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은상 수상작

윤리적 소비 체험 수기 부문

지름양의 착한소비 라이프
정지은


올해 직장생활
7년차인 직장인 J의 별명은 지름양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사고 싶은 건 다 사야 직성이 풀리게 만드는 지름신의 충실한 교인이라는 뜻이다. 지름양은 별명답게 월급날만 되면 어김없이 빠져나가는 카드값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카드값이 빠져나가고 남은 월급으로는 1주일도 버티기 힘들다 보니 또 카드를 쓰게 되고, 그 다음달도 월급이 들어오는 즉시 카드값이 빠져나가고직장생활을 꽤 했음에도 모아둔 돈은 없고, 그렇다고 뭔가 거창한 것을 산 것도 아닌 악순환의 연속이다.

답답한 마음에 경제신문을 보던 지름양,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를 발견한다. <에듀머니>라는 곳에서 무료로 재무상담을 해준다는 게 아닌가? 신나서 보자마자 신청했더니 시키는 게 좀 많다. 자산 현황부터 부채, 소비현황 등등 복잡한 엑셀 파일을 다 채워서 사전에 보내야 상담이 가능하단다. 실제 상담날이 되자 나름대로는 경제에 관심이 있어서 펀드니 뭐니 들어가면서 잘 관리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지름양의 자부심에 금이 가는 순간이 이어졌다. 폭락한 펀드 원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미련한 생각으로 그 이율보다 더 높은 대출금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있었으니, 생각할수록 돈이 아깝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어딘가 싶다. 사실은 펀드로 좀더 빨리 수익을 내겠다는 욕심을 부리다 보니, 정작 갖고 있는 주머니에서 새어나가는 고금리의 이자 부담은 몰랐던 바보같은 짓을 했던 셈이다. 신용카드를 없애고, 계획적인 소비를 하고, 지출 대신 저축을 먼저 하라는 굉장히 상식적인 얘기인데, 듣다 보면 보험상품 가입하라는 얘기로 끝나던 영업식 재무상담에 질려 있던 지름양에게는 신선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담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상담을 통해 어쨌든 과감하게 갖고 있던 펀드를 모두 해약하고, 그것으로 대출금을 갚고, 신용카드도 없앴으니 일단 가불 인생은 끝낸 셈이다. 지름양이 얻은 교훈 중의 하나, 신용카드 없어도 잘 살 수 있고, 혜택이 아깝다면 체크카드를 쓰면 되고, 소비를 줄인다고 해서 당장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도 좋지만 기왕이면 소비 자체를 줄이는 연습부터 하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다. 노 임팩트 맨에서도 나오듯이,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해보이고 조금은 불편하지만 꽤 재미있고 색다르게 살 수 있다고나 할까.

에듀머니와 상담하면서 알게된 이로운몰(http://www.erounmall.com)은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이름 그대로 삶에 이로운 물품들을 모아서 파는 종합온라인쇼핑몰인데 시중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물품들을 클릭 한번으로 간편하게 살 수 있다. 성인아토피 증세가 살짝 있는 지름양은 여기서 처음 구입한 샘크레프트 비누를 애용 중이다. 클렌징할 때는 물론이고 샤워할 때도 쓰고, 남자친구에게도 선물해줬다. 순하디순해서 피부에 자극도 없고,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열심히 천연재료로 만들었다고 하니 쓸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다. 신나게 거품을 만들어서 써도 환경오염 걱정도 없다. 이로운몰을 이용하면서 면세점에서 비싼 고가의 수입 화장품을 하나씩 지르던 게 취미던 지름양의 화장품 구입 패턴도 바뀌었다. 천연화장품은 아무리 비싸도 수입 화장품보다는 싸고, 확실히 순해서 피부 트러블도 없어지는 게 마구 느껴지기 때문이다. 역시 마케팅보다 기본 원료에 비용을 들이는 정직한 방식이 효과가 있는 거겠지 싶다. 게다가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던 분들이 화장품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쓴 책을 보고 난 후에는 더욱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마구 든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비롯한 각종 차와 군것질을 즐기는 지름양의 빼놓을 수 없는 쇼핑품목, 바로 출출할 때 집어먹을 쿠키나 초콜릿, 그리고 원두커피다. 한동안 원두커피에 올인해서 동티모르 공정무역 원두와 아름다운커피 드립백에 빠져있던 지름양이 요새 푹 빠진 먹을거리는 장애인을 고용해 쿠키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인 <위캔>의 쿠키와 아름다운가게의 초콜릿이다. 디자이너들에게 따로 디자인 재능기부를 받아서 만들어서 그런지 초콜릿 디자인도 심플한 게 마음에 든다. 물론 지름양이 사는 동네에선 편하게 구입하기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배송료 따져가며 사야 하는 것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서 살 기회가 있을 때 한꺼번에 사는 편이다. 사실 쿠키이든 초콜릿이든 꼭 윤리적인 소비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먹어보니 맛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착하고 윤리적인 소비라 해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맛없으면 두 번 사지 않는 것이 지름양의 냉정한 쇼핑 원칙 중의 하나다.

