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나는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처절하게 절규했다. 음식을 얼게 할 만큼 강렬한 냉기도 나의 분노를 식힐 수 없었다. 벌써 쓰레기차 더미에 실려 어딘가에 묻혔거나 사라졌을 테지만, 그걸 천연 조미료라 여기고 갖은 음식에 넣었던 나로선 배신감과 죄책감에 자꾸만 화가 났다. 아침마다 딸아이 밥 위에도 듬뿍듬뿍 뿌려주곤 했는데. 그게 다 가축 사료로 쓰거나 폐기해야 할 채소였다니. 나뿐만 아니라, 백화점과 마트에서 “아이들 이유식이나 주먹밥에 넣으면 아주 그만”이라는 ‘불량 맛가루(후리가케)’를 사 먹인 엄마들의 정신적 충격은 참담할 정도다. 핑계를 대자면 시식을 한 것이 문제였고, 입이 짧은 아이가 너무나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걸 신주단지 모시듯 냉동실에 넣고 떨어지면 사다 두고, 또 사다 두었다. 그러니 냉장고 앞에 설 때마다 원통해서 사자처럼 포효할 수밖에.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그래도 생협이 있으니 다행이지 않느냐고. 그 말은 4년 넘게 조합원인 내가 생협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그동안 나에게 생협이란 친환경 식재료나 과일, 간식 등을 파는 마트일 뿐이었다. 그래서 협동조합이나 윤리적 소비, 수매 선수금 등 낯선 단어와 부딪힐 때면 호기심보단 무관심으로, ‘내가 필요한 물건만 사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불량 맛가루’ 파문으로 식자재는 물론 그걸 만든 사람까지 믿고 살만한 곳이 절실해지자, ‘소비자 생활 협동조합’이라는 생협이 존재하는 이유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활동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중 매달 여러 품목을 불시에 검사해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내가 받은 충격을 덜어내고 신뢰를 주었다. 자연재해를 입거나 작황이 좋지 않은 작업장에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 도움을 받은 분들의 감사인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리고 우리쌀, 우리밀의 생산과 소비를 늘리기 위해 그동안 모인 출자금으로 생협만의 자체적인 공장을 짓고 라면과 만두, 막걸리 등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을 보며 바로 이게 협동조합의 정신이 아닐까 싶었다. 땀으로 맺은 결실이 헛되지 않도록 서로 가진 걸 조금씩 나누는 일이 바로 윤리적 소비란 생각도.

얼마 전, 처음으로 수매선수금에 참여했다. 품이 많이 든다는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고, 사람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주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분들이 웃으며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아니, 이분들이 있기에 나는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으니 내가 도움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생협의 고마움을 다시 한 번 알게 해 준 남편에게는 아주 오랜만에 선물도 했다. 그동안 몸에 좋지 않은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고 잔소리만 했는데, 기왕 먹는 거 좋은 거 마셔야하지 않겠냐고 출근하는 남편 손에 공정무역 커피를 들려준 것이다. 그러자 “커피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며 멋쩍게 받아 들던 남편이 집에 와선 깔끔하고 향이 좋다며 아주 만족해했다. 회사 사람들도 한번 맛을 보더니 컵을 가지고 와서 두 스푼만 달라고 한다며. 나는 우리가 그 커피를 마시면, 강제로 노동착취를 당하던 커피재배농가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아이들도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남편은 다음에는 두 병씩 사다달라며, 명절 선물도 공정무역 커피로 하자고 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남편 얼굴이 환해보이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후광이 남편을 ‘진정한 훈남’으로 바꿔놓았다.   

