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커피 산지에서 얻은 깨달음] 하얀 커피꽃이 피었다. 빨간색 커피체리가 익었다. 체리의 외피․과육을 벗기고 건조를 위한 사람들의 몸짓도 분주했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자연이 내려앉고 인간의 노고가 투입되는 현장이다. 내가 만들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잉태되는 터전이다. 나는 동티모르 로뚜뚜 마을에 와있다. 공정무역 커피산지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동티모르 딜리공항에서도 꼬박 십여 시간 이상 험한 산을 타고서야 도달할 수 있는 산촌의 커피마을.

동티모르의 7월,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에 ‘만남’을 가졌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휘말릴 수 있는 우연한 일로 가득하다.” 사실,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 커피를 만들고, 공정무역 커피하우스를 꾸리며, 사회적기업을 공부하면서, 공정무역 커피산지에 발을 디딘 그 모두가. 궁금했다. 이야기와 사진만 보고 듣고, 상상했을 뿐이었으니까. 태고의 산악이 품은 동티모르에서 내 커피의 근원과 세계의 잇닿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곳에 왔다. 숨을 깊이 들이쉰 순간, 느꼈다. 아, 우리는 연결된 존재구나.

로뚜뚜에 도달한 순간, 실감했다. 그 모든 것은 커피 한 잔의 자연이었다. 땅, 햇빛, 바람, 비, 안개, 별 등 대자연을 머금고 자란 커피열매와 그것을 따고 다듬는 사람들. 자연과 땀의 결정이었다. 하얀 마음과 빨간 열정이 어우러져 갈색의 음료가 나온다. 이방인을 위해 내려준 커피에서 온유한 맛을 느낀 건 그런 이유였나 보다. 내 마음이 그 자연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기상이변의 비극은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동티모르에도 기상이변이 덮쳤다. 하늘이 뚫린 마냥 10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닥쳤단다. 아무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에는 눈을 돌려도 누가 동티모르의 비극에 관심이 있을까.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관심이 없다면 알 수 없는 일. 문제는 커피 농사도 흉년이었다. 매년 25톤가량 이뤄지던 커피 생산은 1톤으로 팍 줄었다. 자연의 분노는 수시로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 커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에게 커피열매가 맺지 못하는 현실은 삶 또한 영글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후 벌어졌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공정무역이 지닌 회복탄력성이라고 할까. 공정무역이 단순히 생산자에게 시장가보다 돈 몇 푼 더 쥐어줌으로써 끝나는 체제가 아님은 알고 있었다. 커뮤니티의 유지와 생산자조합(혹은 그룹)의 결성 등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나누는 것. 전국YMCA연맹에서 파견된 양동화 간사는 커피로 동고동락한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을 이해했다. 방법을 찾았다. 마침, 도서관과 학교 등의 건립이 추진되고 있었고, 이들을 그곳의 자원으로 돌렸다. 공정무역의 진짜 힘이 발휘되는 순간. 한 해 동안, 로뚜뚜 마을 커피향은 약해지겠지만, 몇 년 뒤 책향기가 덧붙여져 로뚜뚜 커피는 더 좋은 품질과 향미로 다가설 것임을, 나는 확신했다.

뭣보다, 커피생산자와 함께 밥을 나눠먹고 커피를 마신 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들과 마주한, 해발 1004m에 자리한 마을사무실(겸 숙소)은 고도 덕분에 ‘천사의 집’이라고 불렸다. 천사가 있다면, 지상에 내려와 커피 한 잔 마시는 휴식처로 쓸 법한 곳에서, 어쩌면 지상의 천사들과 마주 한 시간. 손에 힘주어 악수를 했으며, 또박또박 이름을 부르며 눈을 보았다. 개별의 인간에게 새겨진 구체적인 존엄이 거기 있었다. 내 커피의 실존과 마주대했다. 감격스러웠다.

그 삶의 실체는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심연이겠지만, 나는 그 구체적 존엄 앞에 겸손해야 했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였고, 나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 커피 덕에 저 멀리 한국의 누군가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그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 나는 몇몇에게 커피란 당신에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누군가는 행복이라면서 웃었고, 다른 누군가는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답했다. 어떤 이는 여자 친구 같다고 했다. 나는 당신들이 채집한 커피가 ‘디아’(좋다)하고 ‘가빠쓰’(맛있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곳은 커피나무를 경작하지 않는다. 플랜테이션 농장 등에서 가꾸는 농사가 아닌 채집이다. 자연이 키워준 것을 때가 되면 채취할 뿐이다. 유기농 그 이상이다. 생두는 튼실하며 빛깔도 좋다. 맛도 뛰어나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경이로움을 품은 야생 커피가 지닌 장점이다. 하얀 커피꽃과 빨간 커피체리, 녹색 생두를 잉태하는 자연과 생산자를 만나면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짐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커피를 더 정성스레 만들어야겠다. 커피는 곧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들은 그것을 확인해줬다. 대자연과 생산자의 마음에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사람의 마음이 합쳐진다면, 커피가 그보다 맛있을 수 있을라고! 공정무역 커피는 그런 ‘만남’과 ‘관계’속에서 빛을 발한다.

윤리적소비는 별다른 게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지 아는 것. 그래서 세계가 연결돼 있음을 깨닫고, 고마움을 가지는 것. 협동조합운동이 양이나 이물질 포함여부를 속이지 않음에서 시작한 것은, 마음을 담았다는 말이다. 내면적 사회적기업을 지향하는 나의 커피하우스가 공정무역 커피에, 가급적 화학첨가물을 섞지 않고, 유기농을 고집하는 노력은 그래서, 당연한 의무다. 그들의 노동과 실존을 마주하면서 지금 내 생존의 윤리를 생각했다. 아,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이는구나. 조금 덜 먹고, 더 움직이자. 요즘 내가 만든 커피 한 잔에 담긴 윤리다. 로뚜뚜를 통한 깨달음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된, 세계의 점들이다. 세계는 지금을 살아가는 무수한 점들에 의해서 돌아간다. 로뚜뚜의 속삭임이다.
Posted by 윤리적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