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탁(Guten Tag)! 공정무역!

2011.07.28 09:12 사회적경제 사례 | posted by 사회적경제

구텐탁(Guten Tag)! 공정무역! - 윤여정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독일 공정무역 가게 Welt Laden"

저는 2009년도 상반기에 독일 Nuertingen 대학교의 교환학생으로 생활했습니다. 이 마을에서 'Welt Laden(World Shop), Nuertingen' 이라는 공정무역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유럽은 마을 단위로 공정무역 가게가 있다고 들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독일에는 800여개의 Welt laden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기관은 공정무역 가게를 설립 및 운영 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상점의 비전 및 목표, 정보(각종 문서 양식, 공급업체 등), 로고(디자인), 잡지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공정무역라벨(FLO)이 부착되어 있지 않은 상품의 조사 및 감시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공정무역의 홍보, 정책 반영활동, 국제적 연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Weltladen 연합의 지원을 받은 지역 상점은 연간 수익의 약 2%를 지불하고 있다고 합니다.

Nuertingen 공정무역 가게는 카톨릭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96년 모임이 시작되었을 때는 Farmer's Market에서 몇 가지 공정무역 수공예품을 가져다가 팔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8년에 지금과 같은 상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커피, 차, 초콜릿, 잼, 파스타, 수공예품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주 월요일 11:30~15:30, 4시간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입고 물건 확인 및 진열, 계산, 상점 장식, 커피 및 음료 만들기 등을 했습니다. 이 곳에서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독일 아줌마, 할머니들과 수다 떠는 즐거움과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느려도, 실수해도 ‘하쿠나 마타타(No Problem)’하면서 마음껏 하라는 격려를 받은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줌마, 할머니가 모델"

2009년 6월 12일에는 뉴팅겐 마을의 축제가 있었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상점들이 저녁 6시 전후로 문을 닫지만, 이 날은 자정까지 가게들이 문을 열고, 사람과 음악으로 시끌벅적 했습니다. 이 날을 맞이하여 공정무역 가게에서도 커피, 와인 등 음료를 판매하고, 밤 10시에 공정무역 Fashion Show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원 봉사자들이 공정무역 가게에 있는 옷, 가방, 액세서리 등을 이용하여 꾸미고,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행사 3일 전, 가게 문을 닫고 예비 모델(?)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상점에 있는 물건을 가지고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아줌마, 할머니들이 너무 즐거워하셨고, 감각과 센스가 뛰어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들이 이것저것 갖다 주시면서 챙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친환경 Green 컨셉에 맞춰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워킹 할 때의 자세와 몸짓도 지도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순간, 과정이 너무 애틋하고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행사 날! 저는 Fashion Show 전까지 상점 밖에서 음료를 판매했습니다. 그리고 행사시간인 밤 10시.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구경 온 친구가 있어서 더욱 긴장을 했습니다. 저는 Paula 할머니와 함께 입장을 했는데, 할머니는 여유롭게 포즈를 취하며 맵시를 뽐내 셨지만, 저는 너무 떨려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Ulike 아줌마가 “너무 이쁘고, 수고했다.”라고 하시면서, "너가 이 순간을 즐기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부터 진행까지 경험해보면서 '봉사'라는 것은 자신에게 꿈, 자신감, 즐거움을 주어야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공정무역 가게 초창기부터 10여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힘은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아하! "

제가 독일 공정무역 가게에서 약 4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자원봉사자를 잡아라
Welt Laden을 움직이는 건 50여명의 자원봉사자입니다. 대부분 주부, 퇴직 여성, 학생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자체가 공정무역 홍보대사이자 소비자 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봉사자 이다 보니, 아는 사람이 손님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로 안부를 전하며 상품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Anna 아줌마 처럼 소비자에서 자원봉사자가 되기도 하고, 봉사하고 나서 가게에서 장을 보거나 지인선물을 구입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가끔씩 친구들에게 공정무역 초콜렛을 선물하며 상품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2) 교육, 소통의 공간
저는 매주 월요일 오후에 갔지만 일손이 필요한 다른 요일과 시간대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공정무역 상품을 교육용으로 이용하는 생물학 선생님 Eva, 은행원이지만 매달 1회 봉사하는 Andrea, 간호사 Lioe, 실습생 Maria 등... 자원봉사자 중 부부 또는 모녀가 함께 하는 것을 보았는데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 청소년들에게는 이곳 자체가 공정무역을 직접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친환경 와인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있는 학생, 장애인을 고용한 레스토랑에서의 물품 구입, 정책제안을 위한 서명운동 등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3) 친근한 고객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입니다. 상점에 들어선 마을 사람들은 한국인 자원봉사자인 저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셨습니다. 계산이 조금 느려도, 더듬더듬 독일어 숫자를 말하면 잘 대답해 주시고, 함께 독일어 숫자를 1~10까지 같이 세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이웃 같은 다정한 손님들 덕분에 더욱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4) 조직운영의 핵심은 '배려'
공정무역 가게는 3명의 정규직원(총괄, 머천다이저, 봉사자 관리)와 봉사자 50여명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회의. 행사 등에 대한 공지와 업무일지를 기록할 수 있는 공통문서를 열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 봉사자와 신규 봉사자가 함께 배치되어 일을 돕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빨리해야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일을 천천히 해도 괜찮았습니다. 간혹 실수를 할 때면 '하쿠나 마타타'하면서 격려해주시고,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찾아하게 되었습니다.