문화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지름양, 근처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다. 퓨전국악그룹 아나야의 공연이다. 얼마 전까지 문화예술사회적기업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에서 활동했던 그룹이라고 한다. 별도로 독립해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돌풍을 일으켰던 독립영화 워낭소리 OST를 맡기도 한 실력있는 팀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테마를 정해 열리는 공연인데, 이번 공연 테마가 퓨전국악이라 초청됐다고. 전통적인 국악기에 랩, 전통 민요를 현대적으로 바꾼 맛깔스런 가사와 호소력 있는 민요 보컬, 멜로디가 신선하다.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과의 약속이 홍대에서 있는 주말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여전히 정신없는 홍대 앞이지만 막상 여자 셋이 조용히 수다떨며 여유로운 저녁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어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헤매지 않고 갈 곳이 있다. 장소 섭외를 맡았던 지름양이 신문기사에서 보고 가겠다고 찜해놓은 곳이 있기 때문. 바로 다문화요리레스토랑 오요리. ‘오요리는 청소년, 여성, 결혼 이주여성들이 케이터링, 카페, 급식, 쿠킹 클래스 등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오가니제이션 요리가 새로 선보인 레스토랑이다. 맛도 있고 재미도 있는 곳이 있으니 일단 따라오라고 큰소리부터 치고 들어가서 막상 설명하려니 쉽진 않다. 외국인 이주 여성들이 자기나라 요리를 직접 만들어 파는 곳이라고 하니 친구들 눈빛이 달라진다. 오호, 재미있겠는걸.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며 고민하다가 각자 다른 메뉴를 시켜본다. 일본의 나가사끼 짬뽕,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 태국식 매콤한 새우볶음요리까지. 국적도, 음식 종류도, 써빙해주신 분들도 다양해 마치 여행을 온 기분이다.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적당해서 다시 한 번 오기로 하고, 다음 수다 장소로 이동한다. 나중에 알아보니 출장 케이터링 서비스도 한다고 하는데 꽤 색다른 느낌일 것 같다. 인천에도 다문화 가정과 이주여성이 많은데, 오요리가 성공해서 인천에도 노하우를 전수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름양의 회사가 있는 차이나타운에서도 오요리처럼 보다 다양한 국적의 요리들을 맛볼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을텐데 아쉽기도 하다.

열심히 수다 떨다가 집에 왔더니 동생이 뭔가 맛있는 걸 만들고 있다. 뭐해? 물어보니 쌈 싸먹을 쌈장을 만든단다. 식탁에는 벌써 푸짐하게 한상 차려져 있다. 그런데 고기가 아니고 온통 초록색 풀밭이다. 매달 2번씩 콩세알에서 배송되어 오는 유기농 초록이들로 꾸민 밥상이다. 콩세알은 한달에 정기적으로 횟수를 정해 유기농 채소를 받아보는 시스템이다. 2회를 신청하면 5만원. 그때그때 수확한 제철 유기농 채소를 편하게 집에서 받아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덜컥 신청했는데 그 나눔상자가 도착한 것이다.

