성들이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디자인 세와’의 디자이너들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디자인들을 발굴해내고, 이를 개발해서 여성들에게 가르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여성들은 그 디자인과 홀치기염색법(Tie-dye)과 같은 염색법을 배워서 옷을 만들고, 이 ‘디자인 세와’로 옷을 가져오고, 세와가 구축한 유통판로를 통해서 옷이 팔립니다. ‘세와샵(SEWA Shop)’에는 이처럼 여성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와의 디자인으로 인도 델리와 미국의 뉴욕에서 전시회가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디자인 세와’에서 만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한 할머니는 저희에게 수공예 판목날염(핸드 블록 프린팅, Hand Block Printing)을 하는 방법을 보여주셨어요. 수공예 판목날염은 손바닥만 한 나무에 무늬를 새겨서 규칙적으로 무늬를 천에 찍어내는 방법입니다. 하나하나 찍어내는 그녀의 작업이 고되고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합니다. ‘빨리빨리’라는 것이 몸에 베인 저에게는 어쩌면 기계로 단순히 찍어내는 프린트가 더 편하게 보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한 땀 한 땀에서 찍어 나오는 판염에는 ‘정성’까지 함께 스며있습니다. 그 분은 고된 노동자가 아니라 거기에서는 장인이자 전문직 여성입니다. 여성들의 지혜가 그 할머니의 몸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셈이지요. 세와의 상품의 모든 것이 천연 염색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천연염색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공예 판목날염을 보여주는 ‘디자인세와’의 전문직 여성

수공예 판목날염을 보여주는 ‘디자인세와’의 전문직 여성

 
‘세와디자인’이 있다면, 여러 지역마다 공동 작업장이 있고, 제가 방문한 곳은 바푸나가르(Bapunagar)의 샨티파스 센터(Shantipath Centre)였습니다. 여성이 일을 하게 되면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세와는 이를 알아채고 작업장에 선생님을 두어 여성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기면서 일할 수 있는 복지의 개념을 갖춘 작업장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여기는 힌두교인들과 무슬림들이 종교로 인해 충돌하는 지역이었고, 남성들은 서로의 지역에 들어가지 않기도 했다고 해요. 그러나 여성들에게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종교 갈등쯤은 문제되지 않았죠. 여성들은 서로에게 의지하여, 물물교환을 하고, 서로 모여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서로 세와 작업장에서 만나면서 그들의 관계는 돈독해졌다고 합니다. 그 중 어느 한 여성은 남편을 잃고 망연자실했었는데, 다행히 세와를 만나서 다시 자립할 수 있게 되었고, 딸을 결혼시켰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도 했습니다.

바푸나가르(Bapunagar)의 샨티파스 센터(Shantipath Centre) 작업장의 여성들

바푸나가르(Bapunagar)의 샨티파스 센터(Shantipath Centre) 작업장의 여성들


이렇게 여성들의 정성어린 손길로 만들어진 ‘세와’의 제품들은 그 곳에서는 지명도가 있다고 합니다. 세와에서 옷을 샀다고 하면 좋은 제품을 구입했다는 인식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인도여성들이 입는 사리, 스카프와 동생에게 줄 천연염색 티셔츠,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드릴 손수건을 세와에서 구입했습니다. 만약 제가 인도에서 글로벌시장의 유명 브랜드의 옷과 신발, 가방을 사왔다면, 제가 지불한 금액의 상당부분은 글로벌 회사로 가겠지요. 하지만 세와에서 산 옷과 스카프, 손수건을 사면서 지불한 돈은 그 지역에서 순환됩니다. 때문에 여성들은 도시빈민으로 내몰리지 않고 그 곳에서 계속해서 생활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물가로 볼 때 세와의 제품들은 가격이 약간 높지만, 제 스카프를 할 때마다 저는 윤리적 소비를 했다는 ‘자부심’까지 함께 입고 다닙니다.

 이처럼 착한소비 혹은 윤리적 소비는 이러한 여행을 하면서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의 물건을 구입하고 이로 인해 그 지역으로 화폐가 순환된다면, 지역경제는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립한 여성들이 계속해서 삶을 유지해나간다면, 빈곤선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많이 줄어들겠지요. 인도에서 만난 세와의 담당자인 프레띠바가 저희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지요. “여성이 부유해지면, 가족이 부유해집니다.” 특히 여성들이 자립을 하게 되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소나 닭을 사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가족부양을 하게 되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말입니다. 여성의 빈곤화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한 가닥의 희망이 희망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의 물건을 구입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겠지요.

 신자유주의 칼바람이 불어치고,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금융경제의 추락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연대의 끈이 있고, 서로서로가 파괴되지 않고 공생함으로써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윤리적 소비일 것입니다. 제3세계 여성들은 삶의 보전하고 더불어 인간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신들의 지혜가 담긴 물건을 생산하며, 그들의 지혜를 우리에게 조금 나눠주고자 희망의 손길을 뻗치는군요. 우리는 그 손을 뿌리치기 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마주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물건의 값을 깎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조금 비싸게 느껴질지라도 “정당하게!!!!” 구매하는 것이 서로가 살아남는 방법, 즉 윤리적 소비를 향한 작은 발걸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환경재단과 G마켓의 후원인 ‘2008 그린 아시아’ 프로젝트 덕분에 2008년 7월에 인도 세와에 다녀올 수 있었고, 2008 그린 아시아 보고서를 참조하여 글을 썼습니다.

** 이 글은 김정희님의『공정무역, 희망무역 (아시아의 여성 공정무역을 중심으로)』책을 읽고 제가 쓴 리뷰를 참고해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