5) 열린 회의
매월 첫 번째 수요일 저녁은 월례회의가 있는 날입니다. 여기서 새상품 소개 및 시음, 판매 촉진 방안, 건의사항, 행사, 나아가야할 방향, 정치적 활동 등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점 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5월달 회의에서는 짐바브웨에서 온 Missel이 사진과 함께 공정무역의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하고. 새 상품(액자, 멸치, 과일)등을 선보였습니다.

이 외에도 철저한 분리수거(일반 쓰레기, 종이, 플라스틱, 음식물), 이면지 사용, 재활용 포장 상자 및 에코백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료쿠폰, 시식, 상품권 등 경영적 요소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만들어 가고 싶은 꿈

사실 독일 공정무역 가게에서 봉사활동 한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윤리소비에 대한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아름다운 가게, 녹색가게, 공정무역 가게 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윤리소비를 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서울, 수도권 등으로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마다 하나씩,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상점이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 세상과 소통하며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상점을 같이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Posted by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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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hredstar chiapas coffee 2011.07.29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실제로 공정무역이 활발히 진행되는 유럽에서의 봉사활동...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아요!!!앞으로도 공정무역~화이팅!!!입니다^^*

    • Favicon of https://secontest.net 사회적경제 2011.08.01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정말 이런 봉사활동 가보고 싶네요. chiapas coffee님도 공정무역 커피 많이 소개해주세요. 화이팅!!! 후기는? 2011 윤리적 소비 공모전으로! ^^*

장애인과 봉사자의 천국 - 박세아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제 3세계 아이들에게 정당한 값으로 돌아가는 착한 초콜릿, 알차고 의미 있는 여행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올바른 방식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공정여행 등 최근 우리 사회의 소비 형태는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원하던 합리적 소비 형태에서 생산기업의 사회적 인식이나 제품이 지닌 공정성, 즉 ‘상품의 의의’를 따지고 구매하려는 윤리적 소비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산 작업장을 얼마 전 직접 체험하고 돌아왔다.

런던에서 5시간 반 정도 떨어진 Wales의 작은 시골 마을 Llandovery.

지역 주민들과 문화행사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봉사자들

지역 주민들과 문화행사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봉사자들


이곳엔 18세에서 25세 까지 신체 및 정신 지체를 지닌 청년 장애우들이 살고 있는 ‘Coleg Elidyr’ 란 이름의 캠프힐 커뮤니티가 있다. 캠프힐 커뮤니티란 1940년 영국에서 처음 세워진 장애우 공동체로 장애우와 비 장애우가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한 특수 교육을 통해 이 들의 행동발달과 사회적 자립을 도와주는 시설이다. 현재 영국을 비롯한 독일,미국,캐나다,남아프리카 공화국,아일랜드 등 19개국 90개 이상의 공동체가 있다.

나는 영국 어학연수를 준비하던 중 이 곳을 알게 되었고 20대인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색다른 경험을 선사 해주자는 생각으로 장기자원봉사를 지원을 하게 되었다. Coleg Elidyr는 모두 7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중간 규모의 커뮤니티다. 규모에 따라서 한 집에는 약 6명의 장애학생들과 6~7명의 봉사자들이 거주하고 어시스턴트 매니저나 서포터 워커와 같은 출퇴근 스탭, 그리고 하우스매니저가 함께 일을 하는데 이 모든 사람들은 매우 수평적 관계에 놓여있다.

장애학생부터 시작해서 나와 같은 외국인 근로 봉사자에 대한 인권과 행복추구가 철저하게 보장된 그야말로 행복한 일터이자 배움터인 것이다. 그래서 캠프힐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하며 선진국 형 장애우 시설과 그 운영에 매우 놀라워하고 있다.