정기적으로 오는 쌈채소(케일, 청겨자, 상추 등), 이번달에 첫 수확해 보내주신 오이로 갓 만든 오이소박이, 유정란으로 요리한 계란말이, 농장표 유기농 된장과 이번주에 보내준 시금치로 끓인 시금치국까지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처음에 흙묻은 열무가 가득 들어있는 나눔상자를 보고 경악했던 게 바로 한 달 전이다. 3번 나눔상자를 받아 먹었을 뿐인데 냉장고에 쌈채소가 없으면 허전하다. 처음에 사진 속에 있었던 싱싱한 열무를 수습하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 다 시들어 버린 열무를 버리면서 화를 내던 동생도 이제 콩세알의 팬이 됐다. 고기를 좋아해서 채소가 올 때마다 처치곤란이라면서 먹던가, 요리하던가 양자택일하라던 동생의 성화에 나눔횟수를 월 2회에서 월1회로 줄이겠다고 했더니 그냥 놔두라고, 은근히 즐기고 있다고 할 정도가 됐으니 이만하면 꽤 성공적이다. 회원으로 가입한 소비자들이 안정적인 현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수확물을 받는, 농민과 나눔회원들이 공동으로 농사에 대한 책임과 수확을 나누는 파트너쉽 관계, CSA(시민지원농업)라는 나름 유명한 방식이라고 하는데 요새는 여성농민회에서 하는 행복을 담는 장바구니, 흙살림에서 운영하는 제철꾸러미 등등 하는 곳이 다양해서 한 군데 더 격주로 신청해볼까 즐거운 고민중인 지름양이다. 가끔 감자나 옥수수 등 특판할 때는 다른 곳을 이용해보기도 하는데 항상 가격대 대비 만족도가 어찌나 높은지, 요즘 배추값 폭등으로 생협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이럴 때마다 괜히 흐뭇한 지름양이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소비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니, 지금까지는 지름양의 앞선 선택이지만, 앞으로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선택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김치가 떨어졌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쇼핑몰을 뒤지던 차에 얼마 전 사회적기업 블로그에서 봤던 <울산중구시니어클럽> 생각이 났다. 김치 브랜드 이름이 아삭김치. 이름도 마음에 들고, 좋은 재료로 어머니들이 집에서 만드는 김치처럼 담궜다고 하니 한번 시켜보자 싶다. 그런데 찾아보니 홈페이지가 없고 전화밖에 안된다. 솔직히 좀 귀찮다. 전화했더니 매끄러운 목소리의 상냥한 상담원이 아닌, 소리를 질러야 하는 할아버지 한분이 전화를 받으신다. 실랑이 끝에 겨우겨우 주소를 불러드리고, 계좌번호를 받아 입금했다. 가격도 얼마나 착한지 배송비까지 포함해서 5kg21,000원이다 입금한 다음날 도착한 김치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오자마자 썰어서 한조각 먹어보고, 그김에 김치찌개까지 한솥 가득 끓여버렸다. 아직 품목이 배추와 열무김치밖에 없고 그나마 열무김치는 주문이 힘들다고 해서 아쉽지만 당분간 배추김치는 이곳을 이용할 생각이다. 동생들도 맛있다고 난리다.

사실 지름양의 소비 라이프는 절대 거창한 게 아니다. 윤리적 소비라는 명칭을 붙이기엔 살짝 낯간지럽기까지 하다. 만족도 높은 결과를 위해 좀더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하나를 사더라도 따지면서 하고 있을 뿐인데 이게 무섭다. 한 번 시작해보면, 이왕이면 착한 소비, 나와 비슷한 이웃들의 삶을 도울 수 있는 소비를 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보다 지역에서 탈학교 청소년들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곳에서 먹게 되고, 원두나 초콜릿, 홍차 같은 기호품을 살 때도 공정무역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마트에서 먹기 좋게 포장되어 비닐에 담겨 있던 채소를 먹는 게 아니라, 흙은 좀 묻어있을지 몰라도, 생긴 건 좀 못생겼을지 몰라도 정감있는 편지를 읽으면서 제철에 나는 채소나 과일을 먹게 되는 즐거움. 어떻게 보면 너무 사소하지만 개인의 일상을 소소하게 바꿔나가는 흐름. 그 사람의 변화로 인해 주위 사람들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을 하나씩 바꾸게 되고, 다시 한 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주는 것.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 함께 잘 살자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윤리적 소비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Posted by 사회적경제