요즘은 생협 홈페이지에서 장을 보는 날이 많아졌다. 매장에 가려면 두 아이를 데리고 차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가까운 대형 마트에 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다. 마트가 조금 더 저렴할 진 몰라도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그러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윤리’는 가격 차이와 비교할 수 없는 ‘의리’ 같은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전에는 필요한 것만 얼른 찾아 장바구니에 담곤 했는데 이제는 ‘책임소비’ 물품부터 확인하고, 공지사항과 공동구매도 하나하나 살핀다. 조합원이라는 자부심이 마음을 새롭게 하는 순간이다. 아이에게 “먹지마라”는 말 대신 초콜릿과 사탕, 과자도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오늘은 지난 소식지를 우연히 넘겨보다가 와인과 맥주에 대한 내용에서 눈길이 멈췄다. 세계 최초로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탄디와인’이 생협에 공급된다는 짧은 기사였는데 커피와 초콜릿, 마스코바도(유기원당)에 이어 와인까지 공정무역세계를 섭렵해 나가는 생협의 저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맥주에 대한 소식은 수입 보리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재고로 쌓여가는 우리 보리의 생산과 소비를 늘리기 위해 생협이 보리 농가의 수확과 유통을 책임지고, 국내 보리로만 만든 맥주 ‘라거’와 ‘에일’을 개발, 출시했다는 것이었다. 캬, 세상에. 아직 맛도 보지 않았는데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이렇게 서로 돕고 나누다 보면 모두가 잘 사는 그런 따뜻한 날이 꼭 올 거라는 확신이 섰다. 
 
다가오는 내 생일에는 꼭 탄디와인과 라거, 에일을 마셔봐야겠다. 술은 절대 섞어먹지 말라고 회식이 잦은 남편에게 누누이 말했었는데 이 날 만큼은 내가 좀 대책 없이 맘껏 즐겨보고 싶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남편에게 모두 미뤄놓고. 아, 얼마만의 음주인지 생각만으로도 벌써 취한 것 같다. 기왕 취한 김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하나 털어놓자면, 둘째가 유치원에 가는 그 날로 나도 생협에 취직해야겠다. 교육도 받고, 캠페인도 참여해서 먹는 걸로 사람 속이는 불량한 양심은 모조리 無방부제, 無첨가 되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

오늘 밤은 나 자신을 위한 윤리적 소비를 꿈꿔야겠다. 내 미래에 생협을 그려 넣는 일이 바로 그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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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문] (수기) 어떻게 살까 - 이성주

2013.09.10 17:19 과거 수상작 | posted by 사회적경제

 

멀리에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 가까이에는 벌거벗고 서 있는 아이, 땅은 가물었는지 갈라져있고 한쪽에서는 갈라진 땅이 파도가 되어 아이를 덮치려는 그림 한 장.

작년 봄 경기도의 한 대안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4주간의 교생실습을 함께 하게 되었다.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국어과 담당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수업을 마음대로 준비해서 해보라고 하셨고, 나는 수업 활동 중에 하나로 이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그간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에 조금의 기대를 품은 것도 사실이지만 중학교 1학년이기에 ‘사막화’나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의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대답은 나의 상상, 나의 감수성을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어떤 아이는 ‘파도를 괴물에 빗대어 SF적인 상상의 이야기’를 또 어떤 아이는 ‘자신을 앙상한 나무에 빗대어 헐겁게 서서 아파하는 친구(아프리카 아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비겁한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의 감성이 나를 울렸지만 그 중에서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담고 있는 대답이 있다.

“내가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버리는 모든 것들이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파도가 되어 덮치는 일이 된다.”

수업을 마치고 이 아이의 답변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아프기도 했다.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이상, 어떻게 살아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과 그동안 몰랐던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실습이 끝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일상이 낯설게 되는 순간을 마주했다. 가령 아이의 말은 지하철 전동차 한 쪽 벽면에 지하철을 타면 탄소가 얼마만큼 줄어들고, 또 나무 몇 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광고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아이의 말에 의하면 내가 일상적으로 타고 다니는 지하철도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는 아이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교통수단이고 평생을 걷는 것 이외의 이동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일이겠구나.’

그럼에도 한동안 나는 대안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인간’이라는 동물은 ‘인간’이외의 생명체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종(種)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아니, 도움은커녕 엄청난 피해만 주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면 존재 자체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까.

