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참 다행이다. 윤리적 소비가 있어서
(김연희)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다. 그래서 여기 저기 발품 팔면서 가격, 품질 비교하며 똑똑하게 쇼핑하는 위인이 못 된다. 종류가 많은 것도, 많은 옵션도 반갑지 않다. 따져보기 머리 아프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가장 가까운 곳,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쇼핑을 하는 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제대로 된 살림을 시작했다. 육아만 해도 버겁다보니 안 그래도 좋아하지 않았던 쇼핑은 더 귀찮은 일이 됐다. 그렇지만 아기에 관한 예전처럼 대충 쇼핑할 수가 없었다. 특히 친구의 아이들이 아토피에 고생하는 걸 보니 따질 건 따지고 고를 건 골라야했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만큼은 좋은 걸로 해주고 싶었다. 지인이 생협 이용을 추천해줬다. 아...생협! 생협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출자금을 내야하고, 조합비를 내야하는 등 절차도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드는 것 같아 포기했었다. 그런데 아기 때문에 생협 회원이 되고나니 인생이 달라졌다. 몰랐으면 어쩔 뻔 했니...
내가 생협회원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건 알겠는데, 비싸지 않냐고들 한다. 대단한 오해다. 오직 가격으로만 승부를 거는 대기업 마트와 단순 비교한다면, 비싸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협 회원으로서 얻는 가치를 생각하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한번 따져보자.
첫 번째, 나는 물건을 사기보다 신뢰를 산다. 요즘 같은 세상에 신뢰를 산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생협은 그게 가능하다. 서로 신뢰를 기반으로 안전한 물건을 생산하고 공급받는다. 생산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구조는 신뢰를 뒷받침한다. 나는 물건을 공급받을 때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지 꽤 자세한 정보를 함께 얻는다. 더 나아가 생산지를 직접 방문하고, 생산자와 직접 대화할 기회도 있다. 필요하면 개선의견이나 불만 사항을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1차 생산자와도 가능하다. 최근 배추파동처럼 천재지변이나 기후 이상으로 문제가 생겨 공급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생산지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물품부족이나 결품에 대해서도 양해가 가능하다.
두 번째, 나는 그냥 먹기보다 건강을 먹는다. 생협의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면 제철 음식을 뿌리부터 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마크로비오틱 밥상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모든 과일과 채소는 껍질에 많은 영양분이 있다. 그런 걸 알지만, 그렇게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농약이나 화학첨가물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우리집은 고구마와 감자는 껍질째 먹고, 포도껍질와 씨를 꼭꼭 씹어서 먹는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일물전체(一物全體)’, ‘자연생활(自然生活)’, ‘음양조화(陰陽調和)’ 이 아름다운 말들이 실제로 모두 가능해지고, 그야말로 밥이 보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진 ] 포도 통째로 먹는 법(출처:http://ecoblog.tistory.com/201)
세 번째, 나는 환경단체가 아니라 생활에서 환경적 삶을 추구한다. 통째로 먹기 때문에 조리 과정에서 일단 음식물 쓰레기를 현격히 줄일 수 있다. 그리고 흔히 못 먹고 버리는 경우도 줄어든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대형 마트에서 싸다고 많이 사와도 제대로 다 먹는 사람 거의 못 봤다. 열의 아홉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다 못 먹고 버리게 된다. 이는 재료에 대한 소중함이 없기 때문이다. 생협을 이용하게 되면 이런 일이 거의 없다. 적정량만 구입해서 알뜰하게 먹는다. 그 밖에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집으로 공급받기 때문에 비닐봉지 등을 사용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고, 재사용이 가능한 병 등은 다시 회수해가니 저절로 환경적 삶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유기농법이 우리 건강 뿐만 아니라 우리 땅을, 그리고 환경을 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 번째, 나는 명품백이 아니라 윤리적 소비를 통해서 자부심을 누린다. 언젠가 손님이 와서 커피를 내왔는데 설탕을 달라고 했다. 저희집은 설탕은 없고, 마스코바도는 있어요. 마스코바도요? 마스코바도는 기존의 설탕과 달리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것으로...하면서 일부러 설명을 한다. 따로 홍보할 필요 없이 사람들이 모였을 때 자연스럽게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공정무역 물건 구입이나 생협 가입을 권유한다. 일부러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식구 수대로 형광표백을 하지 않아서 누리끼리한 티셔츠를 입고 가거나, 천 기저귀 채우고 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요즘 많이 듣는 소리가 아기 피부 좋다는 거다. 아토피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의 비결을 물을 때 생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뿌듯하다. 최근에 중국산 말고 담양 죽부인 장인이 만든 죽부인이나, 플라스틱 도마가 아닌 옻칠공예 장인이 만든 도마를 살 때는 제대로 만든 물건을 사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를 지키고 보전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사진 ] 담양 죽부인 장인이 만든 죽부인
마지막으로 나에게 가장 크나큰 혜택은 삶이 한결 단순하고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난 복잡한 게 싫다. 근데 생협을 비롯한 공정무역, 사회적기업 물품 때문에 쇼핑이 말할 수 없이 편하다. 대기업 마트간의 도가 넘은 가격경쟁에 놀아나지 않아도 되고, 중소상인을 괴롭히는 불썽 사나운 자본주의 행패에 힘겨워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식품첨가물 소동이나 최근 배추대란 소동에도 꿈쩍없다. 배추값이 폭등하는 동안에도 생협의 배추가격은 그대로였다. 수많은 커피 중에 공정무역 커피 마시면 되고, 선물할 때도 사회적기업이 생산한 착한 물건으로 하면 그만이다. 아기 먹거리도 생협에서 안전하게 해결되고, 요모조모 따져봐야할 아기용품도 생협에서 해결된다. 쇼핑이 간단, 명료하니 한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이렇게 크나큰 혜택을 누리고 가만 있을 수 없다. 나만 좋으면 무슨 재민가? 같이 좋아야지. 윤리적 소비, 공정여행, 사회적기업 이나 환경문제, 텃밭농사 등으로 관심을 확대하여 에코블로그(http://ecoblog.tistory.com)를 시작했다. 에코블로그를 통해서 나와 내 가족 뿐만 아니라 이웃과 지구를 살리는 생활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다.
[사진 ] 윤리적 소비 삶을 담은 에코블로그
[사진 ] 텃밭에서
처음에 의도는 내 새끼 좋은 거 먹이겠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선택이 나 뿐만 아니라 농부, 이웃,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이타적 삶을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의 소비가 돈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치에 의한 것이어서 너무 다행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고등학교 때 윤리가 고리타분하고 외울 게 많아서 참 싫어했는데, 이제라도 자연과 인간의 삶의 질서와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윤리적 소비를 하면서 참 다행이다.
윤리적 소비는 친환경적으로 살고 싶은가, 윤리적 소비를 하면 된다. 더불어 잘 살고 싶은가? 윤리적 소비가 시작이다.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고? 윤리적 소비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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