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길 위에서 길을 찾다
서울국제고등학교 2학년 오세현


커피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거의 매일 스타벅스 커피를 드시곤 한다. 초록색 로고의 커피 잔은 어머니에게 맛과 향과 분위기에 자존심까지 담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커피 잔이 어머니에게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어머니는 스타벅스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면서 당신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제3세계 원산지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매우 흡족해 하셨다. 요즘 한참 TV에서 이야기하던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어머니의 자존심보다 더 강한 매력으로 느껴지셨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공정무역 거래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그날 이후 나는 커피 판매이익이 원산지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돌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작은 액수가 그들에게 지급되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 스타벅스와 같은 다국적 기업이 내세우는 공정무역도 마찬가지였다. 다국적기업이 공정무역이라는 마크를 붙임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보다 매력적으로 어필하고 비싼 가격을 합리화 시켜 공정무역을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윤리적 소비란 개인의 소비가 사회의 이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나 개인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회 전체의 이익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정한 원칙과 거래를 중요시하는 공정무역 거래의 취지를 알게 되자 이를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활동의 중심을 공정무역으로 잡아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학교 동아리를 결성했다. '주체적 청소년 사회 운동 모임' 을 지향하는 Raindrops란 동아리가 그것이다.

큰 활동들에 앞서,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국제고등학교 300명의 학생과 길거리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공정무역에 대해 아예 모른다는 답변이 53%로 절반을 넘었고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해보지 않은 절대적인 이유가 공정무역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던 것이다.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농산물과 제품을 구입한다면 가난한 제3세계 농민들은 자립의 기회를 부여받게 되어 아이들을 일터에 보내지 않아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된다. 개개인의 소비가 그들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듯 개인적 측면에서 볼 때, 공정무역의 바람직한 시행에 있어 사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수행하는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공정무역에 대한 개인의 인식이 변화한다면 공정무역이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인권 보호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 확산이 절실함을 깨닫고 Raindrops는 첫 캠페인을 실시했다.

Raindrops의 1차 캠페인은 가장 대표적인 공정무역 제품인 커피 시음회를 여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숙학교인 까닭에 커피를 구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팀원 중에는 어차피 사람들이 알지도 못 할 테니 그냥 일반 커피로 대체하자고 한 친구도 있었다. 서운했다. 팀원들을 구성하고 캠페인을 기획한 나로서는 서운함을 넘어서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짐나 그것보다 더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희망소비 1차 캠페인'은 학교와 가까운 대학로 혜화역에서 이루어졌다. 피켓을 들고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커피 드셔보세요!’라고 외치며 직접 구입한 동티모르 커피를 무료로 시식하는 코너를 만들었는데 공정무역 제품이 맛과 품질 면에서 저급할 것이라는 통상적 오해를 떨치려는 의도에서였다. 커피시음, 브로셔 및 동티모르 커피 티백 배포, 설문조사 등이 캠페인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무료로 커피와 티백을 나눠주는데도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 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티켓을 들고 공허한 구호만을 외치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공정무역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동티모르 커피가 공정무역 제품이라는 홍보만 한 셈이었다. 나는 공정무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IR(Individaul Research)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의 제목은 '다국적기업이 제시한 노동자 인권문제의 해결 방안, 공정무역' 으로 공정무역의 의의와 실태 및 한계점, 또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연구를 하다 보니 공정무역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단지 공정무역 제품을 홍보하는 차원의 캠페인이 아닌 구호에서 벗어나 왜 이러한 소비를 해야 하는지 또 현재 어떤 구조 안에서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6개월 동안 연구를 계속하기로 하고 인사동에서의 제 2차 희망소비 캠페인을 준비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전하고 설득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공정무역 초콜릿과 브로셔를 나누어주었다. 열심히 설명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와의 연합으로 보다 성의 있어진 캠페인 도구들도 한 몫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한 것은 그날의 날씨였다.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며 활동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격려와 칭찬을 해줬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또 외국인들의 경우 우리보다 더 공정무역에 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있어서 우리와 토론을 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여러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캠페인에서 보람을 느낀 후에는 팀원들이 더욱 적극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아리 신문을 제작해서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나누어 드렸다. 밤을 새우며 오타를 고치고 사진을 선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작은 움직임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다.

최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현재의 세계화는 승자독식의 사회이며 이러한 전제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를 유인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리더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책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하지만 그 책보다 더 내게 감명과 깨달음을 준 것은 '희망소비 캠페인'이다. 나는 직접 부딪치고 실패하고 땀 흘리고 소통하며 터득했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승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동안 세계화 시대에서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만을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균형 잡힌 세계를 만드는 리더가 되고 싶다. 그것이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리더의 요건이라 생각한다. 내가 '희망소비 캠페인'을 통해 가난한 나라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가장 큰 꿈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이제 첫 걸음을 시작하려 한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사회적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