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룡 서울은퇴자협동조합장(사진 출처:www.myencore.co.kr)

지난 3월, 서울은퇴자협동조합(www.myencore.co.kr)의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된 우재룡 이사장(52)은 국내 최고의 은퇴설계 전문가이자 금융 전문가로 꼽힙니다.
 
그는 <펀드 투자 무작정 따라 하기>, <행복한 노후설계 무작정 따라 하기>, <당당한 노후, 펀드 투자와 동행하라>의 저자입니다.
 
또 은퇴 설계 분야에선 국내 대표 주자 중 한 명입니다. 2000년대엔 금융 기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인터뷰를 했을 만치 성공한 금융전문가이기도 하죠.
 
대한투자신탁 경제연구소를 거쳐 1999년 그가 설립한 한국펀드평가는 적립식 펀드 열풍이 일던 2000년대 중반, 한국 펀드 평가 시장의 90%까지 얻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그 일(은퇴설계)을 하면서 얼마나 상처 받았는데요.
더 이상 노후를 돈으로만 설계하지는 않을 겁니다.”

은퇴설계 전문가가 은퇴설계를 하면서 상처를 받았다니?
금융전문가가 더 이상 돈으로만 노후를 설계하지는 않겠다니?
 
무엇이 30여년 경력 금융전문가를 달라지게 한 걸까요?
 
그를 바꾼 건 ‘현장’이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한국펀드평가를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시키고 동양증권 자산관리연구소장을 거쳐 삼성생명은퇴연구소장으로 갔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국내 대부분 금융사에서 일하는 금융전문가들이 그렇듯, 상담하러 온 사람들에게 그 역시 이러한 해법을 내놨습니다.
 
‘월 200만~300만 원 정도 쓰며 평소의 삶을 유지하려면 은퇴자금으로 5억 원은 모아라.
월 300만~400만 원 정도 쓰며 풍요롭게 살려면 10억 원은 모아라.’
 
그런데 일부 고객들이 반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에 그렇게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몇%나 되냐, 우리는 소득 자체가 월 200만~300만 원도 되지 않는다”고.
 
어떤 이는 “우리는 중산층인데도 지금 아이들 교육시키고 결혼시킬 돈 마련하기에도 벅차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럴 때, 그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자녀한테 지출하지 마시라, 자식한테 올인 하지 마시라.’
 
“그런 말 하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물론, 자식한테 지나친 기대를 거는 건 좋지 않죠. 그건 관계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노후자금 마련하겠다고 자식한테 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게 맞는 선택일까요? 가족은 행복의 원천이잖아요?”
 
어느 날 어떤 고객이 노골적으로 물었습니다.
어떤 고객은 노골적으로  ”그거 공포 마케팅 아니냐”고.
 
”결국 제가 불어버렸지요. 그거 공포 마케팅 맞다, 금융기관이 마케팅용으로 개발한 말이 맞다고요.”
 
30년 이상 금융사에 근무한 전문가로선 쉽지 않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금융사, 아니 그 자신이 만든 가설부터 꼼꼼히 되짚었습니다.
노후자금을 늘리는 요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부부 두 사람만의 힘으로 은퇴 후 필요자금을 전부 마련하라’는 전제가 문제였습니다.
 
“이런 전제로 금융기관이 설계하면 노후비용이 비싸게 들 수밖에 없어요. 20~30년 간 일하지 않는 기간의 생활비, 거동 불편해진 후 간병비까지 부부 두 사람만의 힘으로 마련하려면 펀드·연금·보험에 잔뜩 가입해야 하죠. 은퇴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 치매 지옥, 간병 지옥, 고독사로 비참해진다는 공포가 여기서 나옵니다.”
 
그는 전제를 바꿔봤습니다.
‘노후를 혼자 설계하는 대신 여럿이 함께 설계하기. 은퇴 후 일을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찾기.’
 
“그러면 노후비용은 싸지고 행복감은 높일 수 있어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 케어(老老-care), 간병 크레딧이 한 예에요.”
 