교생실습을 했던 작년 1학기를 끝내고,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나는 1년의 휴학을 결심했다. 지금 그 1년을 막 끝내고 난 뒤라, 그간 경험했던 낯설고 새로운 일상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휴학을 하고 가장 처음으로 했던 것은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일이었다. 시골의 어르신들에게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자는 곳을 제공 받기도 했다. 어떤 시골 마을의 이장님은 농사를 지으며 시골에 살고 싶다는 나의 말에 “너는 된다.”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단호하게 이야기하셨다. 그 이장님의 말이 용기가 되어 나를 밀어줬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내 소망은 현실이 되었다.

자전거 여행의 종착지는 충남 아산이 되었다. 바로 며칠 전에 내가 여행할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으니, 최근 까지 내가 머물던 정류장은 ‘그 곳’이었다.

우연히 머물렀으나,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또 많은 것을 배웠다. 낯선 청년에게 숙식과 용돈도 주셨던 농부 선생님을 비롯해 시골 마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곳에서 자연드림 매장으로 가는 벌꿀의 생산부터 포장과 물류센터로 배달하는 과정을 경험했고,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마을 회의에도 간간히 얼굴을 내밀었다. 전에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한살림이라는 이름도 자주 접하게 되었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어른들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곳은 전에 내가 살던 세계와 다른 세계였고, 또 내가 살던 세계보다 더 ‘살아 있는’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가 살던 세계 자체에 의심을 품고 있는 나에게 그곳에 살던 어른들은 확신이 있어 보였고 빛나 보이기도 했다. 분명 그랬지만, 나는 그곳의 세계와 내가 살던 세계가 ‘다른 세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곳에 머물고 배우면서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 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떠나기 마지막 한 달에 나는 그 실마리를 어렴풋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생협이나, 농사, 마을 만들기, 로컬 푸드와 같은 생소한 단어들에 매료되어 그것과 관련된 일만 하다 보니 무언가 놓치는 것이 있었다. 가령 시골 마을에 살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얼굴과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그런 것이다. 마지막 한 달,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나는 마을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만들기 위해 80이 넘은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그들의 삶을 듣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10개월보다 마지막 1개월에 마을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가 떠나는 날 누구보다 서운해 했던 것은 마을 어르신들이었고, 많이 섭섭해 했던 할머니 눈을 보다가 내 눈에도 무언가가 고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생면부지의 낯선 청년과 어르신들이 나눈 것은 지금의 세계에서 꼭 필요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소비는 ‘사는 것(買)’이 아니라 ‘사는 것(生)’ 그 자체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과도 같다. 그 대답의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협동조합이라는 단어나 사회적 기업이라는 단어는 물론 좋은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그런 좋은 시스템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아산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직접 생산한 꿀을 가지고 카드로 옷을 사도 할인을 해주는 이상한 옷가게를 들렸다. 이런 대화를 하는 단골 옷가게.
“카드로 사는 거니까 깎아주시지 마세요.”
“파는 사람 마음이에요.”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마음’이 나누어지는 소비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여전히 의심하고 방황하는 청년으로 살아야겠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2012년의 가을과 겨울 사이 즈음 일이다. 내 나이 29세,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으로 강남 의 대형 커피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난 후, 연극에 특출한 소질 없음 ‘반(50%)’, 생계 문제 ‘반’의 이유로 평범한 4년제 대학의 내 또래 친구들보다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터라, 커피업계에 몸 담은지도 어느덧 7년이 다 되어가던 해였다. 돌아보니, 스스로에게 “토닥토닥, 쓰담쓰담” 해주기에 마땅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오던 중, 급작스레 아버지 상을 치르게 되었고 방향 없이 쳇바퀴처럼 돌던 내 인생의 시계바늘을 잠시 멈추어, 미쳐 아직 쫓아오지 못한 내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고민 끝에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는 용기가 불쑥 생겼다. ‘내가 원하는 맛을 제공할 수 있는 카페를 차려야겠다.’ 라는 오랜 꿈을 저지를 용기 말이다. 우선 잘 다니던 회사를 당차게 그만 두었다. 그렇게 무작정 나의 홀로서기는 시작되었다. 