각 커뮤니티마다 약간의 환경은 다르겠지만 이곳은 감자밭, 목장, 수공업장, 식료품 가게 등을 갖고 있고 그 밖에 베이커리와 Pub (영국식 호프집)을 시내에서 경영하고 있다. 때문에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식료품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유기농 채소를 기르는 일과 방목된 목장에서 건강하게 사육된 가축을 키우는 일은 모두 학생들 수업 중 일 부분이다. 이들은 수확의 기쁨이나 식물의 생장과정을 자연 속에서 직접 느껴갈 뿐 아니라 이러한 수업은 장애 발달 개선에도 매우 좋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각종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는 소규모 비닐 하우스

각종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는 소규모 비닐 하우스


그 밖에 필요한 생필품들은 지역사회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대형마트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동체에 들어오곤 했는데 설령 시중 가와 똑같은 가격으로 사게 되더라도 메인오피스에 영수증을 첨부하면 그만 큼 할인된 가격을 받았다. 마트는 물론이고, 우체국, 영화관, 각종 문화시설 등 장애학생을 포함한 봉사자들 까지도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장애우 시설이 이렇게 지역사회로부터 특혜를 받게 되다보니 공동체는 공동체 나름대로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국가나 지역단체에서 받은 경제적, 사회적 보장은 반드시 다시 지역사회를 위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내에서 생산된 상품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열리는 각종 음악 공연과 연극 등 문화적인 행사 그리고 다양한 바자회가 그것이었다. 그렇게 얻는 수익금은 공동체 운영에 쓰이고 우리는 질 좋고 건강한, 믿을 수 있는 상품을 또 다시 사회로 환원한다. 지역사회와 장애우 시설, 그리고 지역주민의 열린 의식이 모두 모여 그야말로 착한 소비를 나타내는 ’선 순환 구조’ 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장애우 학생과 다운증후군 친구들에게는 사회성과 협동심, 자립능력을 키워 주고 나아가서 사회생활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영국의 캠프힐은 학생들이 단순히 장애우로서, 사회로부터 격리 또는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닌, 모의 삶의 현장에서 사회생활의 기술을 터득하며 경제관념을 익히고 공동체를 떠난 후에도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도움을 받는 곳이다. 특히 상점과 시내에 위치한 베이커리 그리고 pub에서는 사회로 나가기 바로 이전 단계에 있는 친구들이 일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우리가 직접 구운 빵이나 수제 쨈을 사기도 하고 펍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사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같은 동네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장애를 흠잡거나 이들의 서툰 솜씨에 불평을 토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식품첨가물이 넘쳐나는 요즘, 오히려 우리가 손수 키운 친 환경 채소와 천연 발효 빵을 시중상품들과 비교하며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여겼다.

양을 비롯한 각종 가축 사육장

양을 비롯한 각종 가축 사육장


물론, 수업시간의 일환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상점들은 한 번에 많은 양의 상품을 내 놓기는 힘들고 수익률이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애의 정도에 맞게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나의 가장 멋진 상품을 완성해 가고 있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소중한 땀방울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캠프힐 상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추구가 아니다. 상품의 가치가 우선시 되지도 않는다. 장애를 내세워 연민과 동정으로 거래를 하는 것 또한 결코 아니다. 장애우가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한 조건에서 빚어 낸 빵 한 조각과 치즈, 작지만 단단한 감자와 양배추에 정당한 가격을 달아 판매하는 것이 그들에겐 사회적 자립을 조금씩 실천하는 의미 있는 과정인 것이다.

바로 그 과정 안에 정답이 있었다. 장애우와 함께 일을 하는 자원봉사자와 여러 스탭들은 그들의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역사회로부터 정기적인 교육, 위생, 장애치유 관련 세미나 등을 철저하게 받고 있다. 비 장애우의 인격보다 장애우의 인성과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더 존경받고 보호되는 이 작은 지상낙원에는 장애우 고용의 불합리나 장애우 노동 착취라는 말은 존재 할 수가 없다.   장애우와 비 장애우가 함께 일하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터가 다름 아닌 이 곳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생산자로서 맡은바 책임을 다하며 지역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윤리적 소비를 소리 없이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16,17일 나는 MBC뉴스에서 우리나라의 장애인 보험차별과 인권실태에 대해 집중취재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정신 장애가 암보험 가입불가 요인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마저 보험가입이 어려운 현실,.. 자유도 개인의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 시설보다는 탁 트인 곳에서 노숙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는 한국의 젊은 장애우들... 내가 영국에서 보낸 캠프힐 생활이 기적처럼 느껴진 이유는 어쩌면 우리나라 장애우들 의 인권과 사회적 대우의 실태가 자꾸만 겹쳐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쪽으로 11시간 떨어진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그러한 현실이 마치 역사처럼 진행되어가고 있지만 나는 현재 ‘신 유토피아’인 이 곳 에서 매일매일 색다르고 놀라운 장애우의 인권을 만났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과 이상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겪었던 지난 경험을 통해 진정한 윤리적 소비를 배우고 느꼈으며 착한 소비가 활성화되려면 국가의 적극적인 보장체제와 지역사회와의 지속가능한 연계시장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시민들의 의식전환 이 세 박자가 모두 어우러져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윤리적 소비는 엄밀히 말해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매우 의미 있는 ‘생산’ 인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착한 소비의 씨앗이 훌륭한 경제성장의 원천이 될 그 날을 기대하며 한국의 장애우 인권과 노동 권리가 선진국 못지않게 개선될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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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로컬푸드 농산물 시장에 가다

