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청소년부문 수상작

윤리적 소비 자유분야 수기 부문

내가 공부하는 이유
(유형석
)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최신형 전자제품이다’

이것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 공부도 잘하는 이른바 모범학생이었던 나의 과거 인생 모토였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목표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늘 그랬듯 열심히 공부하였고 결국 합격의 결과를 얻었다. 당연히 부모님께서는 대견해 하셨고, 나는 당당히 새로운 휴대전화를 요구하였다. 이런 식의 포상으로 거침없이 바꿔 나간 휴대전화가 벌써 세 번째였다. 날마다 업 그레이드 된 휴대전화뿐만이 아니라 최신형 전자사전, 노트북, 시계, MP3 등 내가 공부를 해야만 하는 매력적인 이유들이 끊임없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능한 모든 전자 제품들을 최신 것으로 교체하고 한껏 들뜬 어느 날, 나는 우연히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아프리카 어린 아이들이 손에 허술한 꼬챙이 같은 것을 하나씩 들고 모래벌판에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주변 곳곳에 검은 불길이 보였고 카메라에 비춰진 쓰레기들은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 등 모두 전자제품들이었다. 약국에 슈퍼마켓에 흔하게 널려있는 마스크나 장갑조차도 착용하지 않고 마땅히 교실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검은 연기 속을 헤집고 있었다. 마치 내가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서 곤충채집을 하는 모습처럼 그렇게 평화로운 얼굴들이었다.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대형제품은 물론 각종 디지털 멀티미디어 같은 소형 제품 등이 더 이상 쓸모없게 되면 이른바 ‘전자쓰레기(e-Waste)’ 가 된다고 한다. 2007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해마다 5천만 톤에 이르는 전자쓰레기가 발생하고 이 중 선진국 70%에서 배출하는 전자쓰레기가 ‘재활용’, ‘자선 기부’라는 명목 아래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재활용하는 과정은 마스크나 장갑과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자기 판을 연탄불로 구워 부품을 떼 내고 전선피복을 불에 그으려 구리를 얻는 등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불법으로 버려진 전자쓰레기들을 마지막으로 파헤치던 아프리카 아이들의 눈동자들은 그저 해맑았다. 그들을 무심히 바라보던 나를 쳐다보시던 어머님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던 그날의 내 모습, 솔직히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실체였다. 그 때까지는 한 번도 나의 과소비가 저 먼 곳의 땅을 오염시키고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몸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선진국들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찾아 읽어 보았다. 언제부터인지 전자제품의 사용기간이 급격히 짧아졌다. 이것은 쓸 수 없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좋고 세련된 신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제품을 과감히 버리는 소비자와 무한경쟁 속에서 디자인 면에서든 기능 면에서든 어떻게든 신제품을 먼저 출시해 시장을 장악하려는 생산자의 공동 노력 때문일 것이다. 전자제품은 신제품을 사는 순간 버려지고, 버려지는 순간 폐기물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연간 휴대전화를 약 1600만 대 생산하지만 그 중 수거 돼 재활용되는 휴대전화는 500만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늘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교육받고 공부하여 이를 주제로 한 각종 경시대회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상을 타내고 부상으로 부모님께 신제품을 얻어냈던 지난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 때 새로운 휴대전화를 받고 이전의 휴대전화를 어디에, 어떻게 버렸는지 아무 기억도 해 낼 수가 없다. 현재 내 손에 들어온 신제품만 눈에 보일 뿐, 어제까지 내가 사용하던 제품은 이미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휴대전화는 각종 중금속과 희귀 자원을 포함하고 있어 일반 쓰레기와 함께 매립하거나 소각하면 환경오염은 물론 중요한 자원도 잃게 된다는 사실은 내게는 그저 경시대회 상을 목표로 시사 공부하려고 읽었던 신문 기사 안에만 머물러 있는 ‘글자’였을 뿐이다.

우리학교는 기숙사 학교라 전교생이 일상생활을 같이 하다 보니 친구 간에 서로 많은 일들을 나누게 된다. 강원도 산 중턱에 집이 있다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진욱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새 참고서를 사본 적이 없고 휴대전화, 컴퓨터 등의 전자제품을 사본 적도 없다고 한다. 내가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전자제품 없이도 이렇게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면서도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까지 경쟁하듯 휴대전화를 바꿔 나갔던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이 내 주변의 전부라고 믿었기에 늘 나도 아무 망설임 없이 신제품들을 소비해 왔는데 진욱이와 학교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늘 ‘더 좋은 것, 더 새 것’을 외치며 누려왔던 물질적 풍요로움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도 있고 결국 나 자신에게도 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글이 아니라 현실로 만나게 된 느낌이다.

이 세상 사람들을 ‘오염을 만드는 나쁜 소비자’와 ‘오염을 줄이는 착한 소비자’로 나눈다면 검은 연기의 쓰레기더미 속을 너무도 능숙하게 오가는 아프리카 소년들과 부족한 환경에서 하나하나씩 해야 할 일들을 느리지만 자립적으로 해결해 가는 진욱이... 나는 이들과 함께 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들을 하면서도 나는 솔직히 넘쳐나는 멋진 신제품들을 모두 외면하고 구형 제품만을 고집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당장 쓰레기의 재활용, 재사용을 위한 과학적인 전문 연구를 해 낼 수도 없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이제부터라도 세상을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를 나 자신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시작해 보고자 결심했다. 우선, 반드시 필요할 때 구매하고, 꼭 버려야 할 때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폐기하는 일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보았다. 그동안 가나의 13살 소년에게 내 용돈을 나누어 후원금을 보내면서 세상을 위해서 너무도 쉽고 간단한 실천만을 해왔던 것 같아 새삼 창피했다. 아마 그 돈은 지금까지 내가 버린 물건들의 처리비용으로도 모자랐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윤리적 생산’ 역시 윤리적 소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므로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일지라도 자원의 낭비를 방지하고 환경을 보호해아 하는 의무에서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신제품인증제’ 같은 제도를 만들어서 신제품으로 인증되기 위한 디자인과 기능 개선의 기준을 마련해 남발을 막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최신형 전자제품들을 얻기 위해서 공부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최신형 전자제품들을 올바르게 생산하고 소비하며 안전하게 폐기하는 방법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공부할 것이다. 우리가 구매할 때 지불하는 금액만으로는 소비에 대한 책임을 다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내가 구매한 물건들이 안전하게 폐기 될 때까지 나의 소비행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버릴 수 있을 때 올바르게 버리는 책임감 있는 소비행위’ 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을 지키고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하는 윤리적 소비의 작은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

Posted by 사회적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