지난 7년간 숱한 매장을 오픈한 경험이 있었지만, 역시나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내 가게를 오픈하는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하늘도 무심하진 않으시지! 그 시기에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고, 참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이 사람을 통해, ‘공정무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참고로 이 사람의 직장은 생협이다.). 데이트 코스로 공정무역 페스티벌과, 신청사 공정무역카페 오픈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 당시 한창 특별한 메뉴를 고심하던 때라 더 솔깃했고, 생산자의 자립을 도움으로써 함께 상생할 수 있다는 점에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시혜’적 차원에서의 기부가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무역방식이 ‘나도 잘살고 남도 잘 살게 하자.’라는 내 운영철학과 잘 맞아든다는 생각에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메뉴준비에 포함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커피의 기본인 에스프레소까지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내 마음에 쏙 드는 에스프레소로 납품받기로 결정을 한 상태였고, 공정무역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모두 그 선한 의미만을 보고 가게를 오진 않기 때문이다. 아직 커피 맛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에스프레소까지 아직 맛을 모르는 공정무역 원두로 모두 바꾸는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대신 공정무역 제품으로는 핸드드립용이나 브루(기계로 내리는 커피)용과 티를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통 커피소비의 80~90%는 에스프레소 원두를 사용하고 나머지 10~20%는 드립커피나 티로 나간다.

공정무역 티(tea)의 경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Rishi-tea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품에 대한 설명들과 사업자를 위한 판매창이 개별로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맛과 품질 그리고 공정무역의 의미까지 모두 균형 있게 갖추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또한 거래과정에서 많은 안내책자와 포스터를 보내주어서 초반에 홍보하기도 수월했다.

