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적경제 공모전 안내/과거 공모전 수상작

10' 수기부문 은상 / 선생님, 간식 언제 먹어요?


2010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선생님, 간식 언제 먹어요?
(조진희, 서울영일초등학교 교사)



10시까지는 꼭 가지러 갈게요

“자연드림이죠? 빵하고 주스 가지러 대림역에서 택시 타고 가고 있어요. 10시까지는 꼭 갈게요.”
사당동에서 부랴부랴 연수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대림역에 도착한 시각은 9시 40분. 버스를 타면 매장 문 닫을 10시 안에 도착하기 힘들어 택시를 잡아탔다. 길을 잘 모르신다는 택시 기사님께 길을 가르쳐드리며 자연드림 신도림점에 도착하니 10시 5분 전. 이미 직원 분들께서 빵과 주스 52개씩을 가방 안에 쏘옥 넣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떻게 이거 들고 갈 수 있으세요?”
“글쎄요, 우선 음료수랑 빵 포장한 종이상자는 빼야겠네요. 이 무게도 있으니….”
‘차도 없는 내가 이게 웬 사서 고생이람?’
박스에서 음료수를 꺼내면서 이런 생각이 절로 난다. 주황색 장바구니를 한 손에 한 개씩 들어보니 걸어갈 수는 있겠다.
“들고 갈 만 하네요.”
씩씩하게 매장 문을 나서긴 했지만 얼마 못 가서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말았다. 그렇게 몇 번을 쉬었다가 택시가 다니는 신도림역 큰 길까지 나와서 택시를 탔다. 다행이 택시는 탔지만 뭐 별난 간식이라고 택시비까지 사비로 내면서 꼭 사야 할까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아침에는 애 아빠가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1학년 입학 선물은 유기농 간식입니다

                                   <1학년 입학 선물 유기농 과자 포장>

서울영일초등학교 1학년 1반 담임교사면서,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나는 매달 자연드림에서 간식을 산다.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사온 땅콩 크림빵과 사과즙은 다음날 국립중앙박물관 현장학습에 참여한 우리 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인근의 동구로초, 신대림초, 세곡초 다문화가정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먹을 간식이었다. “선생님, 배고파요!”, “간식 언제 먹어요?”라고 졸라대던 아이들은 무척 맛나게도 간식을 먹어 주었다. 그 넓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돌아다녔으니 배가 많이 고팠을 것이다.

자연드림 신도림점과 영일초등학교와의 인연은 올해 3월 2일 입학식에서부터였다. 교무실에서 입학식 준비를 하고 있는데, 6학년 아이들이 만들어서 1학년 동생들에게 주었던 사탕 목걸이를 올해는 만들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탕 목걸이는 1학년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선물인데 이것을 6학년이 졸업하기 전에 미리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마침 내 딸 아이도 1학년에 입학하는 지라 1학년 부장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제과점이나 팬시점에서 캐릭터나 꽃장식 막대 사탕 찾아볼 게요.” 하고 학교 카드를 들고 나섰다. 그러나 제과점이나 팬시점의 괜찮은 막대 사탕은 너무 비쌌다. 98명 입학생들의 간식을 10만원 범위에서 사야 하므로 1인당 1천원 꼴이었는데 동네 제과점을 몇 군데나 가 봐도 1천원이 넘는다. 더구나 100개라는 개수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생협 막대 사탕을 사고 거기에 다른 간식들을 섞어서 선물포장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팬시점에서 포장지와 리본 빵끈을 사고 자연드림에 가서 막대 사탕, 캐러멜, 과자, 초콜릿 등을 샀다. 모자란 막대 사탕은 초록마을에 들러 공수했다. 딸 아이와 함께 알록달록 투명 포장지에 간식들을 넣고 이쁜 빵끈으로 마무리하니 밤 12시가 넘었다.

