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농부의 세상 만나기 - 오동미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2009년 장려상 수상작

나는 충남 홍성에 있는 전교생이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를 지향하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다니고 있는 3학년 학생이다. 우리 학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이 교훈인데, 친환경으로 농사 짓는 방법을 배우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운다. 우리 학교에서는 2학년 여름방학이 되면 현장실습을 가는데 현장실습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2주 동안 유기농업을 하는 농가에 가서 몸으로 부딪히며 체험하는 활동이다. 수확부터 포장과 납품까지 직접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현장실습 전까지 나는 늘 생산된 물건을 받고, 또 아무 생각 없이, 마치 기계가 찍어내는 줄 알고 먹는 소비자였다. 이런 나에게 현장실습에서의 활동들은 새로울 뿐만 아니라 큰 충격이었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지침표가 되기도 했다. 농사를 지어 생산하는 것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어려움은 항상 신선한 상태에서 제날짜, 제 크기에 맞춰 가장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납품해야 하는 일이었다. 옥수수와 고추를 키우고 수확하며 검열하여 포장을 한 뒤 납품을 하고 그중 반품을 당하는 일도 있어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이후 생산자로 살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정말 감사할 줄 아는 소비자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 했다. 우리 집으로만 생각하면 몇 개 안되는 고추에, 5개짜리 옥수수에 불과하지만 하루에 몇 백 개씩 수확해 백봉지가 넘게 포장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아주 가끔씩 병이 있으나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고추가 납품 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앞날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이상적인 생산과 소비, 유통의 관계를 생각하게 해주는 협동조합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경험해 보고 싶었다. 아버지께서 생협에서 일하신지 꽤 오래되어 항상 옆에서 보긴 했지만 정작 어떤 의도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험을 해보았으니 유통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3학년 여름방학에는 2주에 걸쳐 생협물류센터와 자연드림에서 일하게 됐다.

첫째 주에는 생협 물류센터에서 컨베이어벨트 같은 것을 통해 오는 박스에 조합원이 주문한 상품을 담는 일을 하였다. 하루에 적게는 2천가구, 많게는 4천가구의 주문이 들어오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물류센터에서 하는 일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중간다리이니만큼 신중하고 정확한 작업을 필요로 했다. 처음 일을 해보는 나는 그곳에서 먼저 일하신 분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환경이 좋지 않고, 높은 임금을 주지 않는다며 불평을 토로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열심히 책임감을 갖고, 개인의 이익이 아닌 많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 한다고 생각하면 보다 수월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한주였다. 기계로 담아 올 줄 알았던 것들이 모두 손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 그간 물건이 잘못 왔다며 투덜대기도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었다.


둘째 주에는 안양에 있는 자연드림 매장에서 일을 하였다. 베이커리와 식품을 포함해서 정육까지 다양한 물품이 있어서 그런지 직원도 여러 명 있고, 물건을 사러오는 조합원도 많았다. 나에게는 조합원들에게 물품을 안내하거나, 정리하고, 베이커리에서 빵을 포장하고 시식 준비를 하는 등의 일들이 주어졌다. 조합원 매장이라 조합원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조합원에는 준조합원과 조합비 조합원이 있는데 준조합원은 가입비만 내고 일반가로 사는 것이고, 조합비 조합원은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고서 조합원가로 사는 것이었다. 조합원가로 살 경우 한 달에 10만 원 이상 만사도 조합원에게는 이익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작 매장에 남는 돈은 10%인데 10%만 이익이면 손해보는 장사라고 할 정도로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을 따지는 것이 아닌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것, 즉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사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에 적은 임금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생긴지 1년도 안된 매장에 많은 조합원과 밝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쉴 사이 없이 일하는 생산자들과 정확하게 물건을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조합원들이 집에서나 가까운 매장에서 쉽게 물건을 받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짧은 시간 안에 신선하게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눈으로 보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협동조합은 누군가를 밟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모두 함께, 자연까지도 협동해서 잘 살기 위해 만들어진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다. 그런데 나는, 나아가 우리는 이런 것을 잊고 감사는 커녕 모든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함 없이 살아가지 않았나? 그저 내 입맛에만 맞추어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윤리란 말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을 지닌다.

생산자는 생산자로써 자신이 납품하는 물품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친환경 상품을 먹는 소비자들의 입장이 되어 가장 건강한 식품을 납품해야 겠다는 생각, 자신의 식품을 사주는 소비자에게 고마운 생각과 더불어 자연을 살리는데 힘쓰고, 유통하는 사람들은 가장 안전하고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좋은 상품을 홍보하고 또 함께 나누는데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느끼며 힘든 일이지만 자신을 통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의 편익이 제공되는데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소비자들은 자신의 밥상까지 올라오게 해준 수많은 과정과 사람들의 노력에 감사하며 먹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야 진정한 협동조합으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리적 소비란 윤리적으로 생각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실천하며 기뻐할 줄 아는 마음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의 맛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동티모르에서 열심히 일한 농부들에게 마땅한 대가를 주고 마신다는 자부심과 기쁨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것, 먹고 있는 쿠키가 조금 덜 달고 더 비싸지만 2%도 채 되지 않는 우리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농부들의 마음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윤리적인 삶의 태도이자 행해야할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아닐까.

지난 방학과 작년 여름 방학에 했던 2주간의 실습들은 늘 맛있게만 먹던 나에게 자연에게까지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먹을 수 있게 해주었던 귀한 시간들이었다. 마치 삶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윤리적 소비가 많아진다면, 나아가 그런 마음들이 더 많이 뭉친다면 생산자부터 소비자, 그리고 우리 삶 속에 깃든 자연까지도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우리 학교에서 추구하는 것, 더불어 사는 평민이라는 것이 곧 윤리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나누며 윤리적인 생산과 더불어 윤리적인 소비하는 삶을 사는 사는데 마음을 쓰고, 손으로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Posted by 사회적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