이와 달리, 공정무역 커피는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처음으로 알아본 곳은 공정무역으로 유명한 K기관의 OOOO 원두였다. 우선 맛을 보고 싶어서 홈페이지를 뒤졌지만 원두에 대한 설명이나 구매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공정무역과 관련한 기사들과 후원 내용 외에 원두에 대한 정보들이 너무 없어서 본사에 전화를 하였다. 하지만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하여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런 상태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결국, 남자친구의 지인들께 수소문해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메뉴 중 하나를 공정무역 카테고리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치아파스 원두를 샘플로 받아보고 싶어요.”라는 내 질문에 난감해 하는 듯했다. 내 느낌엔 소매업자에게 이런 질문들을 받아보신 적이 많이 없는 듯 했다. 볶은 원두와 생두를 조금씩 샘플로 달라 하였더니 그제서야 조금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보내준다고는 하였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샘플이 오지 않았다. 다시 연락을 드렸다. 이런..! 아직 안 보내셨단다. ‘거래는 신용이 기본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나에겐 불쾌한 감이 있었지만, 정중하게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한 끝에 3일후 원두가 도착했다. 그래도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상기되어있었다. 다행히 예상했던 것보다 원두의 맛은 좋았다. 로스팅만 조금 조절한다면(생두로 납품을 받을 수 있다면 조정이 가능하기에) 맛도 의미적인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물론 공정무역으로 들여왔기에 시중에 있는 일반 원두보다 어느 정도 비쌀 것이란 예상은 하였지만, 그 예상보다도 훨씬 높은 금액이었다. 공정무역도 좋지만 카페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또 다른 공정무역 원두를 취급하는 A기관을 조사했다. 공정무역 커피로 가장 유명한 곳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 기관에서는 원두 샘플조차 받아 볼 수 없고, 인근 매장에서 구매하여 맛보라는 답변이 와서 황당했다. 그 황당한 마음을 가다듬고, 시키는 대로 직접 해당 기관의 매장에 가서 원두종류를 모두 구매해 보았고 시음해 보았다. 그 결과 이 원두로 한다면 내가 생각한 맛을 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담당자에 전화를 걸어 사업자로 거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 기관에서는 에스프레소 원두까지 모두 사용을 해야 도매가로 납품이 가능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일반매장에서 다른 소비자들과 똑같이 구매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물론 아주 소량의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면서 다른 것들도 모두 공정무역인 것처럼 거짓광고를 하는 것을 예방하고자 목적이 있을 수 있겠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은 솔직히 화가 났다. 소량이라도 취급을 가능케 하고, 표시를 정확히 구분하여 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좋은 의미로 메뉴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업체가 아니면 공정무역을 할 수 없는 걸까? 맛-가격-공정무역의 의미를 균형 있게 갖춘 공정무역 커피는 찾을 수 없는 걸까? 솔직히 현재의 가격수준으로는 개인 점주가 100% 공정무역 원두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작 일부‘만’ 공정무역 커피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일부‘라도’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감에 차있던 남자친구의 추천은 모두 실패하였고, 유명한 공정무역 기관들이 아닌 다른 개인 업체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교회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지인이 공정무역 원두를 비교적 저렴하게 제공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연락처를 받아 연락 해 보았다. 앞선 기관들과 달리, 샘플을 보내달라는 말에 흔쾌히 보내주신다고 한다. 약속한 기일에 papua new guinea 단종원두를 받아 볼 수 있었다. 파퓨아 지역에서 나오는 중간정도의 바디감과 밝은 꽃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품질 좋은 커피였다. 가격 역시 앞서 알아보았던 기관의 원두들보다 30%는 저렴했다. 품질도 신뢰할 수 있었다. 이 업체는 생두를 공정무역으로 수입하여 주문즉시 직접 로스팅하여 배송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굳이 에스프레소 원두가 아니더라도 단종(한 가지 원두)원두만도 판매 가능하다 했다. 하지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지라 기본 주문수량이 너무 많았다. 내 가게에서 한 달에 소진할 수 있는 양은 기본수량의 절반정도인데 난감했다. 그런데 내가 계속 난감해 하고 있으니 담당자는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가게운영을 처음 하는데 공정무역 카테고리 안에 단종원두 한 가지를 넣고 싶지만 그럴 경우 기본 주문량이 너무 많다.” 라고 솔직히 이야기 했더니 흔쾌히 절반만 공급하겠다고 제안 해주었다. 금액 역시 기본주문수량과 같은 금액대로 준다고 하였다(보통은 발주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할인율이 줄어든다.) 그래서 바로 주문을 넣었고, 그렇게 삼고초려 끝에 공정무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메뉴판에 작게 공정무역이라 써놓았더니 한동안은 아예 나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메뉴판을 전면 수정하여 제일 중앙에 판매되는 공정무역커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작성해 두었다. 그러자 손님들이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물론 에스프레소와 공정무역커피는 다른 유통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설명도 고객께 한다). 또한 공정무역 커피로 더치를 추출하니 그 맛 또한 깔끔하니 맛이 좋았다. 하루에 1~2잔 판매되던 공정무역 커피가 지금은 아이스커피로, 더치커피로 메뉴가 확장되고 판매율도 점점 상승중이다. 특히 선물용 더치커피가 많이 판매된다.

돌이켜 보건대, 처음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공정무역에 대한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손님들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제품에 관한 기본지식의 습득은 필수다)도 버거웠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공정무역 원두 공급업체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취급 하는 곳도 많지 않은데다, 나처럼 평범한 개인 카페 점주가 알아보기엔 정보들이 닫혀있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원두판매 업체와 같은 시스템과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요컨대, 공정무역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공정무역 가치의 스토리텔링은 기본으로 하되, 기본적인 사업 시스템과 서비스 정비가 함께 마련되어야한다. 나아가 100% 공정무역 제품을 취급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방법과는 달리, 나처럼 일부의 공정무역 제품만이라도 취급하여 가게를 망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운영해 나가면서, 조금씩 공정무역 제품에 적합한 메뉴를 개발하고 비중을 늘려나가는 방법도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기에 확산 가능한 성공적인 공정무역 카페 비즈니스 모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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