이렇게 만든 유기농 간식은 새로 6학년으로 올라온 언니 오빠들의 손에 들려 동생들의 손에 전달되었다. 입학식 사회자였던 교무부장 선생님께서는 “오늘 선물로 준 간식은 모두 유기농 간식입니다”라는 멘트까지 날려 주셨다. 아이들은 무슨 큰 선물이나 되는 것처럼 과자 봉지를 들고 엄마 아빠와 함께 입학식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 간식을 뭘, 이렇게까지 신경 쓰세요?

입학식 선물 이후에 어린이날 전체 학생 간식도 자연드림에서 구입했다. 외부 음식물 반입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시는 교장 선생님이신지라 유기농 간식을 대량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700개에 가까운 빵과 음료를 행정실에서 주문하였다. 우리 학교는 교육복지 학교라서 방과후 프로그램이 매우 많은데 이 사업을 관장하는 복지사 선생님도 자연드림을 알고 간혹 이용하신다. 우리 학교 영양사 선생님도 구로구에 사시는데, 일찌감치 조합원이 되셨다. 지난 여름 밤에도 화장 안 한 맨 얼굴에 슬리퍼 신고 갔다가 마주쳤다.
매번 장바구니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 나에게 어떤 선생님은 뭘 애들 간식을 이렇게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유기농 간식에 대한 애착은 내가 매장이 만들어질 때 출자나 차입을 해서만은 아니다. 여름철이나 무슨 행사만 되면 학부모님들은 각종 빙과류, 요구르트, 캐릭터 음료수, 햄버거, 피자, 콜라 등을 학급에 넣어 주신다. 고학년쯤 되면 아이들은 으레 회장과 부회장이 한 턱 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식품안전요리교실 두 번째 카레라이스>

그러나 당선의 답례로 이루어지는 외부 간식을 교장 선생님께서 금지시키셨다. 더구나 이 학교 아이들의 치아 상태는 매우 위험 수준이고 학교에서 칫솔질을 매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구입한 간식은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이나 학부모님들이 먹게 된다. 어머님들은 중국, 일본, 필리핀, 몽골 등에서 오신 결혼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이시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먹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구촌이 함께 만드는 공적무역과 착한 소비가 더욱 커지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이기도 하다.


다문화 요리교실과 함께했던 여름방학

여름방학 때에는 본격적으로 구로생협과 식품안전교육을 기획했다. 지난해 2학년 담임교사였을 때 3차례에 걸쳐 설탕, 색소, 식품 첨가물에 대한 교육을 했었는데 저학년 아이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올해는 교장선생님께 적극 건의하여 식품안전교육을 하고 곁들여 요리를 해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간식을 먹으며 한국화 공부하는 아이들>

미리 구로생협 교육 담당자들에게 취지와 예산을 설명했더니 엑셀 파일로 장볼 리스트까지 뽑아 주셨다. 강사는 김근희 전 이사장님을 비롯하여 홍은경 선생님, 박기일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다. 첫날은 설탕을 교육하고 ‘김치전과 수박 화채’를 만들었다. 역시 베테랑 김근희 선생님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시고 이쁜 수박화채 그릇까지 직접 가져오셔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둘째날은 휴가철에 아이들이 많이 참석할까 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먹을거리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높아 인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날은 색소를 공부하고 카레라이스를 만들고 후식으로 얼음카카오를 먹었다. 셋째날은 햄버거를 직접 만들어 매실주스와 먹고 동물쿠키를 선물로 주었다. 3회의 요리교실을 하고나서 만족도 조사를 해보니 아이들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에도 할 때 꼭 알려달라는 아이가 많았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꿈꾸며…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하여 6개의 광역 시도에서 진보민주 교육감이 당선되어 기대가 크다. 특히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1학년 학부모이기도 한 나로서는 당장이라도 친환경 무상급식이 되기를 바란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여러 활동을 하면서 식품안전교육을 해보니 하루 빨리 공교육에 친환경 무상급식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 더 간절해졌다. 내년에는 정들었던 영일초등학교를 떠난다. 어떤 학교에 가더라도 윤리적 소비와 공교육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