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인생수업
(김민숙
)


서울에서 태어나 30여년을 살다 대전에 내려온 지 벌써 만 5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래도 친정이 아직 서울인지라 일년에 몇 번씩은 서울에 가게 됩니다. 처음 몇 년은 그래도 고향이라고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느낌으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흐르고 이젠 서울에 한 번 갈라치면 그 느낌은 지방 사람 그것이 다 되었습니다. 서울 공화국으로 입성하는 느낌! 이랄까요. 모든 물자와 자원과 자본과 사람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점점 더 거대해지고 견고해지는 서울 공화국... 그 안에 살 때는 잘 몰랐습니다. 저의 삶의 모양새가 어디쯤 자리해 있었는지를요.


서울서 임신했던 둘째 아이를 대전에 오자마자 출산했습니다. 태열이 심했지만 큰아이도 그랬던지라 별 걱정 없이 백일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때쯤이면 뽀얗게 젖살이 올라 예뻐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요. 하지만 백일이 되어도 둘째의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TV에서 안타깝게 보았던 진물투성이 아토피 아기의 얼굴이 제 딸의 얼굴이 되어있었습니다. 병원에선 전신 아토피라며 평생 고생할꺼라 하더군요. 스테로이드 연고와 항히스타민제 처방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습니다. 평생 고생이라니, 방법이 있겠지..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읽었습니다. 기본은 유기농 식단과 좋은 공기, 물이었습니다.

당장에 바꿀 수 있는 건 그나마 식단인지라 유기농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생협에 가입했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도 알고는 있었지만 회비도 내야하고 직장 다니며 아이를 맡기는 엄마 입장에선 선뜻 이용할 필요도 많이 없고 해서 이용하지 않았었지요. 이젠 아쉬운 마음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유기농 먹거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협과 인연을 맺었고 이것이 저의 살아온 방식을 전환하는 작은 출발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저는 아이의 아토피와 싸우느라 밖으로 시선을 돌릴 여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너무도 힘든 나날이었지요. 피투성이 된 아이를 붙잡고 거의 실성해서 울부짖는 날들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고통의 터널에도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얼굴은 어느덧 새살이 올라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갔고 긁지 않고 잠드는 믿기지 않는 밤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저의 인생에서 최대 위기의 시간을 넘기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대형 마트가 편하고 좋았습니다. 깔끔하고 온갖 물건이 다 모여 있어 쇼핑하는 재미가 있었지요. 구질구질하게 흥정하고 물건 볼 줄 모르는 새내기 주부 티 내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쿨한척 세련된 척 적당히 소비하며 지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누가 키웠는지 무엇이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식품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품으로 아이를 키웠었구요. 어떤 땅에서 어떤 이의 땀과 노고가 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는 온갖 머나먼 나라의 생산품들로 뒤범벅된 그런 물건을 소비하며 살아왔던 저의 모습을 값비싼 고생을 치르고 난 이제야 보게 된 것이지요.

 단지 내 아이의 건강 때문에 이용하기 시작한 생협이고 유기농 먹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 가족을 위해 시작한 나의 소비의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 땅의 사람들과 곡식, 식물, 가축들이 서로를 키워가며 자라게 하는,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생산자분이 키워냈는지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 그분의 수고와 어려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좀 못생기고 때깔이 곱지 못한 사과나 귤이더라도 그 안에 그만한 사연이 있음을 알고 먹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정감이 갔습니다. 날씨가 안 좋아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깝고 애타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사서 쓰고 먹고 입는지 예전엔 그저 나 한사람을 위한 선택이고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러한 나의 소비가 이 땅 어딘가에서 애쓰고 있는 한 농부의 꿈을 일으켜 세우고 죽어가는 우리 땅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본에 휩쓸려 죽어가는 이 지구촌 곳곳의 땅과 농부들 또한 세워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다시 나를 살리고 내 자식들을 살리는 길임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마음을 가진 나와 같은 동네 식구들을 알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네요. 아이를 키우는 다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어떤 물품이 새롭게 나왔는지 정보도 나누고 생산지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것이 생산됐으면 좋겠다 의견을 내보기도 하지요. 지난 봄에는 아나바다 장터를 열어 안 쓰는 물건들을 서로 내다 팔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답니다.  

 사람 귀한 줄 모르게 무섭게 굴러가고 있는 이 거대한 도시 집중의 삶 속에서, 끝없이 생산하고 소비해 대는 이 거대한 자본 집중의 삶 속에서 나는 어디쯤 서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자리는 과연 올바른 걸까요. 모두들 잠시 자기가 머물러 있던 곳에서 한 발짝 씩 떨어져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저에겐 아이의 아토피가 그러한 시간을 주었다면 다들 나름의 이유들로 돌이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의 소비가 땅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힘이 있음을 다시금 믿으며 저처럼 굳이 힘겨운 인생수업을 치르지 않고라도 현명한 선택을 하는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늘어났으면 하는 것이 지방에서 애 둘 키우며 사는 이 아줌마의 작은 바람입니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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