간병이 필요할 때 요양원에 들어가 간병인을 고용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필요자금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간병이 필요한 노인을 60~70대 노인이 돌보고 ‘크레딧’ 즉 신용을 쌓은 후 그것으로 자신이 거동하기 어려워졌을 때 간병 받게 하면 돈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대신 노인 간 왕래는 늘어납니다.
 
노인 공동체는 은퇴 후 소외감을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는 “금융사 광고를 보면 부부가 소일거리 하면서 골프를 치는 걸 멋진 노후처럼 묘사하면서 노후자금을 마련해 즐기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여럿이 같이 사는 삶에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재무적인 걸 강조하던 사람이 공동체를 말하니까 이상하죠? 근데 재무상태가 좋든 나쁘든, 소외감은 혼자 극복하기가 어려워요. 노인한테도 공동체가 필요해요.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와야 행복해집니다.“
 
‘아파트’는 베이비부머한테 노후자산이자 애물단지입니다.
현재 베이비부머 세대의 보유 자산 중 80%가 집에 묶여 있습니다.
 
“이걸 젊은이들이 알아채면서 주택 과소비 시대가 끝나고 있어요. 집을 자산증식이 아니라 삶의 한 방편으로 보기 시작한 거죠. 베이비부머가 보유한 집은 팔릴 가능성이 적어요. 한국의 많은 베이비부머들이 집을 팔아 노후자금을 마련하려 하는데 앞으로 집을 팔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지역, 자신의 집에서 어떻게 노후를 꾸려갈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이런 대안을 제시합니다.
지역의 비영리단체와 함께 ‘보이지 않는 실버타운’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인 돌봄 비용은 줄이고 청년 일자리는 늘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미국에선 특정지역 노인인구 비중이 20~30%를 넘어서면 비영리단체가 NORC(natually Occuring Retirement Community) 즉 ‘자연 발생적 은퇴 공동체’를 구성해 실버타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노인이 자기 집에서 비상전화, 이동 지원 같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비용은 요양원이나 실버타운보다 쌉니다.
 
그는 은퇴자협동조합을 통해 이런 대안을 하나 둘 실현하고자 합니다.
우선은 은퇴자를 위한 ▲재무 설계와 주거계획 등 생애설계(Life planning) ▲창업이나 재취업 알선 등 앙코르 프로그램 ▲은퇴생활을 위한 금융상품 및 여행·의료·간병서비스 등 공동 구매 활동을 벌일 예정입니다.
 
문득 은퇴자협동조합의 조합장은 은퇴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대답에 반전이 있습니다.
 
“더 이상 은퇴하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노후를 돈으로 설계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조기은퇴하면서 사회에선 더 이상 은퇴하진 않겠다고, 회사에선 물러나도 삶에선 물러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기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고용되는 삶을 살려고요. 전문가로서 보람 느끼며 살고 싶어요.  저는 원래 굉장히 가난했던 사람이에요. 무일푼으로 세상에 공급되어 지금 이렇게 많은 걸  가졌으니 이젠 전문가로서 남을 위해 살아도 된다고 봅니다. ”
 
‘돈을 더 벌기 보다는 나 자신의 삶을 살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는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고학으로 마치고 상경해 자력으로 연세대 경영학 석사까지 공부했습니다.
박사 공부는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지원으로 마쳤습니다.
 
“생각이 바뀌면서 노후를 돈으로 설계하지 않게 됐어요. 내가 가진 재산을 사회활동에 쓰고 열심히 강연하면서 집필하고 조합활동도 하면 분명히 비참하게 가난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돈? 떨어지면 거기 맞춰서 살죠. 이거 와이프한테는 비밀인데. 하하.”
 
혹시 병 걸리면? 
 
”3년 연하 아내와 사이가 좋으니까 아내가 잘 케어해줄 것이라고 믿어요. 아내는 자식들과 관계가 좋으니까 제가 혹시 먼저 죽으면 자녀가 잘 돌볼 겁니다. 부모를 돌보는 것, 그건 아이들한테도 보람일 거예요. 사람이 삶에서 보람을 느끼는 게 실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서로 돌보고 사는 게 그게 보람이죠.”

이경숙 이로운넷 공동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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