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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소비의 동반자/협동조합

동네빵집, 파리바게뜨·뚜레주르 이길 비법 있다

동네빵집, 파리바게뜨·뚜레주르 이길 비법 있다



[99%의 경제] 협동조합이 싹튼다

34년 역사 ‘이화당’ 주인 부부 “대기업과 겨루기 너무 힘들어”

프랜차이즈 가맹점 주인도 “본사만 살찌는 이상한 구조”

빵굼터 같은 공동브랜드 협동조합으로 진화 가능성

서울 이화여대 후문 건너의 동네 빵집 ‘이화당’은 올해를 넘기기가 숨이 차다. 1979년에 문을 연 이화당 34년의 주인, 박성은(74) 할아버지와 신연주(70) 할머니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문을 닫는다. 올해 초 파리바게뜨 매장이 바로 옆 건물에 들어선 뒤로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

“대기업이 황소개구리처럼 동네 빵집들을 다 삼키잖아요.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어요. 그전보다 1시간 먼저 일어나고 1시간 늦게 문을 닫아요. 손님들한테 서비스도 더 많이 주지요. 그렇게 근근이 버티는데, 올 한해 견디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파리바게뜨와) 겨루기가 벅차요. 그동안 아들이 일을 많이 도왔어요. 그런데 그 녀석까지 이제 애착을 보이지 않네요. 전망이 없으니까요.”



우리 이웃의 동네 빵집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2008년에 8153개였다가 지난해 5184개로 불과 3년 사이에 35.1% 격감했다. 같은 기간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은 3572개에서 5290개로 45.1%나 점포 수를 늘렸다. 올해 초 동네 빵집의 대명사인 서울 동교동의 리치몬드제과점(홍대점)이 문을 닫은 자리에도 롯데리아 매장이 들어섰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탐욕이 점령한 것은 동네 빵집만이 아니다.

커피점과 치킨점, 하다못해 김밥집까지도 싹쓸이했다. 서민들의 자영업은 이미 무참하게 무너졌다.

50대의 김아무개씨는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파리바게뜨 가맹점을 운영한다. 그는 본사의 보복을 우려해 인터뷰 요청에 불응하다가, 철저한 익명을 전제로 겨우 입을 뗐다. 김씨 역시 3년 전까지 25년 전통의 동네 빵집 주인이었다.

“파리바게뜨 가게로 바꾸라는 걸 처음에는 거부했죠. 그랬더니 바로 옆에 파리바게뜨 가게를 내겠다는 거예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우리 같은 가맹점주들은 대체로 4억~6억원 투자하는데, 제대로 이익 내는 사람 30%도 안 될 겁니다. 몇년 지나면 몇억 들여 가게 확장하고 인테리어 새로 하라고 해요. 그래야 본사 매출 늘릴 수 있잖아요. 하지 말고 버티라고요? 그냥 쫓겨납니다. 가게 물품은 모조리 본사에서 비싸게 구입해야 하고, 인테리어 비용은 터무니없는 바가지예요. 본사만 살찌고, 가맹점들은 모두 힘든 이상한 구조지요.” 김씨는 “명예퇴직자들이 물정 모르고 가맹점에 뛰어들었다가 코 꿰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처지 또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가맹점주들이 프랜차이즈 본사의 불공정거래를 고발하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으며,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업을 포기하는 가맹점도 속출하고 있다. 동네 빵집과 가맹점주들 대다수가 어렵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홀로 승자독식하는 슈퍼스타 효과가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해법이 어렵다는 것이다. “동네 빵집 살리자”고 사회 전체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말의 성찬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의 동네 빵집 점령에 대한 최근의 ‘사회적 합의’는 재벌의 사업 포기 요구였다. 이부진 회장의 호텔신라는 ‘아티제 블랑제리’의 지분 19%를 홈플러스에 매각했고, 신격호 롯데 회장의 외손녀인 장윤선씨는 프랑스 식료품 ‘포숑’ 브랜드를 운영하는 블리스의 지분을 매일유업 등에 처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분매각으로 ‘동네 빵집’의 처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대기업으로 주인이 바뀔 뿐이다.


(1979년에 문을 연 서울 이화여대 후문 앞 동네 빵집 ‘이화당’의 주인 박성은(74)씨와 신연주(70)씨가 케이크를 팔고 있다. 올해 초 ‘파리바게뜨’ 매장이 바로 옆 건물에 들어선 뒤로 매상이 줄어 올 한해 견디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주목할 만한 변화는 ‘협동조합’ 쪽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빵집 사업에 대한 대기업 진출 제한과 함께 협동조합 방식의 해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대한제과협회를 중심으로 동네 빵집들이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공동구매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빵굼터 같은 공동 브랜드가 본격적인 협동조합기업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살아남은 동네 빵집끼리 공동 브랜드로 공동 행동을 할 수 있는 협동조합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공동구매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미국의 버거킹과 덩킨도너츠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은 물론이고 시장만능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조차 협동조합 방식이 좋은 일자리와 안정적인 소득을 뒷받침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은 “동네 빵집 같은 ‘생활경제’에서는 대기업들이 노동절약적 혁신을 통해 오히려 일자리와 소득을 줄이는 사회적 역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대기업의 소매유통업 진출을 제한하거나,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방식의 사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12월 초부터 다양한 협동조합기업의 설립이 자유로워진다. 지금까지는 농협과 수협, 생협 등 8개 개별법에 정해진 협동조합 설립만 가능했다.


김현대 선임기자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