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그건 정말 얼마인가요?
(
박주아)

 
“아야, 아야야, 아…….”


 몇 년 전, 객지생활 1년 만에 나는 방 한 구석을 뒹굴고 있었다.
 누구에게 도움청할 데도 없이 간신히 근처 병원을 들른 결과 알게 된 병명은 장염.
 꼬박 일 주일을 고생했고, 그 뒤로 두어 달 사이에 두 번을 더 앓았다. 직접 밥을 해 먹을 형편이 못 되어 근처 식당을 전전하며 끼니를 때울 때마다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하더니 결국은 장이 탈이 나버린 모양이었다.

 근처의 식당들은 주로 학생 대상의 뷔페식 월식당이었고, 식당들끼리 경쟁도 치열한 까닭에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어, 주변에 사는 학생 대부분이 이용하곤 하였다. 나도 그 중의 한명이었고, 집보다 훨씬 다양했던 반찬들에 맛도 괜찮은 편이어서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렀었다. 하지만 분명 몸에 좋은 잡곡밥, 자취생들은 무조건 먹어둬야 한다는 고기, 각종 채소 반찬까지 과식하지 않으면서 골고루 잘 먹어줬는데 참 이상도 했다. 식사를 마치기만 하면 속이 개운하질 않아서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나의 운동 부족을 탓하며 괜히 동네 주변을 빙빙 돌아다녔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정말로 내 몸이 안 좋아졌었던 이유가 식당 음식 때문이었을까? 그 답은 지금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후로 식당을 자주 찾지 않게 되었고, 더불어 하나의 의심이 생겼다. 
 
 ‘식당에서의 한 끼 가격으로 내가 건강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그 당시 한 끼의 가격은 2000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식자재의 원산지나 상태, 음식의 조리 과정이나 첨가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 따윈 물론 없었다. 
 정말 질 좋고 싱싱한 재료로 충분히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이천 원에 팔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천 원이란 가격과 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재료의 질이든 뭐든 포기해야 될 것 같았고, 실제 구매에서 조리까지의 과정을 모르는 한 나는 더 이상 그 식당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시장의 논리는 냉혹하다.

 우리는 이천 원짜리 밥을 싸게 잘 먹었다고 생각하며 먹지만, 실제 그 밥의 가치는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치든 이천 원어치의 가치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격이 매겨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열 배인 이만 원짜리 밥은 믿을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싼 물건의 가치도, 비싼 물건의 가치도 제대로 믿을 수 없는 사회라니, 이건 일반적인 생산과 소비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심은 뒤에 식품첨가물과 유기농 제품에 대해 알아보면서도 계속 됐다.

 ‘과연 이 식품이 내가 원하는 안전한 식품이 맞을까?’
 ‘유기농 인증이라지만 그걸 일일이 어떻게 검사해? 괜히 돈만 비싸게 받는 거 아냐?’
 내가 고르는 물건의 가치에 대한 의심은 계속 되었다. 대형 마트의 친환경 제품을 사거나 유기농 전문 매장을 들러도 식품의 성분 표시는 읽었지만 생략된 성분도 있었고, 표기된 성분은 과연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농산물 같은 확인할 수 없는 상품은 어떻게 믿어야 할지…….

 그러다 일반 유기농 매장과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생협의 조합원이 되면서 윤리적 소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뜻을 제대로 알아듣기도 전에 왠지 내 고민과 맞닿아 있는 말인 것 같았다. 윤리적 소비로 인한 다른 영향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투명한 유통과정, 그러면서 책정된 물건의 가격, 조합비로 운영되는 물품의 안전성 심사 때문에 나는 내가 지불하는 물품의 가치에 대한 의심을 줄일 수 있었다. 단지 소비의 과정이 바뀌었을 뿐인데도 소비자와 생산자, 더 나아가 먼 국가의 사람들까지 서로 정당한 혜택을 보며 신뢰관계가 구축된다니 간단하면서도 꿈같은 이야기였다.

 윤리적 소비를 옛날에 들었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괜찮은 생각이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겐 배부르게 보이는 뜬구름 잡는 생각.
유기농 제품은 돈 많은 사람들이나 찾는 것이고, 제 3세계 노동자들은 불쌍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주기 위해 파는 공정무역 제품은 마트에 쌓여 있는 저렴한 제품보다 비싸서 괜히 손해를 보는듯한 기분도 들었다. 의도야 어쨌든 당장 내가 살 물건은 대형마트의 1+1 상품보다 비싸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고, 물건을 살 땐 좋은 물건을 믿고 사고 싶은 마음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 믿지 못할 상품을 내 어린 자식에게 먹이거나 쓸 수 있을까? 내 자식도 못 먹이는 음식을 나는 괜찮으리라 불신의 마음을 누르고 먹는 현실은 왠지 서글픈 느낌까지 든다. 
그런 의미에서 윤리적 소비란 궁극적으로 남보다도 나를 위한 소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엄청나게 저렴하지 않더라도, 만들어져 내게 오는 과정을 알 수 있어 내가 믿고 살 적정한 가격의 물건, 내가 팔더라도 내 노동의 가치가 헛되지 않을 가격을 받는 물건.  

