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고등학교 1학년의 뜻 깊은 소풍.
최현정

나는 목포에 있는 영흥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우리 학교에는 반별로 테마를 정해서 가을소풍을 가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작은 도시인 목포엔 별다른 여가 시설이 없다 보니 반별로 특별한 추억을 쌓으라는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거의 모든 반이 비슷한 장소에서 시간만 때우다 헤어지는 의미 없는 날로 전락하게 되었다.

우리 반도 그저 그런 계획을 세우며 학급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이번 소풍을 뜻깊게 보내고 싶지 않니?”라고 물어보셨다. 우리들은 당연히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그럼 이번 소풍은 나한테 맡겨라. 너희들은 삼겹살을 같이 구워 먹을 수 있게 6명씩 조 짜고 학급비 만 원씩 걷어”라고 말씀하고 나가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황당했다. 그래도 우리 반은 선생님을 믿었고, 선생님이 전수해주신 특별한 요령으로 단합대회를 여러 차례 가지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 소풍에도 반 단합대회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풍 당일, 우리 반은 모두 체육복에 반티를 입고 교문 앞에 모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큰 버스를 타고 오셔서는 “얘들아, 얼른 타! 늦었어!”라고 소리치셨다. 우린 영문도 모른 채 그 버스에 탔다. 그리고 혹시 팔려 가는 거 아니냐는 둥의 여러 추측을 하며 버스 안에서 떠들었다. 얼마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느 복지관이었다.

그곳에서는 직업훈련을 통해 생산활동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장애인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몸이 덜 불편한 분들은 제빵사가 되어 빵을 만들고, 다른 팀은 재생 비누를 만들고, 복잡한 일을 하는 것이 어려운 팀은 병원에서 쓰는 피스톤을 조립하거나 종이가방을 접고 붙여서 끈을 묶는 일, 또는 양파망에 노끈 끼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든 물품을 납품해서 소정의 월급도 받는다고 했다.

먼저 우리는 복지관 선생님의 통솔 아래 각 작업장을 참관했다. 작업장은 깔끔했는데, 특히 비누를 굳히고 모양을 만드는 틀까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장애인들이 물건을 만들면 품질이 떨어지고 깨끗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놀라웠던 참관이 끝나고 선생님은 우리에게도 일을 배분해주셨는데, 나는 종이가방 만드는 공정 중 가장 마지막인 공정인 가방 끈 묶는 일을 하기로 했다. 장애인 분들에게 방법을 배우고 그분들과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나는 비장애인이고 머리와 손의 협응력도 좋고 손도 더 유연하니까 오늘 많이 도와드려서 이번 달 월급을 조금이라도 늘려드리고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장애인 분들이 나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예쁘게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곤 나를 혼내시는데,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장애인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 딱딱한 끈으로 저렇게 깔끔한 매듭을 만들 수 있을까?’ 놀라울 뿐이었다.

끈이 너무 뻣뻣해서 내 손은 벌써 빨갛게 부어올라 더 이상 일을 못하겠는데 그분들은 꼼짝 않고 앉아서 일을 하고 계셨다. 나중에 복지관 선생님께 물어보니 이분들은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한번 몰입하면 비장애인보다 더 열심히 해내신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신 분이며, 그중엔 서울대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날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신 분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 작업을 마친 우리 반 학생들은 복지관의 외딴 건물로 자리를 옮겨 삼겹살 파티를 즐겼다. 그리고 함께 일했던 장애인 분들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앞에 모였는데,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삼겹살 먹는다고 걷은 학급비 중에 남은 것을 이곳에 기부하는 게 어떻겠니? 작은 보탬의 손길이 복지관에 큰 도움이 될 거다.”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고, 그 자리에서 학급비를 복지관에 기부했다.
 
담임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고기를 넉넉하게 사 왔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뿐만 아니라 복지관 가족들도 삼겹살을 맛있게 드셨을 거다. 그리고 우리 반 친구들이 여기서 일하면서 느낀 게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장애인에 대해, 장애인이 만든 제품에 대해 여러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이미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했기 때문이다. 혹시 여기서 만든 제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내가 이미 사용하고 있으니 나한테 이야기하도록. 오늘은 모두 피곤하니까 여기서 종례하고, 버스에서 내려서는 자유롭게 집으로 가는 것으로 한다. 오늘 종례 끝!”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난 생각해보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그들이 만든 제품에 대해. 비누 하나를 사더라도 대기업에서 만든 것만 품질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이번 소풍은 이런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참된 소비는, 윤리적인 소비는 ‘생산을 배려하는 소비’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생산을 배려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여러 장애인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로 돌아올 때 우리는 진정으로 만인을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장애인들을 절망에서 꺼내고, 다시 그들의 생산 활동이 우리의 건전한 소비를 일깨우는 것이다. 나는 소비를 통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차별받는 계층의 소외감을 덜어주는 것이 윤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재생 비누는 장애인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의 제품을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동안 가졌던 편견을 버리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집도 장애인들이 만든 비누로 빨래를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참되고 윤리적인 소비로 소비자도 생산자도 모두 웃는 소비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윤리적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