2011.07.26 09:54 사회적경제 사례 | posted by 사회적경제

뉴욕에서 만난 윤리적 소비 - 박준영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이번 여름, 뉴욕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여러분은 뉴욕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UN 본부?

물론 뉴욕엔 하루를 꼬박 걸어도 다 보지 못할 만큼 명물이 많지만, 최소한 대학생에게 있어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모교, 컬럼비아 대학교는 그 어떤 명소와 견주어도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는 장소임이 분명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오붓한 직사각형의 캠퍼스 안에 옹기종기 들어차 있는 컬럼비아 대학 건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을 뽐내면서도, 전체적인 일관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컬럼비아 대학을 상징하는 푸른 하늘빛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하늘빛 휘장의 물결은 맑고 화창한 진짜 하늘과 어우러져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켠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듯 했다.

그렇게 여유롭게 캠퍼스를 거닐던 찰나, 대학생의 미적 감각이 묻어난다기엔 조금은 유치한 색감을 가진, 삐뚤 빼뚤 글자가 쓰여진 작은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FOOD SUSTAINABILITY PROJECT. 조금 의역을 하자면 지속가능한 식품 프로젝트 정도가 된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놓여진 조그마한 화분들. 아직 묘종 티를 못 벗었거나, 이제 갓 싹이 튼 식물들이 화분마다 빼곡히 심겨져 있었다.

이 현판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느낌이 왔다.
아 이거, 그런 거였구나!

평소 로컬 푸드나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유통에 관심이 있었고, 실제로 몇몇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컬럼비아 대학 친구들이 뭔가 확실히 한 건 하고 있겠구나 라는 확신이 생겼다. 똘똘한 아이비리그 친구들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번쯤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엄밀히 말해서 ‘친구’들은 아니었다. 굳이 학생들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원봉사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가족 단위 참여도 활발하다고 한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함께 작물을 가꾸고, 이를 학내 식당에 납품하여 직접 가공/판매하거나 Greenmarket이라는 농산물 시장에서 자신들이 재배한 작물을 직접 판매한다. Greenmarket 자체는 이들이 주관하는 행사는 아니다. 뉴욕 시의 지원 하에, 컬럼비아 대와 Barnard College의 후원으로 열리는 공식적인 농산물 시장이다.

짧은 영어실력과 빡빡한 일정 탓에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이들의 웹사이트를 좀 더 뒤적거려 본 결과 이들은 세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첫째, 환경.
평균적으로, 농산물이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는 1300에서 1500 마일, 그러니까 최대 2400 킬로미터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다) 로컬 푸드를 이용하면, 농산물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는 동시에 연료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둘째, 경제.
일반적으로 우리가 음식에 지출하는 1달러 중 9센트, 그러니까 1000원 중 90원만이 생산자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나머지 91%는 유통 과정에서 마진으로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다. 중간 유통 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1달러 중 최대 80센트가 생산자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셋째, 삶.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95%는 몇몇 다국적 기업농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소농의 급격한 위축을 불러왔는데, 1930년대 700만 가구에 이르던 소농은 오늘날 겨우 200만 가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 중 순수 농업 수익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가구는 1/4 수준에 불과하다고 하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이왕 관심을 보인 김에, 그들이 권하는 대로 이들이 재배한 작물로 만들었다는 요리를 한 번 먹어보았다. 투박하리만치 엉성하게 잘려 널부러져 있는 피망 조각이, 척 보기에도 본인의 취향과 잘 어울리지는 않는 음식이었지만, 많은 이의 정성이 들어간 ‘윤리적’ 식품이어서 그랬던지 막상 입에 넣자 그런대로 먹을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의 노력, 그리고 성과는 다른 누군가에 비해 두드러지거나, 눈에 띄게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소한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본인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과, 조금이라도 변하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큰 변화는 작은 변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이들은 자신들 스스로로부터, 그리고 지역사회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었고, 마침내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세계의 끝에서 맞닿을 때, 비로소 더 나은 세상이 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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