 앞의 말처럼 안심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날이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올바른 유통과정이 확립되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우리는 윤리적 소비를 알리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를 위해 살고 싶은 소비자의 한 명으로서 마지막으로 늘 하고 싶던 질문을 던져 본다.



그 물건은 내가 지불할 정당한 과정과 가치를 지닌 물건인가요?

그것은 정말로 얼마인가요?

 


 

Posted by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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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새 옷 입는 날
(박은미
)


“내는 나중에 어른되서 돈 많이 벌면 새 옷 많이 사서 입을끼다.
결혼해서 우리 아기들 한테도 절대 헌 옷은 안줄끼다.
오로지 새 옷, 새 옷만 입힐끼다. 깨끗이 빤다고 그게 다 새 옷이가?
시장에서 돈 주고 사온 아무도 안 입은 옷이 새 옷이제!!”



 

어린 시절. 나의 작은 꿈은 단 하나 실컷 새 옷을 입어 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입성. 먹성은 채워 줄 수 있을만한 집안 형편이었거늘 엄마는 유독  새 옷 사주는 것에는 인색하셨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철없던 막내딸은 그토록 좋아하던 의상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 누구보다 먼저 새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자는 5남매의 오랜 설득에도, 5남매 다 이곳에서 먹여 키워내고 아버지와 40여년을 함께 하셨기에 차마 그 곳을 떠날 수 없다는 어머니의 고집은 완강하셨다. 오늘 고향집에 온 이유도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가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설득하기를 한 시간여, 진땀을 빼며 설득하는 막내딸이 안 돼 보이셨던지 한 달만 서울 생활을 해보고 결정을 내리겠다는 어머니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달이  적은 기간도 아닐뿐더러 아예 집으로 모셔오기 위해 짐을 몽땅 가져올 요량으로 친구에게 빌린 작은 승합차까지 타고 도착한 그 곳엔 예상외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 마당에 쌓아놓은 옷상자가 족히 다섯 개는 넘어 보였고, 큰 가방이 세 개나 놓여 있었다. 이젠 정말 서울로 올라 가시려나보다 하는 생각에 승합차에 짐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풀어 헤쳐 본 어머니의 짐은 ‘어머니의 짐’이 아니었다. 딱 보기에도 어린 아이의 것처럼 보이는 옷가지들이 다섯 개의 상자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오래된 디자인의 옷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관하셨는지 신기할 정도로 쾌쾌한 냄새 하나 없이 깨끗했고, 헤어진 곳 하나 없이 말끔했다.

“엄마, 이건 또 뭐꼬? 엄마 짐 싸갖고 오라켔지, 왜 이런 걸 갖고 왔노?”
“이거? 이게 내 짐이다, 이게 네 눈에는 그냥 쓰레기 같제? 이게 다 보물이다, 보물.
니는 어째 옷 만든다는 아가 이런 것도 모르노?”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상자 한편에 고이 모셔져 있던 재봉틀을 보고난 후에는 그냥 옷을 고치시려고 하시나보다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작업실로 들어오셔서는 컴퓨터를 좀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서울에 오셔서 혼자 계시다 보니 무료하셔서 그런가보다 하고 컴퓨터를 켜는 법부터 인터넷 사용 방법을 알려 드리고 있는데, 문득 ‘아름다운 가게’라는 곳을 들어보았냐고 물어보셨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회사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오며가며 보았노라고 말씀 드리니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셨다. 사실, ‘아름다운 가게’는 자주 보기는 했지만,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라 얼핏 기억에 스쳤던 외관을 보고는 ‘유기농 식품매장’, 혹은 ‘오가닉 의류 판매점’ 정도로 생각했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아름다운 가게는, ‘…낡거나 오래 된 물건을 사람들이 기증하면 아름다운가게는 다시 이 물건들을 되살려 시장으로 보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을 기증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증된 물건을 다시 사간다. 다시 말해 자원의 순환 운동을 꾀하는 시민운동이자 윤리적 소비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었다.
아름다운가게는 공식적으로도 부의 편중과 빈부격차에 대해 서로가 이해하고 나눔으로서 자원의 더 긴 순환과 유통을 핵심으로 삼는다 라는 취지의 기관으로 재활용과 자원 순환을 적극 권장하는 비영리 단체였다. 문득 어머니께서 왜 이런 곳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고, 어떻게 이런 곳을 아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여기는 뭐할라꼬 물어보노? 여기서 일할라꼬?”
“아름다운 가게가 서울에도 있는갑네, 내 마산에서 매일 여기 갔다 아이가,
 마산사는 할매들이 손주들 옷이며, 할매들 옷이며 갖고 오면 내가 다 그거 고쳐가꼬 여기 갖다줬다. 서울 와서 고쳐 논게 몇 벌 있는데 마산까지 가기는 그렇고 해서
혹시 서울에도 있나해서 물어봤다 아이가. 여가 참 유명한 곳인갑네.
옷 고쳐다 갖다 주면 깨끗하게 세탁해서 새 옷처럼 맹들어가꼬 판다 아이가.
그러면 그 돈으로 안 된 사람들도 도와주고, 무엇보다 아까운 옷 안 버리고
다시 재활용하면 얼마나 좋노.
깨끗하고 멀쩡한데 버리면 그게 다 죄다. 환경생각은 안하노?
 늬들이 다 써버리면 자식들은 뭘 쓰고 사노?
왜 만날 새 것 만들 생각만 하노? 환경도 자원도 사람도 축나는 건 생각 안하고…….”


