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동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선택하고 거부할 수 있는 힘
(김이경)
지난 2009년, 윤리적 소비 공모에 ‘가난뱅이들이 먹고 즐기는 윤리적 축제의 현장’이라는 수기를 썼다. 그 때 학교 공부보다 더 열심히 공정무역 운동에 참여하고 사회적 기업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관심을 갖던 친구들이 자신의 삶에서 소비 생활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1년이 지났지만 가난뱅이들은 풍족하지 못하다. 어려운 살림에 무리를 했다. 옥탑방에서 방 2칸짜리로 이사를 했고, 매달 내는 월세가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랐다. 그래도 넓어진 집의 크기만큼 함께 꿈을 꾸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대부분이 계약직이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학생의 신분이지만 푼돈을 모아 공간을 꾸려나가고 있다.
‘대형마트가 아닌 흑석동 시장에서 장보기’, ‘공정무역 커피 푼 돈 모아 구입하기’에서 나아가 흑석동 친구들은 ‘소비자 선언’을 외쳤다. 이른바 가난뱅이들이 외치는 新소비자 선언. 이는 “돈 때문에 고민해 본 사람,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화폐(돈), 자본, 노동에 대해 수다를 떠는 <화폐반>에서 탄생했다. 이름은 번듯한 ‘화폐반’이지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 궁리를 해야 할 텐데, 이 친구들은 돈을 잘 ‘벌기’보다 돈을 잘 ‘쓰기’ 위해 돈에 대해서 공부한다. 또 화요일마다 자신이 구입하는 물건이 무엇이고, 어디서 샀는지 이야기하고 없는 살림을 조금씩 보태어 풍족한 저녁 파티를 즐긴다.
어떤 날에는 겨울의 특판 과일인 귤만 사들고 와 100개의 귤로 저녁을 대신한 적도 있고, 또 새로 나온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며 향긋한 후식 타임을 즐기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 시작한 <화폐반>에서는 먹은 귤만큼 함께 읽은 책도 꽤 많다. 그 중 우리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장작 3개월이나 읽으며 ‘소비자 선언’을 만들어나갔다. 사회에 묻어있는 경제란 단순히 공익적 가치가 있는 돈벌이가 아니며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걸 생활 속에서 실천해보고 싶었다.
<사진 左. 흑석동 시장표 고구마, 떡, 피자와 선물받은 유기농배추로 담근 김치로 펼쳐진 화폐반 저녁 파티>
<사진 中. 프랜차이즈 가게가 아닌 동네 치킨집에서 배달된 숯불구이를 먹는 흑석동 친구들>
<사진 右. 만들어서 선물하자~! 초코쿠키를 만들기 위해 온도를 조절하는 친구>
우선 “대형마트보다 동네 시장을 이용하겠습니다.”, “편의점보다 구멍가게 단골이 되겠습니다.”는 동네시장의 푸짐한 인심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자연스레 단골이 되었다. 세 번째 선언은 “온라인 서점보다는 인문학 서점,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겠습니다.”이다. 흑석동 친구들의 소비 중 큰 부분은 책을 구입하는 것이다. 할인과 적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온라인 서점 때문에 동네 서점과 인문학 서점은 점점 설 공간을 잃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히 할인과 적립을 포기(!)하고 멀더라도 대학로의 <풀무질>과 <이음책방>, 신림동에 위치한 <그날이 오면>,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서점 아저씨와 안부를 나누고, 가끔씩 잡지를 선물 받는 횡재까지 누리고 있다. 적립금 대신 사람을 만났고, 할인보다 더 값진 서점을 통해 여러 정보들(가끔씩 근사한 전시회나 음악회도 누릴 수 있다!)을 얻고 있다. 네 번째 선언은 “대형쇼핑몰을 이용하지 않겠습니다.”이다. 어떤 유통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지만 대형쇼핑몰의 상품들은 늘 세일을 하고, 같은 상품을 다른 쇼핑몰보다 낮은 가격에 팔기 위해 애를 쓴다. 또 요즘은 하루에 반값 하는 행사와 함께 1+1 이벤트도 상시 대기 중이다. 인터넷을 켜면 자연스레 무엇인가 사야만 할 것 같고, 필요할 것 같아 클릭을 하게 만드는 대형쇼핑몰. 우리는 대형쇼핑몰의 클릭질을 끊기로 했다. 대신 옷은 바느질을 배워 수선을 해서 재탄생한 ‘신상’을 입고, 유행이 지나 어울리지 않는 옷은 친구에게 선물을 하기도 한다. 또 가까운 아름다운 가게나 기분좋은 가게에 가서 쇼핑을 한다.
선언의 마지막은 “삼성 제품을 사지 않겠습니다.”이다. <화폐반>에서『삼성을 생각한다.』를 함께 읽으며 현재 쓰고 있는 핸드폰에 대해 알아보니 7명중 5명이 삼성 제품을 쓰고 있었다. 또 TV, 노트북 등 일상의 곳곳에 삼성이 베어 있는 걸 알고 이를 어찌해야 할까 혼란에 빠졌다.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이자 세계적인 기업의 윤리의식, 사회적 책임 바닥에 있다는 걸 알고도 더 이상은 삼성의 제품을 구입하기는 어렵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전자제품을 살 때에 그나마 사회적 책임을 조금이라도 하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최소한의 자유는 있는 기업의 제품을 사기로 했다.
『거대한 전환』을 읽으며 함께 ‘소비자 선언’을 만든 한 친구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부자가 되려면 직장생활로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해야 그나마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부자가 되려면 남을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 사실이 나에겐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제는 불편하지 않다. 부자가 되지 않아도,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는 “88만원 세대로 지칭되는 20대를 거센 신자유주의 시대의 물결에 어쩔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겠지만, 체제가 이끄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추구해보고 싶다.”라며 글을 썼다.
함께 만든 ‘소비자 선언’은 윤리적 소비를 넘어 소비에서 자유롭고, 자신의 소비를 책임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비록 몇 문장에 불과한 선언일지 몰라도 함께 나눈 이야기와 약속은 매번 무엇인가 살 때마다 돈의 쓰임을 확인하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무언가를 사는 힘이 아닌, 어떤 상품을 선택할 수 있고 거부할 수 있는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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