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에서 생명을 보다

2011.06.14 10:24 사회적경제 사례 | posted by 사회적경제

착한 소비에서 생명을 보다 - 이임순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퇴근해 들어온 남편이 청소기와 씨름중이다. 청소기 흡입구 연결부위가 부러져도, 코드가 계속 안으로 감겨들어가도, 전원버튼이 오락가락해도 아픈 몸을 이끌고 우리집 구석구석을 챙기던 청소기가 드디어 멈춰버리자 한달전 이웃에서 “서비스센타에 문의해서 흡입구만 사다 끼워 쓰면 될거야”하고 갖다 준 청소기다. 서비스센터에선 이미 단종된 제품인지라 입을 잃어버린 청소기가 집안을 그런대로 한 번씩 두런거리며 다니더니 남편이 어디선가 버려진 흡입구를 주워와서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를 두고 친정어머니는 당신께 드리는 용돈을 마다하신다. 그 마다하시는 손을 다시 밀어넣으며 난 말한다.

“엄마, 돈 때문이 아니야. 이건 우리가 그냥 사는 방법일 뿐이야.”
 
나도 사람들과 똑같은 꿈을 꾸었었다. 반듯한 집에 살고 싶었고, 좋은 차 한 대 끌고 싶었고, 좋은 옷 입고 그렇게 편안히 살고 싶었다. 그러던 팔년전 어느날이었던가? 아이 책을 한 권 사려고 나갔다가 친구를 통해 만나게 되었던 책.  <조화로운 삶>와 <오래된 미래>.

몇 개월을 앓았다. 그건 내게 익숙해져 있었고 또한 내가 믿었던 내 삶의 방향에 대한 혼돈이었다. 그러나 그 몇 개월의 혼란을 통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더욱 더 내 자신과의 견고한 약속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새로이 써 나가는 내 삶의 일기였고, 한 문장 한 문장 써 나갈때마다 숨고르기하는 내 삶의 따옴표였다.

먼저 식생활이 바뀌었다. 간간이 이용하던 생협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받은 물품 안에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식생활을 조절해 나갔다. 생협을 이용하다 보니 내 고향의 농사를 짓는 이들의 현실도 다가왔다. 매상해서 농협빚 갚고 남은 돈 이만 팔천원을 놓고 밥상 앞에서 눈물로 밥을 말아 먹었다던 뒷집아저씨 이야기조차도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현실, 노인들의 마지막 힘으로 버티고 있는 땅이 되어 버린 현실이 보였다.

이러한 현실은 내게 믿을 만한 곡물들을 이웃들에게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부여하였다. 생명운동을 하는 땅에 터 잡은 이들도 중요했지만, 난 이것이 성실하게 농사를 짓는 모든 이들의 보편적 운동이 될 수 있기를 바랐고, 그들이 수확한 작물들을 조금이나마 더 정직한 값을 받을 수 있어야 그 땅에 대한 실낱같은 믿음이나마 지켜나갈 수 있다고, 그 실낱같은 희망이 지속가능한 농업의 씨앗들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교회를 통해, 학교를 통해 감자며 옥수수, 고구마, 쌀, 옥수수,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등을 함께 나눴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은 유난히도 번거로웠다. 아파트를 돌며 소주병들을 주워 모아다 씻고, 뜨거운 물에 소독하고, 기름을 담으려니 곡물에 비해 몇 번의 손이 더 가곤 했다. 나 또한 젓갈이나 과일, 비누 같은 것들을 누군가로부터 나누어 받았다. 물론 이것은 이러한 소통이 가능했던 작은 교회와 작은 학교, 그리고 손에 닿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교회에서의 ‘착한 소비’운동은 소박하지만 이렇게 이루어진다.


우리 교회 입구에는 정수기 옆으로 공정무역 커피와 여러 종류의 차들이 놓여있다. 원래 커피는 시중 슈퍼에서 만날 수 있는 일회용 커피였다. 그러던 것이 한 사람의 의견이 모두의 의견으로 모아져 쉽게 공정무역 커피로 바뀌어진 이래 계속 유지해오고 있는 중이다. 또한 교우들이나 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온 활동가들을 통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만든 수공예품들을 한번씩 만나기도 하는데, 이 수익금은 그곳의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다.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먹거리 운동이다. 좋은 재료를 이용해 만든 밑반찬이나 젓갈, 된장 등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저소득 방과후에 지원하기도 하고, 시골에서 방목으로 키워진 닭에서 얻은 달걀을 매주 택배로 받아 교인들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이것은 시골 공동체 살림에 정규 수입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운증후군과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돌보는 화천의 한 공동체를 위해 벌꿀이나 산나물 같은 물품들의 판매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여러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한다. 반찬을 하는 사람, 물품을 주문해서 받는 사람, 파는 사람, 돈을 관리하는 사람, 물품 배달을 하는 사람. 하지만 이러한 번거로움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다독여지고 극복되는 것이었다.
   
현재 나는 99년에 가입했던 민우회를 시작으로 한살림, 한국생협, 팔당생협에 가입되어 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살림이 있어 이곳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요즘은 일을 하는 내 형편에 맞춰 물품배달 받는 것이 편리한 한국생협을 주로 이용한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되는 내에서 하남에 있는 팔당생협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살림이나 한국생협을 이용하는 데 있어 모자람이 없음에도 팔당생협을 이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팔당생협의 기틀이 더 약하기 때문에, 작으나마  이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하고, 이러한 힘들이 다시 제2, 제3의 생협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소비’를 절약과 구분한다. 절약은 아끼는 것에 대한 의미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면 ‘착한 소비’는 관계성에 대한 의미가 강하게 드러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착한 소비’를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한다. ‘착한 소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명성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 사이의 생명성, 그리고 내 자신과의 생명성과 닿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얻는 것들이 자본의 가치로만 환산되는 ‘값’이기 이전에 내 손에 닿는 하나하나에 숨쉬는 ‘생명성’까지를 포괄할 때 우리가 귀 기울일 수 삶은 우리의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삶의 방식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착한 소비’가 나누어 함께하는 소비 차원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 까지를 견지하는 것이 되기를 바라며.

Posted by 사회적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