 

그 날 이후로, 어머니와 나는 새 옷을 디자인해서 만드는 대신, 고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다음 날이면 산더미 같이 쌓여 버려지는 깨끗하고도 말끔한 옷들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깊은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막내딸은 그 누구보다 열렬한 어머니의 지지자가 되었다. 결국 환경과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임에도, 환경 위에서 마치 제 것인 냥 마구 써댔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나보다 못한 사회적 약자를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음을 후회하며 작업실의 천 한 조각, 단추 하나도 버리지 않고 우리 집의 은밀한 작업실로 챙겨오곤 한다. 작업실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하찮던 천 조각은 밤새 어머니의 마술 같은 손을 거쳐 그 무엇보다 깨끗하고 어여쁜 새 옷으로 탄생하곤 한다.

어렸을 적, 우리 아기들에게 절대 헌 옷을 입히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막내딸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조카들의 옷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태어날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우리 아기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새 옷을 입히기 위해서이다. 작고 귀여운 손과 발을 떠올리며 배넷 저고리를 세탁하고, 헤어진 끈에는 새 단추를 달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낸다. 아장아장 걸을 때 쯤 신을 보행기용 양말에는 고무를 붙이고, 구슬 소리를 내는 장난감은 깨끗이 소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나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도 아껴나가야 할 환경과 사람이다. 한정된 자연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이기에 우리가 아끼고 보호하는 만큼, 나누고 돌보는 만큼 그들에게 더욱 큰 선물이 될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도 우리 어머니의 재봉틀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언니와 오빠들이 물려준 막내딸의 옷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자의 옷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과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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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사람이 희망이다
(
이옥선)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속초에서 여중생들과 생활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연히 ‘윤리적 소비 활동 공모전’ 기사를 보고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던 활동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올해 1학기 동안 제가 했던 수업 중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내용이고, 지난 여름방학 교사 연수 기간 중 다른 선생님들에게 홍보하기도 하였습니다. 칭찬 받았답니다. 아주 많이.

 ‘아름다운 소비’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에 대해 어떤 수업과 활동을 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릴게요.
 어느 날 저의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조끼를 입고 있기에 호기심에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 말하기를 ‘그루’에서 구입했다고 하면서 아직 이런 것도 모르고 있느냐고 저를 놀렸지요. 당장 인터넷에 접속하여 ‘그루’를 방문해보니 놀랍고도 감동스러운 일들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2007년 서울에 문을 연 ‘페어트레이드 코리아 그루’라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은 바로 세상의 평화였습니다. 저도 그 평화에 동참하고 싶어 제 친구가 입고 왔던 바로 그 조끼를 구입하였지요.

저는 ‘도덕’ 교사입니다. 학생들의 도덕성을 길러주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도덕적인 것인지 학생들과 고민합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게 하되, 바른 방향으로, 바른 방법으로  실천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늘 연구하지요.

‘그루’에서 구입한 조끼를 입고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관심을 끄집어내었습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하늘에 닿는 10대 여학생들이어서인지 옷에 대한 감각과 열정이 대단합니다. ‘ 그 옷 가격이 얼마냐, 어디에서 샀느냐?’ 등등 아이들의 관심과 집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모든 궁금증을 한방에 날려주기 위해 저는 ‘그루’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얘들아, 오늘은 쇼핑이다. 재미있게 구경하자.” 수업 시간에 이런 저런 물건을 구경한다는 것 자체가 신나는 거죠. 애들은 신바람이 났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어린 얼굴은 조금씩 진지함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루에서 수입 판매하는 물건들을 공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 갈수록 왜 도덕 선생님이 이런 수업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겠노라는 표정이 되었습니다.

 


베트남의 마이 핸디크래프트, 네팔의 코튼 그래프트와 사나하스 타카라, 인도의 아시시 가먼트와 밀란 가먼츠, 방글라데시의 프로 크리티 등, ‘그루’에서 거래하는 발음도 생소한 단체들을 알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의 폭도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루’에서는 경제력이 없는 10대 아이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옷 이외에도 몇 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작은 물건들도 판매합니다.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던 것이 네팔 여성들이 천연염색한 천조각들을 이어서 직접 손으로 만든 동물 캐릭터 지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커피도 있었지요. 커피는 동티모르 커피 농가를 지원하는 ‘피스커피’(한국 YMCA에서 운영)를 ‘그루’에서도 판매하는 거랍니다.. 어린 아이들이 커피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주로 ‘저희 엄마가 커피를 좋아하시는데 이왕이면 공정무역 커피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피스커피peace coffee' 수업도 진행하였는데요, 미리 구입한 피스커피 머그를 수업 시간에 들고 들어가서 보여주었어요. 연분홍 뚜껑이 있고 머그에 무언가 잔뜩 영어로 쓰인 커피 잔을 보여주니까 아이들은 ’선생님 예뻐요. 그거 얼마예요?‘를 시작으로 이것저것 질문을 하더군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궁금증을 주고받을 사이 저는 ’피스커피‘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 아이들의 모든 궁금증을 한방에 날려 보냈습니다.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의 관계부터 현재 동티모르인들의 삶까지 설명하며 판매하는 커피와 잔을 보여주었지요. 아이들의 아름다운 구매욕구가 맹렬히 타오르더군요.

한번은 ‘위캔쿠키’ 수업을 하였습니다. 사회적 기업인 ‘위캔쿠키’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쿠키라는 단어만 꺼내도 동공이 확장되는 어린 아이들이다 보니 어떤 수업보다 열정적이었습니다. 홈페이지 접속하여 ‘위캔쿠키’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쿠키를 보여주면서  지적 장애인들의 자활을 위해 운영하는 이 회사에 대한 설명도 함께 하였습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쿠키보다 비싸긴 하지만 유기농에 좋은 재료로 만들고 무엇보다 장애인과 함께 한다는 것에 많은 아이들이 깊은 감동을 받는 눈치였습니다.
사실 이 모든 수업은 연계되어 진행되고요, 이런 수업을 위해 저는 확실히 준비를 해둡니다. 미리 물건을 구입해 두었다가 교실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면 몇 배의 전달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천하는 거지요.
중학교 2학년 아이들 대상으로 수업을 한 후, 이 물건을 구입하려는 아이들을 도와줄 도우미를 신청 받았습니다. ‘그루’ ‘피스커피’ ‘위캔쿠키’ 이렇게 나눠 신청을 받고 돈을 받고 도착한 물건을 다시 아이들에게 배달해 줄 도우미 말이지요. 몇 명의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루’물건 신청 도우미는 2학년 9반에서, ‘피스커피’와 ‘위캔쿠키’ 도우미는 2학년 5반 아이가 맡기로 한 후, 신청을 받았습니다. 물론 돈도 함께요. 그 다음에 저의 역할이 아주 컸답니다. 사실 저의 애정과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이들이 신청한 그 모든 물건을 하나씩 신청해야 하는 거죠. 특히 ‘위캔쿠키’ 신청할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복잡했지요. 쿠키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쿠키별로 구입량을 바르게 기재하지 않으면 결국 아이들이 난리 나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각 회사 물건 별로 신청을 하고 입금을 마치고 물건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물건이 도착했고 도우미 아이들을 불러 배달을 시켰습니다. 자기가 원했던 물건을 손에 받은 아이들의 기쁨은 단순한 웃음뿐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내가 세상의 평화에 조금은 기여했다는 뿌듯함이 녹아있는 기쁨이었지요. 이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소개할 수 있어서 흐뭇했고, 이 흐뭇함은 앞으로도 제가 학교에 있는 한 지속될 것입니다.

‘역시 사람이 희망이다’ 혼자 생각하면서 웃어봅니다.

Posted by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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